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나다 Jun 10. 2024

두 밤을 기다린 아이는 발가락을 잃어버렸다.

평범한 5살의 하루가 평생의 일상을 바꿔버렸다.


"두 밤만 자고 온나"

아빠가 갓 이사 온 집의 방에 앉아 동생과 언니를 옆에 두고 어린 내가 거리감이 생길 정도의 분위기로 말씀하셨다. 다섯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다가 조그마한 동네 슈퍼를 매매하여 가게에 딸린 두 칸짜리 방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때다. 방문 밖 신발 벗는 곳에 서서 아빠 말을 듣고 있는 장면이 생각난다. 36년 전의 일인데도 생생하다. 이사에다 가게를 새로 꾸리느라 정신없이 어린 삼남매를 키우던 엄마 아빠는 가까운 외갓집으로 우리를 보내곤 했는데 외갓집에 가던 아이는 보통 나였던 것 같다. 그날도 개구쟁이 삼 남매 중에 하나는 잠시 떼어 놓고 싶은 마음으로 외갓집에 가기 싫어하는 듯한 나에게 금방 두 밤이 지난다는 듯이 손가락 두 개를 표시하며 아빠가 말씀하셨다.






그때 신었던 신발과, 내가 챙겼던 가방이 고스란히 생각난다. 나는 두 밤이 지난 아침부터 긴 줄이 달려 있는 황토색 가방을 챙겼다. 동네 신발 가게에서 엄마가 얼마 전에 사준 가지 모양의 그림이 있는 예쁜 보라색 신발을 신고 황토색 가방은 기둥 옆에 놓아두고 외갓집 마루에 앉았다. 부지런하셨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마루를 쓸고 닦으시고 마당에서 여러 일을 보고 계셨다. 온종일 놀아도 아빠가 오지 않는다. 나는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외할머니를 따라다녀 보고 외할아버지도 따라다녀 봤는데 심심하기 그지없다. 그러다가 얼마 전 외할아버지가 쓰시던 소 볏짚 자르던 기계가 생각났다! 어린 내 눈에는 그것이 꽤 미끄럼틀처럼 보였다. 작은 내가 올라가면 미끄럼틀처럼 내려올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할매! 내 여기 위에 올라가서 놀게!"

사실 외할머니올라가도 되냐고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냥 어린아이가 나이 일흔이 넘은 생각도 행동도 모든 것이 느려진 외할머니께 드린 통보였다. 외할머니는 빨래를 널고 계셨던가 빨래를 걷고 계셨던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바로 옆에 계셨다. 평소에도 말 수가 없으시던 외할머니는 그러려니 하고 대답이 없으셨고, 나는 곧바로 거길 올라갔다. 올라선 후 갑자기 외할아버지가 스위치를 올리고 내리던 게 생각났다. 이 스위치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지?라고 생각하다가 무심코 기계 스위치를 내렸다.






순식간에 내 발이 기계에 빨려 들어갔다. 나는 놀서 바로 스위치를 원위치로 올려놨지만 나의 새로 산 예쁜 신발과 내 두 발은 이미 기계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뒤늦게 알아차린 5살 여자 아이의 생전 처음 겪는 커다란 고통은 고함소리와 울음소리가 섞여 세상이 찢어질 듯 하늘을 향해 울음을 뱉어 내게 했다. 무슨 일이지? 내가 뭘 한 거지? 왜 이렇게 엄청 아프지? 5살이 먹은 그 무시무시한 겁은 지금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외갓집에 일정 지내던 삼촌들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외갓집 동네에 사는 삼촌들이었던 같기도 하다.  조그마한 두 발이 끼어진 기계를 분해해서 나를 꺼냈고, 지혈이 급했던 내게 외할머니는 손 닿는 곳의 주황색 비닐봉지를 아무렇게나 찢어서 내 상처를 급한 대로 돌돌 말아댔다. 나는 너무 아파서 할머니 머리카락이고 온몸을 붙잡고 계속 울어댔다.


택시를 타려는 건지 119 구급차를 타려는 건지 기억은 안 나는데 마을 입구로 나를 옮긴 와중에 아까 기계를 분해하던 삼촌들 중에 한 명이 내 잘린 발가락들을 들고 허겁지겁 뛰어 오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봉합할 수 있으면 봉합을 하라고 그러신 것 같다. 그래, 그때 이미 나의 발가락들이 잘린 것이다. 어린 5살의 호기심이 무기력하게 본인 발가락들을 한 순간에 잃게 만들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