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빛소리 Apr 16. 2024

D+9 :"아픈 과거로부터 피할수도, 배울수도 있어."

천 번의 계절이 바뀌어도 잊지 않을게

"The past can hurt. But the way I see it, you can either run from it or learn from it."
"과거는 아프게 할 수 있어.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피할 수도 있고, 배울 수도 있어."

-라이온 킹-


# 세월호 사건


  2024년 4월 16일 오전 9시 11분.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야만 했던 영만 어머니로부터 카톡이 도착했다.

< 10년 전 인연을 맺었던 세월호 유가족에게 온 메시지 >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 침몰한 사고가 발생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단체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시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 중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영원이 잠들었다.


  세월호 사건은 전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렸고 곳곳에서 추모 행사가 이어졌다.

그 당시 나는 학교 밖 아카펠라 동아리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동화 작가들이 모여 세월호를 기리는 행사에 공연 의뢰를 받았고 흔쾌히 승낙했다. 조금은 외딴곳에 위치한 카페를 대관하여 행사가 열렸다. 작가들이 유가족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은 시집을 만들었고 그곳에 온 귀한 손님들에게 나눠주었다. 공연을 마치고 노란 책자 한 권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10평 남짓 한 자취방에 들어왔다. 꿈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가슴에 파고들었다.

2학년 4반 하용이의 꿈은 '화가'입니다. 하용이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꽃도 그리고, 선생님도 그리고, 만화도 그렸습니다.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지요.

2학년 9반 보미의 꿈의 '수의사'입니다. 보미는 노래를 잘해서 가수가 되고 싶기도 했지만, 수의학과를 나와서 수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픈 동물들을 직접 돌봐주고 싶었거든요.

2학년 8반 선균이의 꿈은 '로봇 공학자'입니다. 선균이는 로봇 동아리 회장을 할 정도로 로봇이 좋았습니다. 친구들은 그런 선균이를 뚝딱이 아빠라고 불렀지요. 무엇이든지 뚝딱뚝딱 만들어냈거든요.  

2학년 7반 영만이의 꿈은 '우주학자'입니다. 별을 유난히도 좋아하던 영만이는 엄마에게 반짝이는 별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어요. 영만이에게 별은 둘도 없는 친구였답니다.
                                                                           
                              < 동화 '별이 된 아이들' 중 >

  하용이, 보미, 선균이, 영만이,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꿈들이 연기처럼 사라진 그날.


  '차갑고 캄캄한 그곳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가라앉는 배에서 엄마 아빠를 얼마나 애타게 불렀을까. 어른을 믿고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며 얼마나 목 놓아 울었을까...'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친 어른들과 한 배에 탄 죄로 무고한 아이들이 차갑고 캄캄한 바닷속으로 속절없이 가라앉았다. 어여쁜 봉숭아  들어야 할 아이들의 손톱은 보랏빛 피멍으로 물들었다. 그 아이들이 떠올라 가슴에 맺힌 뜨거운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


# 국어 시간에 추모 시를 쓰다


  그 당시 나는 5학년 담임이었다.

 단원고 아이들의 꿈이 담긴 작은 책자를 가방에 챙겨 학교에 갔다. 하나하나 가슴에 새겨진 그들의 꿈을 내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국어 시간에 '천문학자'가 꿈인 영만이의 이야기가 담긴 페이지를 복사하여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우리는 짧은 동화를 읽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시화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얘들아, 우주학자가 꿈이었던 영만이는 비록 그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내가 하늘의 별이 되어 꿈을 이룬 영만이라고 상상하면서 어머니께 보내는 시를 지어보자."

< 영만 어머니께서 오늘 찍어서 보내주신 시화>

"현우야, 무슨 질문 있니?"


"선생님, 저희 부모님께서 광화문에서 세월호 관련 활동을 하고 계셔서 유가족분들과도 교류하시거든요. 이 시화를 영만 어머니께 전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영만이의 마음을 대신한 스물여섯 아이들의 마음은 기적처럼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교실로 나를 찾는 낯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누구신지요?"


"저 영만 엄마예요. 아이들이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 전해받았습니다. 시화에 학교와 학년 반이 적혀있어 선생님을 찾고 싶어 이렇게 학교로 전화드렸어요. 혹시 자녀가 있으신지요?"


"국어 수업으로 아이들과 시화를 만들었는데 실제로 전달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얼마나 힘드실까요.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셨다니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직 미혼이에요."


"어머, 저는 솔직히 자녀를 두신 나이 지긋한 선생님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을까요. 아이들의 시를 읽으니 영만이가 살아 돌아온 것만 같아 밤낮으로 꺼내 읽으며 큰 위로받고 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로부터 열흘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교실에 흰 편지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보낸 이에는 '영만 엄마'라고 적혀있었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너희들이 보낸 시화에 답장이 왔어!"


"정말요?"


  이들 앞에서 봉투를 뜯었다.

노란 A4용지 3장에 손 글씨로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 내려간 편지가 담겨 있었다. 시화에 적었던 아이들의 이름을 보시고 우리 반 스물여섯의 이름을 다 적어 마치 엄마가 자식에게 보내듯 가득 채워진 글 속에 진심이 전해졌다. 아이들이 모두 읽어볼 수 있도록 교실 뒤 게시판에 붙여 두었다. 차가운 슬픔 속에서 그 날 만큼은 아이들도 나도 유난히 따뜻했다.


  다음 날, 현우가 노랑 리본을 아이들 수만큼 챙겨 왔다.

사물함 문고리에 달면 좋겠다는 말에 그러자고 했다. 아이들은 노란 리본을 하나씩 받아 들고 각자의 사물함 문고리에 걸었다. 교실은 순식간에 노란 물결로 일렁였다.


  그 아픈 해가 지나갔다.

그 이듬해, 또 그 이듬해에도 도덕이나 사회 수업 시간에 세월호 관련 영상을 보여주고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며 교실 뒤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곤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엄마가 된 지금, 영만 어머니가 살아낸 10년의 세월의 아픔이 조금 더 가슴에 닿아 나는 또다시 눈물을 훔친다.

엄마, 내가 별 이야기 해준 거 기억나?
나 우주학자가 꿈이었는데,
지금 하늘의 별이 되어 너무 행복해.
그러니까 더 이상 울지 마.
이젠 내 생각하면서 활짝 웃어줘.
그리고 쑥스러워서 말 못 했는데
10년 만에 얘기하네.
엄마, 사랑해.

-하늘의 별이 된 엄마의 소중한 아들 영만이가-


P. S. 0416 세월호 10주기를 추모하며, 

세월호 유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임형주 - 천 개의 바람이 되어 (2014 Remastering Ver.) [가사/Lyrics] (youtube.com)

매거진의 이전글 D+8 :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