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말레이시아, L군 K군 J군(2)

17 India, Malaysia

by 서꾸

사실 우리는 인도에서 함께 여행하거나 엄청나게 많은 추억을 공유한 사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우다이푸르에서 만났던 동생들과 2주 정도를 함께 여행했고, L군 K군은 바라나시에서 저녁보트 같이 타고 술 먹은 사이, J군은 떠나는 날 밥 한 끼 같이 먹었던 사이였다. 사람의 인연이 참 신기한 게 델리에서 옷깃만 스쳤던 사이가 될 수 있었는데, 어쩌다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도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옷깃만 스칠 수도 있었던 인연을 K군이 묶어두었고, 우린 평생지기가 되었다.

K군은 그 해 일을 잠시 쉬고 세계여행을 떠났다. 중국을 시작으로 티베트, 아랍에미리트, 유럽 곳곳, 모나코, 조지아, 이란, 요르단, 그리고 남미, 북미까지 세계 곳곳을 일 년 동안 여행했다. 지금도 휴가를 내고 발리에 가 내게 여행욕구를 자극하는 K군은 내 다른 나라에 가서 살아보아야겠다는 결심에, 그리고 진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것에 영향을 준 사람이기도 했다. 세계 여행을 하며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며 나도 언제쯤 용기 내어 훌쩍 떠나 볼 수 있을까 가슴이 몰랑몰랑해졌다.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일 년 무급휴직이 가능했던 거지만, 무급으로 쉰다는 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또 승진이나 다른 무엇을 좇는다면 쉽게 한국 생활을 쉬고 다른 곳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K군은 용감하고 당찬 사람이었고,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K군이 세계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강남에서 송별회를 했다. 인사할 사람이 많았던 K군이라 K군은 잠깐 얼굴만 비추고 자리를 떠났고, L군 J군과 함께 양꼬치를 먹었다. 그리고 함께 말레이시아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처음 우유니 사막 사진을 보았을 때, '나 여기 죽기 전에 꼭 갈 거야.'라고 결심했다. 남미를 가겠다고 결심한 이유였다. 기차표를 예약하지 않은 탓에 무려 2박을 로컬버스 통로 자리에 쭈그려 앉아 갔다.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소금 사막. 1~3월은 우기라 원래 물이 차있어야 했는데, 지구온난화로 물은 말라있었고, 사진 포인트가 되는 물 웅덩이에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더 큰 울림을 느끼고 싶었던 나의 갈망이 실망으로 바뀌던 순간이었다.

마추픽추는 누구나 페루를 방문하면 가는 곳이라 향한 곳이었다. 하지만 어느 교과서나 흔히 접하기 쉬운 책에서 사진으로 먼저 만났던 곳이었다. 마추픽추에 올라 구름이 걷히고 그 광경을 바라보며, '아 마추픽추구나.'라고 한 마디 내뱉는 정도의 감흥을 느끼며, 어쩌면 여행을 많이 다닌다는 것이, 내 감흥의 역치를 늘려놓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봐왔던 광경을 넘지 못하면 이제 그런 울림을 느낄 수 없는 걸까. 슬퍼지는 순간이었다.

남미 여행을 마무리하고 결심했던 것이, 그렇다면 감동의 역치를 넘기기 위해 다른 세상으로 가야겠다는 것이었다. 그곳이 '바다'였다. 지구의 70퍼센트 이상이지만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기로 결심하고, 그 해 여름 강원도에서 오픈워터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과정을 거치면서 느낀 것은 나는 물을 참 무서워한다는 것이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뿌연 한국 바다에서 조금만 깊숙이 들어가면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자격증을 따려면 물 안에서 마스크를 벗었다 빼기도, 호흡기를 벗었다 빼기도 해야 하는데, 그 과정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몇 번이나 더 머뭇거리고 몇 번이나 더 덜덜 떨다가 겨우 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면서도 바닷속이 좋았다. 벌벌 떨면서 그렇게 무서우면서도 고요한 가운데 내 호흡기 소리만 ‘고 오오오오오’하고 들리는 그 순간이 좋았다. 바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보이는 그 풍경이 짜릿하게 좋았다.

인도에서 만난 L군과 J군은 이미 어드벤스드 자격증이 있었고, 여러 번 다이빙 여행을 다녔던 사람들이었다. K군이 세계여행을 떠나려 하던, 그 송별회 날 셋이 말레이시아에 다이빙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행에서 만나 다시 다른 여행을 가기로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둘 다 어드벤스드 자격증이 있는 상태에서 그 자격증을 따야 하는 나를 데려가는 것은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음에도 나를 데리고 말레이시아에 같이 가준 그들이 참 고마웠다.

우리는 티오만이라는 섬으로 갔다. 자격증을 따야 하는 나를 위해 한국인 강사님을 모셨고, 장비는 현지에서 대여했다. 살랑 비치는 내 걸음으로 20-30분 걸리는 작은 해변이었는데, 아침마다 쪼리 끌고 산책한 다음, 돌에 앉아 멍 때리는 것이 행복한 공간이었다. 문제는 ‘나’였다. 물 공포증으로 처음에 입수도 어려웠고, 오픈워터 자격증이 있었지만, 일 년 전에 땄던 거라 거의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수준이었다. 밤에는 어드밴스드 자격증을 따기 위해 자정까지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공부를 끝내고, 시험에 통과하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 수고한 나를 위해 일행들이 두고 간 맥주 두 캔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가슴 저 밑에서부터 따뜻한 물이 차오르는 기분. 그렇게 L군과 J군은 내게 넘치게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바닷속이 편안해졌고, 다이빙을 즐기기 시작했다. 보통 새로운 뭔가를 배울 때 보면 천천히 조금씩 느는 것이 아니다. ‘유레카!’처럼 한 순간 계단을 점프해 올라가는 순간이 잇다. 그때의 짜릿함이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묘미도 거기에 있지. 우리는 낮에 다이빙을 2-3 깡 정도 하고 저녁을 먹고 밤새 맥주를 마셨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더 이상 내가 살아갈 순간 중에 기대할만한 순간이 없을 수도 있겠다. 삶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는 순간. 생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 그런데 이 여행에서 절실히 느꼈다. 아, 나는 미친 듯이 삶을 열망하는구나. 살고 싶어 하는구나. 물에서 죽고 싶지 않아 아등바등 대고, 지금 이렇게 물 밖에서의 여유를 즐기는 행복한 순간을, 생의 순간을 사랑하는구나. 그러니 더욱더 이 생의 중앙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L군, J군과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살랑 비치에서 함께 보냈고, 농밀한 시간 속에서 내게 ’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이상의 사람들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를 나오면 바로 바다가 보였다. 그곳에 큰 돌 하나가 있었는데, 그 위에 앉아 책을 읽기도, 그냥 멍을 때리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돌 위에 J군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 나란히 앉아 바다를 바라봤었다. 마음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나는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J군은 나와 나이도, 직업도 같았다. 사실 그래서 인도에서 처음 만났을 때 경계하기도 했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여행을 나오면 같은 직군의 사람에게 적대적이 된다.) 살랑 비치에 함께 있는 동안 서로를 놀리기도, 또 서로를 도와주기도 하면서 굉장히 친한 친구사이가 되었다. 다시 쿠알라룸프르로 돌아와 일정이 달랐던 L군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J군과 나는 쿠알라룸프르에 이틀정도 더 머무르며 함께 여행했다. 지하철 표를 끊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대학교를 찾아가 학식도 먹어보고, 또 아무 공원이나 들어가 노상을 까기도 하며, 또 영화관에 가서 말레이시아 영화를 보기도 하는 그런 여행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연인이 되어 있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한다. 이때 우리가 친구로 남았더라면, 아직도 J군이 내 친한 친구로 남아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 J군은 말레이시아 여행을 마치고 몽골로 파견을 갔다. 그다음 해 나는 인도네시아로 파견을 갔고, 어느덧 우리는 남이 되어 있었다.

L군, K군과는 지금도 여전히 여행지기이자 서울에서의 술친구로, 농밀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 지금 나이로비에 있는 나, 발리에 있는 K군, 서울에 있는 L군, 우리에게 또 어떤 여행지가 기다리고 있을지,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지 기대되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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