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L양

2018-19

by 서꾸

어렸을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막연히,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대학교 때 필리핀에 2달 있어보기도 했지만, 아직 쫄보였던 20살의 나는 거의 학원 안에서만 살다시피 해서 그 나라 자체에 산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졸업 후 캐나다에서의 4개월은 온전히 그 나라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했다. 근데 그것마저도 사실 오전에 학원 갔다가 오후에는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여행자로서의 4개월 동안의 삶이었다. 늘 내게는 여행 말고 진짜로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그러다가 재외한국학교 초빙교사 공고를 보게 되었다.

재외한국학교는 한인들이 많이 사는 동남아시아, 중국에 대부분 위치해 있다. 33개국 초빙교사 공고를 쭉 보다가 유일하게 생소한 이름, 그리고 가보지 못했던 곳이 바로 ’ 자카르타‘였다. 그리고 그곳에 지원서를 넣었다. 그야말로 그냥 지른 셈. 그때 세계여행을 하고 있던 K군과, 몽골에 파견 가 있던 J군의 영향도 아마 있었으리라. 하지만, 경쟁률이 세고, 난 어떠한 경력(부장, 연구대회 등)도 없는 일개 교사 나부랭이였기 때문에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1차 서류 3 배수에 붙고, 2차 면접까지 붙으며 내 인생의 회오리가 시작되었다. 전세로 살던 집을 내놨고, 가구들을 다 버렸고, 겨울 옷도 다 버렸다. 끊임없는 버림의 연속. 이상하게 버리면 버릴수록 마음이 가벼워졌다. 옷장 속에 두고 일 년 내내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이 생각 보다 많았다. 책상도 대학원 공부가 끝나고부턴 필요 없이 공간만 차지하던 녀석이었다. 나한테 필요한 게 이렇게 캐리어 두 개구나.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내 인생의 큰 챕터 하나가 끝나고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는 기분. 그리고 그렇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라는 곳에 입성하게 되었다.

L양은 자카르타로 입성한 첫날 호텔에서 처음 만났다. 그 해 한국에서 초빙으로 인도네시아에 들어갔던 교사가 7-8명 정도 되었는데, L양은 그중에 한 명이었다. 처음 묵을 호텔은 학교에서 제공해 주었고, 호텔에 묵으면서 살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나는 한국에서부터 자카르타의 이태원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고 들어 미리 한국인 부동산을 통해 끄망을 알아본 상태였는데 L양은 에어비앤비로 한 달짜리 살 집을 예약해서 왔었다. 이때부터 뭔가 나보다 더 대책 없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은데. L양의 에어비앤비 숙소는 누수가 빈번해 물이 넘쳤고, 더 이상 살기 어려워 중간에 내가 계약한 끄망 쪽으로 부동산을 알아봤다. 그리고 같은 건물에 거주하게 되면서 출퇴근 메이트가 되었다.

L양은 남자친구와 헤어져 힘들 던 터에 추가공고가 난 것을 보고 지원해 오게 되었다고 했다. 33개국 중에 한 번도 안 가본 나라라서 자카르타를 지원했던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낯을 많이 가리던 나에 비해 L양은 친화력과 생명력이 강했고, 그때 함께 자카르타를 갔던 선생님들과 무리를 만들어 함께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선생님들 외에 자카르타에 거주하는 나이 비슷한 한국인들 모임을 찾아 나를 데려가 주기도 했다. 아마 L양이 없었으면 자카르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굉장히 우울한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자카르타는 각 지역이 섬 같다. 교통체증이 심하고 걸어 다니기 힘들어 차가 없으면 이동하기 힘들고, 이동시간도 길어 각자의 섬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 곳에서 친한 사람 하나 없이 지냈다면 아마 우울증에 걸렸을 것 같다.

L양과 처음 같이 갔던 여행은 반둥이었다. 반둥은 자카르타에서 동쪽 방향으로 150Km 정도 가면 있는 도시다. 해발고도가 1000m 이상이라 자카르타보다 날씨가 선선해서 좋은 곳인데 자카르타에서 반둥까지 가는 길에 찌까랑 등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근교 도시들이 많아 차가 정말 많이 막혔다. 안 막힌다면 3시간 걸릴 거리를 7시간을 걸려, 차에서는 맥주를 마시며, 화장실 이슈를 겪으며, 급격하게 친해졌다. 1박 2일 여행이라 내내 차에만 있다 한식당 가서 한식먹고 돌아오는 엔딩이지만 좋았던 여행. 두 번째 여행은 뿔라우스리부였다. 뿔라우스리부는 극한 여행의 서막이었는데, 학교 인니어 선생님이었던 현지인을 통해 싸게 예약한 여행이었다. 자카르타 안쫄 해변에서 배를 타고 1-2시간 정도 가면 있는 섬 중에 하나였던 하라빤이라는 섬에 묵었다. 현지인을 통해 예약한 터라 우리는 숙소도 현지인 그 자체인 곳에 묵었고, 빈 땅 맥주를 줄곧 먹고 하루종일 취해서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상태를 만들어서 숙소에 대한 근심걱정을 잊는 전략을 시작했다. 낡은 침대 하나에 같이 누워 자고, 불편한 화장실 이슈에, 결국 가족과 같아지게 되었던 여행. 그렇게, L양과 사회에서 만나, 어쩌면 가장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다. 우기가 되면 쓸쓸하고 외롭다고 했던 L양이 종종 기억난다. L양은 강하고 생명력이 넘쳐나 보였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여린 사람이었다.

L양과 2년 동안 자카르타에 살면서 네 번의 여행을 같이 했다. 반둥, 하라빤, 길리, 빈탄.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해, L양은 두바이에 있는 조종사 학교에 시험을 치러 갔다. 그리고 지금, 아부다비에 사는 그녀는 비행기 조종사의 삶을 살고 있다. 2024년 여름, 조지아에 여행 갔을 때 L양이 트빌리시로 건너와 여행을 함께 했고, 2025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지금, 아프리카 여행을 가기 전 아부다비에 사는 그녀를 만나 함께 여행했다. L양의 집에 머무르며, 겁이 많지만 시간을 두고 다가와 내게 안기는 고양이 ‘호주’가 그녀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녀가 행복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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