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B양

25, Tanzania

by 서꾸

어느 순간에서부터 여행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정말 가고 싶어서, 간절해서 간다기 보단, 그냥 있는 것보단 떠나는 것이 나아서 가는 여행. 그래서 이번엔 아프리카였다. 나에게 낯선 대륙. 사실 기대도 없었다. 그냥 안 가봐서 가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향한 곳이었다. 예전엔 비행기 티켓을 끊으면 그 티켓을 책상 앞에 붙어두고 바라보며 두근거렸던 나인데, 그런 나는 어디로 갔을까.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설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이로비로 떠났다. 나이로비는 생각보다 굉장히 난이도가 높지 않았고, 또 그러면서 잣대를 인도에 대는 게 스스로 웃겼다. 나에게 모든 여행의 기준은 ‘인도’였다. 남미를 가도 '에이, 인도보다 어렵지 않네'라는 생각을 했고, 아프리카 첫 도시였던 나이로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나이로비에서 모시로 국경을 넘을 때 처음으로 나는 이곳에서 처절하게 '이방인'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권에 도장의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케냐에서는 내 출국을 거부했고, 탄자니아에서는 내가 비자 날짜를 잘 못 적었다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했다. 가끔 보면 입국심사관은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너를 입국시켜주지 않으면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태도. 그래서 그 힘이 무서우면서도 그 사람 자체가 그 힘을 스스로 자랑거리라고 생각하고 과시한다면, 정말 오만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케냐에서는 도장의 여유가 없다고 보내줄 수 없다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는데, 탄자니아에서는 비자 날짜를 앞으로 당겨주겠다고 하며, 케냐에서 도장의 여유가 없다던 그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이렇게 국경 넘는 게 심장 쫄깃했던 적이 있던가. 그렇게 모시에 도착했다.

모시는 킬리만자로 아래에 있는 작은 도시였다. 크지 않은 도시였는데, 모시에서 유명한 건 킬리만자로 산과 쳄카 온천이었다. 비용이나 체력이나 자신이 없던 나는 킬리만자로는 눈에만 담기로 하고 쳄카 온천을 가기로 했는데, 혼자 물놀이를 하러 가려니 짐 보관이나 그곳까지의 이동이나 여러 가지가 걱정되어 동행을 구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B양이었다.

처음엔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했다. 동행으로 만나면 정말 용건만 같이 해결하고 헤어지는 경우도 많아서, 서로 나이도 물어보지 못하고 존대를 하면서 같이 물놀이를 했다. 쳄카 온천에서 둘이 신나게 수영을 하다, B양이 맥주를 마시겠냐며 출발하기 전 마트에서 산 맥주를 건넸다. 안 그래도 물놀이 후 맥주가 절실했던 나는 거의 B양에게 반한 표정으로, 한껏 행복한 표정으로 그 뜨끈한 맥주를 즐겁게 받아 마셨다. 아마 그 순간이 우리가 서로 통한다고 느꼈던 지점이었던 것 같다.

B양과 쳄카온천에서 돌아오던 날, 우리는 사파리 맥주와 함께 저녁을 먹었고, 서로 동갑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이 B양의 고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고 더 신나서 와인샵에 가서 함께 두 병의 와인을 마셨다. 이방인으로 완전히 낯선 탄자니아 모시에서 이렇게 잘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여행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했던 공통문보가 있던 우리는 그날 밤 신이 나서 서로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잔지바르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B양은 그 다음날 잔지바르로 떠났고, 나는 모시에 이틀 더 머물렀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잔지바르로 도착한 나는 툭툭을 타고 잔지바르 스톤타운에 도착했고, 짐을 풀자마자 해변가의 어느 펍을 찾았다. 그때, B양에게 연락하자, B양은 나와 지척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하나는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맥주를 찾아 떠나고, 또 다른 하나는 아침에 일어나 마자 바다 앞에서 맥주를 마실 생각을 한다는, 그 사실이 너무 신기해서 함께 굉장히 웃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그날 맥주를 줄곧 마셨고, 마지막엔 와인을 줄곧 마셨다. 그다음 날과, 또 그다음 날엔 바다로 떠나는 투어를 같이 떠났다. 스노클링도 하고, 현지식도 먹는 그런 투어였는데, 조금 약간 비싼 가격에 맥주를 팔았다. 화장실을 갔다 오니 B양이 맥주 두 병을 사 들고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심장이 쿵 했던 순간. 그렇게 잘 맞았던 우리는 투어가 끝나면 바다가 보이는 펍에 가서 맥주나, 와인이나, 뭐든 술을 마셨다. 서로에게 인상 깊었던 여행지에서의 에피소드를 풀어놓기도 하고, 인생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서로 바다를 보면서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아도 그냥 그것대로 좋았다.

B양은 내 이야기를 참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따뜻한 사람이기도 했고, 나와 영화를 보는 것, 책을 읽는 것, 인생에 대한 관점 등이 굉장히 비슷했다. 그래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태어나서 이렇게 나와 취향과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있었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원래 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B양 앞에서는 신나게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쓴 글을 마구 꺼내 보였고, 그 글을 읽고 B양이 보여주는 반응을 좋아했다. 그래서 B양이 떠난 이후 외로워졌다.

B양은 한국으로 먼저 돌아갔고, 나는 2주의 시간을 잔지바르에서 더 보내야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마지막 여정, 잔지바르 능귀에 머물고 있다. 무엇을 하든 B양이 보였고, B양이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이렇게 소중한 사람을 만난 것이 내 인생의 큰 복이라 여기며, 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이어나갈 그녀와의 인연이 기대가 된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11화까미노, P군, K군, J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