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portugal
2018년에 스페인 까미노길을 걷고, 같이 만났던 사람들은 포르투갈길도 걸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본 풍경, 느낀 감정들을 내게 전해주었다. 그래서 언젠가 나도 포르투갈길을 가보고 싶다 하던 찰나, 겨울 여행지를 고르며 포르투갈을 선택했다. 2012년 처음 유럽에 갔을 때 다짐 했던 건 절대 다시는 혼자 유럽에 오지 말아야 지였다. 혼자인 유럽은 너무 외로웠다. 삼삼오오 모여 테라스에서 와인을 마실 때 나는 휴대폰만 만지작만지작 거렸다. 다음에는 친구나 연인과 와야지, 혼자는 오자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유럽에 다시 혼자 갔다. 그래도 까미노 길을 걸으면 외롭지 않겠지 싶었다.
혼자 여행하며 외롭지 않으려면 동행이 필요한데, 그런 유럽여행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유명한 네이버 카페가 하나 있다. ‘유랑’. 그런데 웃긴 건 동행을 찾는데 다 나이제한이 있다. 여기가 뭐 핫한 클럽도 아니고, 나는 나이 때문에 입구컷 당하는 건가. 20대 동행만 원한다는 숱한 글 사이에, 나이와 성별 상관없이 포르투 동행을 구한다는 글이 하나 올라왔다. 그 글로 만난 사람이 K군과 Y양이었다.
리스본 인아웃이었던 나는 도착해 리스본에서 1박만 하고 기차를 타고 포르투로 넘어갔다. 넘어가면서 그 글을 올린 사람의 오픈 채팅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그 방엔 글을 올린 사람(aka K군)과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여자가 있었는데, 그날 동루이스 공원에서 일몰을 함께 보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러다 나는 기차가 지연되어 저녁 늦게 도착했고, 숙소에 짐만 넣어놓고 저녁식사 장소로 향했다. 그렇게 K군과 Y양을 만났는데, 내가 그때 만 나이로 이야기해 버리는 바람에 동갑이었던 Y양은 지금도 내게 언니라고 불리고 있다.
신기하게 K군과 Y양과 나는 나이가 비슷했다. 나이가 아주 어렸던, 유럽에서 교환학생 중이었던 여자아이는 일찍 자리를 떠나고 셋이서 와인을 여러 병 마셨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Y양과 둘이서 포르투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나는 혼자 다니면 게으른 여행자가 되어 숙소에 계속 있다가 동네나 한 바퀴 돌고 마는 성격인데, Y양은 포르투의 A부터 Z까지 다 봐야 하는 성격이었다. 난 또 그런 동행자가 있으면 열심히 따라다니는 성격이라 열심히 따라다녔다. 줄을 서는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을 먹기도 하고, 사진을 찍는 스폿에 가서 서로의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혼자 다니면 사진을 잘 못 남기는 데 그때 Y양 덕분에 사진을 많이 남겼다. 그리고 밤이 되면 강이 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와인을 한 병, 두 병 비웠다. 여행에서 만나 이렇게 함께 추억을 쌓을 수도 있구나, 깨달았던 순간.
Y양의 직업은 비서였는데, 짧은 휴가를 내고 포르투갈과 프랑스를 여행 온 사람이었다. 사실 나와는 성격이 많이 달랐는데. 예를 들어 나는 배낭 하나만 메고 떠났다면, Y양은 캐리어가 두 개였다. 그리고 난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에 묵었다면, Y양은 동루이스 다리가 보이는 호텔에 묵었다. 그렇게 다르면 그 레스토랑에서 밥이나 먹고 헤어질 만도 한데, Y양은 사람을 좋아했고, 그 좋아하는 마음을 계속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마음을 또 좋아했던 나는 그래서 계속 Y양과 같이 다녔다.
그렇게 이틀을 함께 다니고 나는 스페인 세비야로 향했고, Y양은 프랑스 몽블랑으로 향했다. 캐리어 두 개를 이고 지고 눈 내린 언덕 위 숙소를 가서, 또 거기서 소주를 뜯어서 마시던 Y양과 영상통화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랜선으로 또 함께 유럽여행을 했던 우리는 각자의 일정에 맞게 한국으로 들어왔다. Y양이 먼저 한국으로 들어오고, 다음 내가 들어왔다.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 함께 만나 술을 마셨고, 지금은 인생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다. 여러 번 만나고 서로의 속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면서 Y양이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아주 솔직한 그녀는 그런 외로움을 숨기거나 하지 않고 그대로 나에게 표현해주었다. 불현듯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세계여행을 떠났던 그녀는 아직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중이다. 지난겨울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여행 중이던 내게 울면서 전화했던 Y양이 떠오른다. 어디에서 무얼 하던 그녀가 행복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