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Mexico
공항에는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과 또 어딘가 내 보금자리가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뒤엉켜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뿜는 설레는 감정이 뒤엉켜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복장도 가지각색이다. 여름으로 떠나는 사람들과 겨울로 돌아오는 사람들과 또 비행기를 타기 위해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사람들. 문득 인도네시아로 떠나면서 내 겨울 옷 모두를 버리고, 마지막 겨울옷을 공항 쓰레기통에 버렸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전혀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떠났는데, 나는 또 서울에서 겨울옷 한가득을 집에 두고 살고 있네.
난 참 가고 싶은 나라를 고르는데 생각보다 생각이 없고, 또 생각보다 생각이 많게 고른다. 영화 ‘세 얼간이’를 보고 인도에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정말 책 한 권 들고 무작정 인도 ‘레’라는 곳에 갔었다. 그렇게 인도의 매력에 빠져 또 인도를 갔었고, 네팔을 갔었고, 네팔에서 만난 친구의 추천으로 까미노도 갔었다. 몽골에서 만난 친구들을 만나겠다고 네덜란드를 가기도 하고. 모두 충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유가 있는 여행지였다. 사실 멕시코를 여행지로 결심하게 된 것은 ‘쿠바를 가고 싶어서’였다. 이유도 웃긴 게 드라마 ‘남자친구’에 쿠바 말레콘 비치와 도시 풍경을 매력적으로 그려놓았는데, 그거를 보고 쿠바를 가야겠다! 한 것. 그러면서 비행기표를 찾았는데, 쿠바로 들어가는 게 너무 비싸서 멕시코로 들어가 미국으로 나가는 비행기표를 끊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쿠바는 저가항공을 이용해 멕시코에서 갔다 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출국 3일 전에 쿠바에 들어간 기록이 남아있으면 미국 입국에 필요한 ESTA비자를 쓸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쿠바를 가면 미국을 갈 수 없었고, 미국 아웃이었던 나는 쿠바를 갈 수 없었다. 결국 쿠바를 가기 위해 고른 여행지였던 멕시코에 더 오래 머물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멕시코는 정말 정말 좋았다.
쿠바를 가고 싶어서 선택한 여행지라 아무 생각이 없던 나는 일단 멕시코시티에 도착해 그다음 여행지를 찾는 식으로 여행을 다녔다. 일단 인상 깊게 봤던 영화 ‘코코’의 배경이라는 도시에 다녀왔고, 또 동행을 구하다 전혀 계획에 없던 ‘똘랑똥꼬’라는 온천에 다녀오기도 했다. 어쨌든 아웃도시인 칸쿤까지는 가야 했던 나는, 처음엔 육로로 멕시코를 한 바퀴 돌려고 했는데, 계획을 짜다 보니 그렇게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비행기를 한 번은 타야겠다 생각하고 고른 곳이 멕시코시티에서 바깔라르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물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내륙이었던 와하카 쪽 보다 유카탄 반도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 바깔라르는 예능 ‘서진이네 ‘에 나온 공간이라 유명해진 공간인데, 마찬가지로 나영석 PD의 윤식당에 나왔던 길리가 너무나 좋았던 나였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바깔라르로 향했다. 바깔라르에는 공항이 없어서 체투말로 이동해 콜렉티보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좌석도 없는 저가 항공을 타고, 2시간을 날아 체투말을 거쳐 또 1시간을 콜렉티보를 타고 달려 바깔라르에 도착했다. 내리는 순간 완전 다른 세상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고산지대였던 멕시코시티에서는 밤에 패딩을 입고 다녔는데, 바깔라르는 완전히 여름이었다.
도착한 날 한국에서부터 인터넷으로 유카탄 반도 어디 즈음에서 보자고 약속했던 일행을 만났다. 그 친구가 바로 K양이었다. 한국에서 행정업무직으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하는 친구였다. 공교롭게도 멕시코가 세계여행의 시작점인 친구였고, 여행 중 한국인을 두 번째로 만났다고 해서 K양은 그녀의 블로그에서 나를 ‘두리 씨’로 불렀다. 첫날 같이 피자 파스타를 먹고 맥주도 마시고 내 숙소에서 열리는 파티에도 갔다. 아직 세계여행의 시작점에 있던 K양은 내가 갔던 나라도 갈 예정이었던 터라, 내 여행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었다. 우리는 바깔라르에 같이 있었지만 모든 걸 함께하지는 않았다. 각자 적당한 속도에 맞춰 개인 일정을 보냈고, 시간이 맞으면 호수에서 만나 함께 수영을 하고 놀았다. 수영을 하고 같이 밥을 먹기도 했지만, 때론 각자 또 속도에 맞춰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수영하고, 앉아 구경하기도 하고, 천천히 흘러갔던 바깔라르의 시간. 여행이 재밌는 이유, 어제의 내가 아득해진다는 것. 체투말로 가는 좌석 없는 비행기를 타고, 내려서 배낭을 메고 한 시간을 걷고, 콜렉티보를 갔던 어제의 나는 바깔라르 호수 앞에 앉아있는 나와 아득하게 달랐다.
K양은 바깔라르에서 2박을 한 후 플라야델까르멘으로 이동했고, 유카탄 반도에서의 일정이 K양보다 조금 길었던 나는 틀룸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틀룸에서의 3박을 한 후 나도 플라야델까르멘으로 이동했고, K양과 다시 만났다. 여행지에서 만나 각자 다른 도시에 머물다 다시 다른 도시에서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굉장히 반가웠다. K양과 나는 플라야델까르멘에서 배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코즈멜섬에서 스노클링을 하기도 하고, 밤엔 코코봉고라는 클럽에 가서 엄청난 쇼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 각자의 시간을 각자의 공간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K양은 칸쿤공항으로 이동해서 콜롬비아 메데진으로 이동했다.
블로그를 하는 K양은 그 이후로도 여행일기를 끊임없이 블로그에 올렸다. 어쩌다 생각이 나면 들어가서 블로그 글을 보기도 했는데, 일 년이 지난 지금 쇼트커트를 한 그녀의 모습은 여행을 통해 강해진 것 같달까,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것 같았고, 또 많은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멕시코에서는 맥주 한 잔 정도 먹었던 그녀는 놀랍게도 술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여행은 잠시 떠났다 다시 돌아와도, 본인은 느낄 수 없을지 몰라도, 미묘하게 변화가 생긴다. 그런데 일 년을 떠나있다 보면, 많은 것이 변하겠지. 문득 지금은 호주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있는 그녀의 안부가 궁금하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