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M군

15, Mongolia

by 서꾸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아마도 여행이 끝난 후 그것을 예쁘게 채색해서 기억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여행에서 힘든 순간도 있고 내가 여기서 왜 사서 고생하고 있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끝나고 귀국 비행기를 타면 늘 아름답게 채색되어 다시 떠나고 싶어졌다.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힘든 이 순간도 지나면 아름답게 채색되어 기억될 거라고.

M군은 울란바토르 숙소에서 처음 만났다. 몽골은 여행사를 통하지 않으면 혼자 다니기 힘든 곳이라, 고비사막투어도, 홉스굴도 미리 네이버카페에서 일행을 구해둔 상태였다. 홉스굴은 지금은 ‘대장님’이라고 불리는 분이 네이버카페에서 사람들을 모아서 5명의 일행들과 함께 가게 되었다. 그중 한 명이었던 M 군이었는데, 다른 일행들은 모두 그다음 날 도착하는데 M군만 하루 일찍 도착했던 터라 고비여행 후 울란바토르에서 머물고 있던 나와 둘이 처음 만났다. 둘이 국영백화점 주변 포장마차 같은 거 데서 양꼬치를 먹었다. 이때 참 많이 웃었던 것 같다. 피곤한 상태에서 맛있는 음식과 맥주를 먹어서 즐거웠고, 배울 점이 많은 친구와 즐겁게 대화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또 야외포차라 해질 무렵의 선선한 바람이 내 주위를 맴돌아서 좋아다. 또 홉스굴에서 M군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지 기대가 되었다.

일행들은 모두 비행기를 타고 홉스굴로 이동했고, 나만 버스로 이동했기 때문에 울란바토르에서 헤어진 후 홉스굴로 가는 무릉 버스 정류장으로 일행들이 나를 데리러 왔다. 밤버스를 타고 도착했던 터라 ATM기에서 노숙하고 오전 비행기로 12시 반 정도까지 도착하는 일행들을 므릉에서 기다렸다. 휴대폰 배터리도 간당간당해서 노래도 못 듣고 그냥 진짜 8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렸다. 서울은 바쁜 도시라서, 그리고 나도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시는 성격이라 늘 부산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그 시간은 팽팽하게 죄인 내 기타 줄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그냥 멍 때리고 바라보는 시간. 좋았다, 그래서. 그래도 그 시간보다도 일행들을 만나서 더 좋았다. 사실 멍 때리면서도 못 만날까 봐 걱정했던 쫄보였음을.

므릉에서 홉스굴로 달리는 장면은 영화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에서 월터가 자전거를 타고 쭉 달리는 장면 같았다. 나름의 고생을 하면서 사막과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고비사막투어도 좋았지만, 홉스굴은 정말 아름다워서 도착하자마자 돌고래 소리를 뿜어내게 되는 공간이었다. 홉스굴에서는 고비보다 훨씬 좋은 숙소에서 지내면서 굉장히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매일 낮에는 말을 타거나, 카약을 타거나, 산을 걷기도 했다. 그리고 늘 밤에는 보드카를 마셨다. 보드카를 마시다가 취기가 오르면 게르 밖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별을 봤다. 낭만치사량이었던 시간.

홉스굴 마지막 날, 숙소 뒤편에 있던 산 하나를 M군과 둘이 올라갔다. 등산 경사가 체감 90도라서 한 발 한 발 내딛기도 힘들었고 해지기 전에 내려와야 해서 최대한 쉬지 않고 빠르게 올라가느라 계속 헉헉댔다. 헉헉대다 뒤를 돌아서 바라본 풍경에 말문이 막혀 움직이지 못했다.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이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M군의 표현에 의하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있고 싶은 공간‘. 그 풍경을 바라보며 둘이 노래를 들었다. 선곡은 캐스터의 ’ 산‘, Robin의 ‘숲이 되어’, 에피톤 프로젝트의 ‘이화동’.


'그 사람 빈 그 자리가, 첨엔 슬프고 쓸쓸해, 눈물이 비를 만들어 한동안 비가 왔단다. 그러다 그 빈자리에 꽃을 하나 심었단다. 그리움과 사랑이란 꽃을 하나 심었단다. 시간은 너무 빨라서 그 꽃은 나무가 되고 나무는 숲이 되어서 어느새 울창하더라. 가끔 수풀이 우거져 무서울 때도 있지만 가끔은 숲에 기대어 쉴 수 있단 걸 알았단다. 당신은 내 가슴속에 숲이 되어 남았단다. 그리움과 사랑이란 숲이 되어 남았단다.'


‘너는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죽음? 글쎄, 나는 죽음이 그렇게 두렵지 않아. 누구나 인간이면 다 겪어야 하는 거니가. 그 순간이 오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 그게 죽음 아닐까?’

‘타인의 죽음은 어때? 소중한 사람이 떠나버리면 어떨 것 같아?’

‘물론 부모님이 돌아가신가 신다고 생각하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플 것 같아. 그렇지만, 슬픈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에 대한 소중한 기억들이 또 생기지 않을까.’

‘너는 사후세계가 있다고 생각해?’

‘아니, 넌?’

‘난… 없다고 믿는데, 있었으면 좋겠어.’

‘왜?’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까.’


그 언덕 위에서 M군과 한 대화였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 죽음을 중심으로 뱅뱅 회전하던 삶을 살던 내게 M군과의 대화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여행과도 같다. 삭막한 세상에 살만한 이유 하나가 있다면 이런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날 잠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데 자기가 아쉬워 게르 앞에서 한 참을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잠에서 깨면 모두 꿈이었다 할 것 같아서. 이 시간들은 내 가슴속에 숲이 되어 남았다. 그리움과 사랑이란 숲이 되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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