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P군, K군, J군

18 Camino

by 서꾸

까미노를 처음 꿈꿨던 것은 엄마가 산 책 한 권 때문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엄마의 꿈이었다. 하지만 내 꿈이 된 건 네팔에서 만난 친구들 덕분. 네팔 히말라야는 정말 생각보다 더더 힘들었고, 예상보다 더더 멋졌다. 그냥 ‘멋지다’라는 표현으로 묘사가 되지 않는 공간, 아니 인간의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공간. 그곳에서 잠깐 스쳐간 인연들이 까미노를 추천해 줬다. 같은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추천해 준다면 분명 내 마음에도 들 거라는 그런 믿음. 물론 종교적인 이유로 까미노에 향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하루 종일 아름다운 길을 걷고 밤엔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술파티가 벌어진다니. 걷는 거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는 나에게 천국이라 느껴졌다. 하지만 가기로 결정하기에 쉽지 않은 곳이었다. 일단 완주하려면 넉넉히 35일이 걸리고, 가는 데 비행기값이 만만치 않았다. 방학 기간을 아무리 내어도 28일 정도밖에 내기 어려웠고, 그러면 하루에 더 많은 km를 걸어야 하는데 네팔 히말라야 셔킷을 중도포기하고 내려갔던 그 패배감이 날 괴롭히는 순간. 그래도 언제나 ‘갈까, 말까’할 땐 가는 게 내 신조니까. 일단 비행기표를 사고, 걷기 편한 운동화를 샀다.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옷을 상의 두 벌, 바지 두 벌 가지고 가서 매일 빨아 입기로 결심했고, 잘 마르는 스포츠셔츠와 바람막이도 샀다. 그리고 어느덧 여름이 되어 방콕, 파리, 바욘을 거쳐 생장에 도착했다.

까미노 프랑스의 첫 시작 점은 ‘Saint Jean’ 생장이다. 물론 생장 말고 오리손이나 팜플로나, 또는 부르고스, 레온, 심지어 사리아에서도 출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난 시간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그래도 출발은 생장에서 해야지! 하고 일단 생장으로 향했다. 생장-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788km. 과연 해 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출발했던 그때. 분명 네팔에서 만난 친구는 아름다운 밀밭 평지길을 걷는다고 했는데, 내게 첫날 피레네는 인적도 드문 산 하나를 타는 기분이었다.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었고, 까미노표식을 보고 오르는 길은 ’이게 길이야?‘하는 수풀을 안내해 줘서 뺑이돌고, 힘들고, 외롭고 그런 길이었다. 내가 왜 비싼 돈을 주고 이 개고생이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까미노를 다녀온 사람들이 쓴 글들이 다 끝나고 기억이 미화되어 그런 글을 썼다는 원망도 들었다. 오르막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 길이 끝나면 끝나겠지, 저 길 끝이 마지막이겠지. 한 없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 결국 드디어 1700m 정상에 도착해 만난 론세스바예스는 마을이라기보다 수도원 같은 숙소 하나였다. 나중에 그곳에서 조금 내려가면 마을이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 수도원 숙소를 마주한 나는 네팔에서 만난 친구들이 이곳을 추천한 것에 대한 원망까지 들 정도였다. 숙소 자판기에 있는 작은 맥주를 하나 마시고, 으슬으슬 춥고 아픈 몸을 이끌고 자판기 파스타를 하나 먹고. 그게 나의 첫 까미노였다. 유럽애들 왁자지껄 삼삼오오 떠드는데 나 혼자 아픈 몸으로 식당에 앉아 냉동식품을 먹고 있는 게 서러워서 정말 괜히 왔나 싶었던 첫날.

다음날 목표는 788km를 나 혼자 오롯이 걸어내기 위해 42km였다. 새벽 일찍 배낭을 메고 나섰다. 인적이 드문 해뜨기 전 산길이라 숙소에서 사람이 떠나는 동시에 그 사람을 악착같이 따라갔다. 깜깜한 숲길을 휴대폰의 부실한 불빛에 의존하며 미친 듯이 걸었다. 다행히 론세스바예스에서 첫 번째 목적지 쥬비리까지는 계속 내리막이었는데, 날씨가 비가 계속 와서 비를 쫄딱 맞으며 걸었다. 우비를 썼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도움이 되지 않았고, 비를 쫄쫄 맞으며 내려왔던 날. 가장 외로웠던 날이었다. 김윤아의 ’ 키리에’ 앨범을 들으며 내려갔던 날이었다. 그런데 또 지금 떠올려보면 참 많이 기억에 남는 길이다. 쥬비리를 거쳐 라라소냐에 도착했다. 여기서 18킬로를 더 걸어야 목표도시였던 팜플로나인데, 몸과 마음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던 나는 결국 라라소냐에서 그날 멈췄다. 그리고 중간에 버스를 한 번 타기로 결심했다. 글쎄 그런 순간들이 있다. 양갈래의 길에 서있는 순간. 만약 이때 내가 팜플로나까지 갔다면 내 까미노는 180도 달라졌겠지. 점프를 했을 수도 있고, 해도 다른 곳에서 했을 수도 있지. 그러면 만났던 사람들이 다 달라지겠지. P군이나 K군을 만나지 못했겠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의 연속 사이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사람과의 인연.

다음 날 라라소냐에서 팜플로나까지 걸어가 거기서 부르고스로 가는 버스를 탔다. 문명의 이기란. 걸어서 가면 8-10일을 걸어야 하는 길인데, 버스를 타니 3-4시간 만에 도착했다. 아직도 아쉬운 길이다. 팜플로나-부르고스. 그리고 다음 날 부르고스에서 다시 출발했다. 그리고 그때 P군을 만났다. 까미노에서 만난 첫 한국인이었는데, 저 멀리서 딱 봐도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스틱소리를 내며 걷다가 나와 마주치자 영어로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었다. 그리고 나는 또 거기에다 ‘I’m from Korea’라고 대답했다. 굉장히 우스웠던 순간. 알고 보니 P군과 전 날 같은 숙소에 머물렀고, P군은 내가 한국인이 아닌 줄 알았다고 했다. 노란 머리에 이상한 복장으로 다녀서 그렇대나. 이렇게 만난 P군은 부르고스에서 만난 귀인이었다. 부르고스에서부터는 길이 대부분 메세타 구간이어서 낮은 고원을 오르막 내리막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눈부신 밀밭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 내가 이 것 보러 온 건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멋지다. 오길 잘했다. 출세했네, 출세했어. 이런 광경이라니. 오르니오스는 알베르게가 세네 개 정도 있는 작은 동네였다. 그리고 P군과 같은 알베르게에 묵게 되어 같이 와인을 마셨다. 아직 서로 어색했던 순간.

까미노에서 내가 매일 했던 건 일어나서 고양이 세수하고 옷 갈아입기, 핸드폰 플래시 들고 걷기, 동트면 사진 찍기, 걷기 또 걷기, 도착하면 숙소 체크인, 샤워 후 빨래, 그리고 맥주였다. 일차원적인 매일매일. 한창 걷던 그때는 정말 평생을 그러고 걷고 있을 것 같았다. 매일매일 그렇게 걸었음에도, 모두 같지는 않았다. 길은 다 달라졌으니까. 어느 날에는 일출이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흐려서 해 뜨는 모습이 보이지도 않고 날이 밝아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 길 위에 내가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으면서도, 그때를 떠올리는 것을 상상만 하더라도 두근거리는 나를 보니, 나는 역시 길 위에 있는 나를 사랑하는가 보다.

아직 P군과 어색하던 그때, 알베르게는 같은 곳에 묵어서 서로 본인의 시간에 맞게 걷고, 도착하면 숙소에서 만나 술을 마셨다. 그러면서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발목 아프다고 징징댔더니 휴족 어쩌고 하는 일본 제품을 던져주고 갔던 게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P군은 피레네부터 버스 하나도 타지 않고 걸을 터라 초반에 나처럼 이렇게 발목이 아팠냐고 물어봤는데, 대답이 ‘어 아팠지, 근데 걷다 보면 괜찮아져’였다. 이 말 들었을 때는 무슨 개소린가 싶었는데, 진짜 걷다 보니 괜찮아졌다. 발목-종아리-무릎-허벅지 순으로 아파졌는데, 신기하게 발목이 괜찮아지면 종아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산티아고에 다다를 무렵에는 어깨가 아팠지 다리가 아프진 않았다.

내가 까미노를 걸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물어보는 질문이 ‘걸을 때 무슨 생각했어?’였다. 걸으면서 무슨 대단한 통찰을 하고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나 하는 질문 같은데 걸을 때 진짜 별 생각 안 했다. ‘도착해서 뭐 먹지’, ’ 돌아가면 한식 뭐 먹지 ‘ 그 생각이 다였다. 그런 의미에서 P군은 정말 내게 귀인이었는데, P군은 한국에서 요식업 관련 일을 하다가 일을 그만두고 까미노에 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P군이 걷다 만난 K군, J군을 또 만나게 되었고, 우리는 길 위에서 한식 파티를 하기로 결성되었다. 첫 번째는 까리온이었는데, 주방을 쓸 수 있는 숙소를 다 함께 잡고 삼겹살과 와인을 사다가 파티를 했다. 한국에서 들여온 라면까지 엄청난 파티였던 그날, 우리는 농밀하게 친해졌다. 이때 론세스바예스에서 울며 냉동파스타를 혼자 먹었던 그 시간을 다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같은 숙소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자기만 늘 출발은 자기 속도에 맞춰 떠났다. 그리고 또 자기 속도에 알맞게 도착하면 함께 모여 한식을 해 먹었다. P군은 엘 부르고 라네로에서 우리들에게 삼계탕을 선사했고, 만실라에서는 찜닭을 선사했다. 그리고 레온에서는 한인마트에서 소주까지 사다가 계란 토마토 볶음과 하몽을 얹은 메론을 먹었다. 긴 휴가에 까미노를 선택한 사람들이라 성향들이 다 비슷했고, 그래서 급속도로 친해졌다. 서로 속도에 맞춰 걷다가 밤이 되면 함께 모여 술을 마셨다. 그런 시간을 이제 내가 가져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련하고 그리운 순간. K군은 대학강사였고, J군은 비행기 엔지니어였다. 내가 쉽게 접해보기 힘든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어 신이 났던 것 같다.

우리의 까미노에서 마지막도 웃긴데 P군은 우리와 함께 다니면서 레온에서 이틀 쉬어가기도 하고 일정이 늘어져 버스를 타지 않으면 소화하기 힘든 일정이 되고 53km를 하루에 다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다 다 같이 술을 마시다 우리는 술 김에 도원결의를 했다. 끝까지 함께하기로, 아스트로가에서 폰페라다까지 53km를 함께 걷자고. 이거 중간에 낙오되는 사람은 이번 크리스마스에 솔로로 외로이 보낸다는 도원결이 영상도 찍었다. 결론은 나만 낙오되었는데, 나는 이때 25km 이상 걸으면 죽을 것 같아서 결국 폰세바논에서 그들을 보냈다. 아마 오기 부렸다면 911 출동했을 수준. 그들은 대단했고, 결국 53km를 걸었다. 그리고 그들은 더욱 끈끈해졌다.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들긴 했다. 서로 함께 하기 위해 53km, 장장 12시간을 걸어야 하는 그 길을 함께한, 그 끈끈함은 어떤 기분일까.

난 그 이후로도 꾸준히 걸어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 도착했고, 이비자로 자유를 찾아 떠난 P군을 제외한 K군, J군은 피스테라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지금 나의 베스트프렌드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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