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목욕탕 이야기

by 찬란한 하루


경상북도 양남에 있는 목욕탕에 다녀왔다. 양남 바닷가를 배경으로 탕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엄마는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냉탕과 열탕을 오고 가며 활보하고 다녔다.

나는 온탕에 가만히 턱을 괴고 앉아있었는데, 엄마는 내 옆에 있던 사람을 나로 착각해 브이를 하고 쳐다보다가, 혼자서 민망해 하하하, 웃었다.


한때는 저사람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던 적도 있었지. 지금은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기보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엄마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왠지 뿌듯했다. 나 좀 멋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버렸다.

때를 미는 동안, 괜히 쭈글쭈글한 엄마의 아랫뱃살을 구경하기도 하고, 내 뱃살은 다시 나왔나 그대로인가 만지작 거렸다. 이놈의 배는 들어가지를 않아.. 라는 생각은 양심상 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바닷가를 배경으로 20대로 보이는 두명의 사람이 서로 호호 거리며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친구 사이인 것 같았다. 냉탕을 자유로이 수영하는 아주머니를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노곤노곤해져왔다. 느릿느릿, 자신의 몸을 미는 할머니까지 보고 있자니 잠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라, 얼른 등을 밀고 집에 가자며 엄마를 재촉했다.

그렇게, 엄마가 너무나 사랑하는 목욕탕은 날 것의 행복, 날 것의 무언가들이 가득했다.


등을 밀어주는 엄마의 억센 손길에 아프다고 제발 좀 살살 밀라고 언성이 높아졌다. 목욕시간이면 너무 아파서 엉엉 울던 어린 내가 이젠 좀 컸다고 언성을 높이고 내가 할거라고 때수건을 뺏어들었다.

시원한 아이스티를 픽업해서 다시 먼 길을 드라이브해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와 노트북을 켰다. 문밖으로 불어오는 살랑살랑한 바람과 개운한 몸에 노곤노곤해져오는 마음을 어찌할바를 몰라, 괜히 아, 개운해! 라고 혼잣말을 내질렀더니 엄마가 이제 그걸 알았냐며 한소리를 보탠다.

엄마는 목욕탕을 통해 나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다정하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직업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