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택형 짠순이다. 내가 아는 한 내 주변에서 가장 짠순하다. 나와 긴밀한 사이인 라면맨도 이따금 혀를 내두르는 걸 보면 라면맨이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짠순한 것이 틀림 없다. 허물 없는 사이인 친언니도 "그냥 사라."라며 얼굴을 찌푸리니 언니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아마 가장 짠순하리라 추측한다. 나, 라면맨, 친언니. 3명의 궤도 안에서 넘버원 짠순이로 인정받았으니, 이쯤이면 짠순이라고 당당히 밝혀도 "아니 잠깐!"하며 제지할 이는 없겠지?
우리는 애쓰는 사람을 안타깝게 바라보곤 한다. 더욱이 돈을 아끼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라면 짠해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나는 내 짠순함이 짠하게 느껴진 적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할 수 있는 만큼만 짠순하기 때문이다. 애쓰다가도 힘들면 포기해버리는, 가끔은 지레 겁을 먹고 돈 뒤로 숨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딱 적정한 짠순. 팔팔 끓던 냄비라면을 후후 불어 한 김 식힌 후 먹었을 때의 그 뜨끈함같은 짠순. 그것이 내 아낌의 방식이자, 이 글에서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적절한 짠순함'이다.
적절한 짠순함은 주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실행된다.
1.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
재테크 책들은 대개 가계부 쓰기를 필승 전략인 양 서술한다.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으나 어쨌든 가계부는 생각만 해도 너무 따분하다. 인생엔 가계부 쓰기보다 중요하고 긴급한 일이 너무 많다. 게다가 이미 써버린 돈을 뒤늦게 자책한다고 해서 그 돈이 내 통장에 다시 꽂히는 것도 아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옛 노래처럼, 그 돈도 좋은 곳에 좋은 의미로 쓰였을 것이라 자기위로를 해버리면 그만이다.
2. 꼭 필요한 곳에 쓴다.
가계부를 쓰라고 말하는 이들의 논리를 살펴보면 이러하다. "과거의 소비를 훑어보며 반성하자!" 하지만 반성할 것이 없다면? 앞구르기를 하며 봐도, 뒷구르기를 하며 봐도 정말 필요한 소비였다면? 그렇다면 가계부를 쓸 필요도 사라진다. 어차피 직원에게 카드를 내밀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카드를 내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소비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그게 소주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그게 피규어일 것이다. 나한테도 꼭 필요한 것들이 있다. 그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돈, 병원비, 스킨케어 제품, 단백질 등이 있다. 이는 이후에 더 세세히 설명하겠다.
3. 돈이 아닌 삶을 아낀다.
돈을 아끼는 이유는 내 삶을 아끼기 위해서다. 하지만 아끼는 사람에게는 아끼지 않는 것이 곧 삶을 아끼는 방법이 된다. 아무리 짠순이라고 해도 매 번 아끼고 살면, 도무지 혼자 살아야 하는 수 밖에 없다. 지독한 짠순이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기 마련이니... 주변 사람들이 코를 부여잡고 도망친다해도 별 수 없다. 그래서 사람한테는 아끼지 않으려 노력한다. 은혜를 갚을 땐 큰 턱으로 갚고, 나 자신에게는 감히 하지 않는 큰 선물도 눈 딱 감고 산다. 그렇게 아끼지 않은 마음은 어떤 모양으로든 되돌아 온다.
정리해보면 나는 하기 싫은 건 하지 않고(가계부), 필요를 참지 않으며(병원비 등), 돈을 아끼는 목적(삶 아끼기)은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소모한다거나, 숨이 답답할 만큼 허리띠를 바짝 졸라 매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는 빠른 시간에 원하는 만큼의 돈을 모으지 못할 것이다. 가계부를 쓰지 않으면 소비를 한 눈에 볼 수 없고, 필요를 착각할 수도 있으며, 소중한 사람이 너무 많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적절한 짠순함은 억지나 소모와는 거리가 멀기에, 아주 먼 시간까지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늦고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내겐 아주 적절한 짠순함, 이것이 내가 돈을 아끼고 삶을 아끼는 방식이다.
다음 글에서는 내가 어쩌다가 20대에 이렇게 짠순이가 되었는지, 내 짠순력의 기원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짠순이 짠돌이 심은 데 짠순이 난다는 진부한 이야기이니 바쁜 사람은 바로 4장으로 넘어가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