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책 리뷰, 독후감
▸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1Q84, 세계의 끝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등.
▸일본, 아시아,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됨. 다양한 문화의 좌표축 위에서 작품이 평가됨.
▸내가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가 좋아하는 작가 (오죽하면 1Q84가 출간되었을 때 읽기도 전부터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두꺼워서.)
▸부모 모두 국어교사
▸어렸을 적부터 책을 매우 좋아했음
▸스스로를 장편 소설 작가, 지극히 평범한 인간, 소설가의 자질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함.
▸소설과 소설가에 대한 생각을 강연하듯, 말하듯 서술한 책
▸개인적인 사람이라서 보편적인 방향으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함.
▸겸손한 사람이다.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을 설명할 때에도 확신에 찬 말투가 없다. '나는' 그랬다를 엄청 강조한다. 이렇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겸손하기까지 하면 반칙 아닌가.▸겸손한 사람이다.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을 설명할 때에도 확신에 찬 말투가 없다. '나는' 그랬다를 엄청 강조한다. 이렇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겸손하기까지 하면 반칙 아닌가.
▸소설에 대한 일관된 신념이 인상 깊었다. 그에게 있어서 소설이란 직설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을 일부러 에둘러서 표현하는 것임을, 그것에서 의미를 찾게 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책에 말미에 "소설은 총체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독자가 저작활동을 통해 이해해야 하는 것이지, 소설가가 분석하는 순간 그 소설은 망한 것이다."라고 표현하는데 그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역시 콩심콩 팥심팥. 부모가 두 분 다 국어 교사이셨다고 한다. 그럴 줄 알았어.
▸소설을 쓰기 위해 1) 독서 2) 관찰력 3) 글쓰기를 강조헀는데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하지만 그러다 보면 쓸 수가 없는 걸! 어떤 비중으로 독서와 글쓰기 시간을 나누어야 하는지 딱 정해줬으면 좋겠다.
▸자기만의 세계관이 확고한 글덕후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덕후가 되어야 세상을 뒤흔드는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옆반 선생님이 나보고 책 덕후라고 했는데, 그럼 나도 가능성이 있는 건가?
▸"오리지낼리티!"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술, 음악 같은 예술도 오리지낼리티, 독창성, 남들이 안 한 것을 높게 평가하듯 글쓰기도 그런 것 같다. 모방 위에 나만의 것을 얹자!
▸아무튼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대로 쓰자. 내가 좋아하는 것, 쓰고 싶은 것을 쓰자. 나만 만족하면 된다.
▸뭐든 빨리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 최종 목적지이긴 했으나 내가 감히?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하루키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바로 쓴다고 표현했다. 나도 못할 게 뭐 있나?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중요성을 엄청 강조한다. 뭐든 오랜 기간 해야, 시간을 소중히 대해야 보답이 온다고 한다. 성공한 덕후. 내가 쓰고 싶은 걸 10년 이상 꾸준히 쓰면 독자가 생기지 않을까? 김연수 작가도 20대 초반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빵집에 손님으로 온 스님에게서 비슷한 말을 들었다고 한다. "지금 쓰고 있는 그것을 10년 동안만 하면, 10년 후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정도로 유명해진다."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연수는 6년쯤 소설을 쓰다가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왔을 때 "그때 스님이 10년 하라고 했지. 4년만 더 해보자."라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10년만 써보자!
▸일본 시장에서 이미 성공한 전업작가였음에도 굳이 미국으로 가서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칭찬과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물을 향해 도전해 나간 것이 그가 아직까지도 사랑받는 작가인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자꾸만 고이고 싶어 하는 내가, 안주하고 싶어 하는 내가 싫었다.
▶제1회 소설가는 포용적인 인종인가
p.16 소설 한두 편을 써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 이건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p.29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p.20 내가 생각하기에, 소설을 쓴다는 건 너무 머리가 좋은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작업인 것 같습니다.
소설가는 많은 경우, 자신의 의식 속에 있는 것을 '스토리'라는 형태로 치환해서 표현하려고 합니다. 원래 있었던 형태와 거기서 생겨난 새로운 형태 사이의 '낙차'를 통해서, 그 낙차의 다이너미즘을 사다리처럼 이용해서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건 상당히 멀리 에둘러 가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p.24 하지만 소설가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바로 그런 불필요한 면, 멀리 에둘러 가는 점에 진실, 진리가 잔뜩 잠재되어 있다,라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효율성 떨어지는 우회하기와 효율성 뛰어난 기민함이 앞면과 뒷면이 되어서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중층적으로 성립합니다. 그중 어느 쪽이 빠져도(혹은 압도적인 열세여도) 세계는 필시 일그러진 것이 되고 맙니다.
p.28 이십 년 삼십 년에 걸쳐 직업적인 소설가로 활약하고, 혹은 살아남아서 각자 일정한 수의 독자를 획득한 사람에게는 소설가로서의 뭔가 남다르게 강한 핵 같은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내적인 충동. 장기간에 걸친 고독한 작업을 버텨내는 강인한 인내력. 이건 소설가라는 직업인의 자질이자 자격이라고 딱 잘라 말해버려도 무방할 것입니다.
p.176 내가 생각건대 사람은 원래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아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강한 개인적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내적인 힘을 바싹바싹 느꼈기 때문에, 나름대로 고생해 가며 열심히 소설을 쓰는 것입니다.
▶제2회 소설가가 된 무렵
p.39 만일 지금 당신이 뭔가 곤경에 처했고 그걸로 상당히 힘겨운 마음이 든다면 나로서는 "지금은 좀 힘들겠지만 나중에는 그게 결실을 맺는 일이 될 겁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위로가 될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힘껏 전진해 주십시오.
p.46 '본질의 돌연한 현현' '직감적인 진실 파악'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쓱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뀐다' 그 일을 경계로 내 인생의 양상이 확 바뀐 것입니다. p.58 '나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라는 솔직한 인식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그 기회를 붙잡았고, 또한 적지 않은 행운의 덕도 있어서 이렇게 소설가가 됐습니다.
p.50 설령 언어나 표현의 수가 한정적이어도 그걸 효과적으로 조합해 내면 그 콤비네이션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감정 표현, 의사 표현은 제법 멋지게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컨대 '괜히 어려운 말을 늘어놓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아름다운 표현을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라는 것입니다.
짧은 문장을 조합하는 리듬감, 번거롭게 배배 꼬지 않는 솔직한 말투, 자신의 감정이 담기지 않은 적확한 묘사, 그러면서도 아주 중요한 것을 일부러 쓰지 않고 깊숙이 감춰둔 듯한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
p.52 언어가 가진 가능성을 생각나는 한 모든 방법으로 시험해 보는 것은, 그 유효성의 폭을 가능한 한 넓혀가는 것은, 모든 작가에게 주어진 고유한 권리입니다. 나에게 일본어는 지금도 어떤 의미에서는 도구입니다.
p.53 소설을 쓸 때 '문장을 쓴다'기보다 오히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에 가까운 감각이 있습니다. 나는 그 감각을 지금도 소중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요컨대 머리로 문장을 쓴다기보다 오히려 체감으로 문장을 쓴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3회 문학상에 대하여
p.72 '참된 작가에게는 문학상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주 많다' 그 하나는, 자신이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실감이고, 또 하나는 그 의미를 정당하게 평가해 주는 독자가-그 수의 많고 적음은 제쳐두고-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실감입니다. 그 두 가지 확실한 실감만 있다면 작가에게 상이라는 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것입니다.
p.83 상은 어디까지나 그 자격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작가가 행해온 작업의 성과도 아니고 보상도 아닙니다. 하물며 결론 같은 것도 아니에요.
▶제4회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
p. 97 오리지널의 조건
1. 다른 표현자와는 명백히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을 갖고 있다. 잠깐 보면 그 사람의 표현이라고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2. 그 스타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전 업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 스타일은 성장해 간다. 언제까지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자발적 내재적인 자기 혁신력을 갖고 있다.
3. 그 독자적인 스타일은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반화하고 사람들의 정신에 흡수되어 가치판단 기준의 일부로 편입되어야 한다. 혹은 다음 세대의 표현자의 풍부한 인용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p.99 시간의 검증을 받지 않고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p.137 통상적으로 가벼운 것으로 취급되던 것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획득하고, 일반적으로 묵직하다고 여겨졌던 것이 어느새 그 무게를 잃고 형해만 남습니다. 지속적 창조성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시간의 도움을 얻어 그런 과격한 역전을 몰고 오는 것입니다.
p.164 해야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했다는 확실한 실감만 있으면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그다음은 시간의 손에 맡기면 됩니다. 시간을 소중하게, 신중하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은 곧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p.167 시간에 의해 쟁취해 낸 것은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면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p.301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많은 사람을 짧은 기간 동안 속이는 건 가능하다. 몇몇 사람을 오랜 기간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오랜 기간 속일 수는 없다라고. 소설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시간에 의해 증명되는 것, 시간에 의해서만 증명되는 것이 이 세상사에는 아주 많습니다.
그 스타일의 질을 논하기 이전에 어느 정도 몸집을 가진 실제 사례를 남기지 않고서는 검증 대상에 오르지도 못하게 됩니다.
심포니만 해도 1번에서 9번까지의 실제 사례가 일단 연대기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비로소 9번 심포니라는 음악이 가진 위대성을, 그 압도적인 오리지낼리티를, 우리는 입체적이고 계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오리지널이고 무엇이 오리지널이 아닌가, 그 판단은 작품을 받아들이는 사람=독자와 합당한 만큼 경과한 시간의 공동 작업에 일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작품이 적어도 연대기적인 실제 사례로 남겨질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즉 납득할 만한 작품을 하나라도 더 많이 쌓아 올려 의미 있는 몸집을 만들고 자기 나름의 작품 계열을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것입니다.
p.113 They produced a sound that was fresh, energetic and unmistakably their own.
아주 심플한 표현이지만 이것이 오리지낼리티의 정의로서는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그리고 틀림없이 그 사람 자신의 것인 어떤 것.
▶제5회 자, 뭘 써야 할까?
p.43 하지만 그동안에도 틈만 나면 책을 읽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먹고사는 게 힘들어도, 책을 읽는 일은 음악을 듣는 것과 함께 나에게는 언제나 변함없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 기쁨만은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p.118 소설가가 되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우선 중요한 것은 책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소설이라는 게 어떤 구성으로 이루어졌는지, 그것을 기본부터 체감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한 권이라도 더 많은 책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뛰어난 소설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소설도, 혹은 별 볼 일 없는 소설도 괜찮아요. 아무튼 닥치는 대로 읽을 것.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시킬 것. 수많은 뛰어난 문장을 만날 것. 때로는 뛰어나지 않은 문장을 만날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소설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초 체력입니다.
p.208 책을 읽는 일은 당시의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말할 것도 없지만, 세상에는 교과서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심오한 내용이 담긴 책이 널려 있습니다. 그런 책의 책장을 넘기고 있으면 그 내용이 읽는 족족 피와 살이 된다는 생생하고 물리적인 감촉이 있었습니다.
p.224 책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는 아무튼 실로 다양한 종류의 책을 불타는 가마에 삽으로 푹푹 퍼 넣듯이 닥치는 대로 허겁지겁 읽었습니다. 책을 한 권 한 권 맛보고 소화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너무 바빠서 그것 이외의 일에 대해 머리를 굴릴 만한 여유는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나로서는 그게 오히려 좋았는지도 모른다고 이따금 생각합니다.
책에 묘사된 온갖 다양한 감정을 거의 나 자신의 것으로 체험하고, 상상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오고 가면서 온갖 신기한 풍경을 바라보고 온갖 언어를 내 몸속에 통과시키는 것으로 내 시점은 얼마간 복합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p.226 만일 책이라는 게 없었다면, 만일 그토록 많은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썰렁하고 뻑뻑한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다음에 할 일은 자신이 보는 사물이나 사상을 아무튼 세세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 아닐까요.
그 일의 시시비비나 가치에 대해 조급하게 판단을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결론 같은 건 최대한 유보해서 뒤로 미루도록 합니다. 최대한 현상에 가까운 형태로 머릿속에 생생하게 담아두는 것입니다.
소설가로 적합한 사람은 이를테면 이건 이렇다는 결론이 머릿속에서 내려지더라도 혹은 자칫 내려질 것 같더라도 아니 잠깐 어쩌면 이건 나 혼자만의 억측일 수도 있어라고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해 보는 사람입니다.
p.125 상상력이란 기억이다. -제임스 조이스
상상력이란 그야말로 맥락 없는 단편적인 기억의 조합을 말합니다.
유효하게 조합된 맥락 없는 기억은 그 자체의 직관을 갖고 예견성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스토리의 올바른 동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p.132 결점은 나중에 고쳐나가면 됩니다. 거기서 내가 유념했던 점은 우선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보다는 다양한 단편적인 에피소드나 이미지나 광경이나 언어를 소설이라는 용기 안에 척척 집어넣고 그걸 입체적으로 조합해 나간다.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소재가 나에게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약간만 시점을 바꾸면, 발상을 전환하면, 소재는 당신 주위에 그야말로 얼마든지 굴러다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눈길을 받고 당신의 손에 잡혀 이용되기를 기다립니다.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다. 그것이 키 포인트입니다.
▶제6회 시간을 내편으로 만들다 - 장편소설 쓰기
p.146 내게는 장편소설이야말로 생명선이고 단편소설이나 중편소설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장편소설을 쓰기 위한 중요한 연습의 자리이자 유효한 스텝이라고 해버려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p.151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매일 20매의 원고를 씁니다.
p.152 초고가 완성되면 잠시 한숨 돌리고 첫 번째 고쳐 쓰기에 들어갑니다. 여기서는 상당히 크게, 전체적으로 손을 봅니다. 나는 아무리 긴 소설이라도 복잡한 구성을 가진 소설이라도 처음에 계획을 세우는 일 없이 전개도 결말도 알지 못한 채 되는대로 생각나는 대로 척척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그러는 게 쓰는 동안에 단연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쓰다 보면 결과적으로 모순되는 부분,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이 나옵니다. 등장인물의 설정이나 성격이 중간에 홱 바뀌어버리기도 합니다. 시간 설정이 앞뒤로 오락가락하기도 합니다. 그런 삐걱거리는 부분을 하나하나 조정해서 이치에 맞는 정합적인 이야기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상당한 분량을 통째로 빼버리고 어떤 부분은 늘리고 새로운 에피소드를 여기저기에 덧붙이기도 합니다.
김연수(소설가):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게 상책인 문장이다. 초고에는 이런 문장들이 가득하다. 경험상 말하자면, 적어도 일주일은 이런 문장들을 쏟아내야만 소설의 문장을 얻을 수 있다.
그 고쳐 쓰기 작업에 한 두 달은 걸립니다. 그것이 끝나면 다시 일주일쯤 쉬었다가 두 번째 고쳐 쓰기에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좀 더 세세한 부분을 살펴보면서 꼼꼼하게 고칩니다. 이를테면 풍경 묘사를 세밀하게 써넣거나 대화의 말투를 조정하기도 합니다. 스토리 전개에 맞지 않는 점은 없는지 점검하고, 한 번 읽어서 알기 어려운 부분은 쉽게 풀어써서 이야기의 흐름을 보다 원활하고 자연스럽게 만듭니다. 대수술이 아니라 세세한 수술을 하나하나 더해가는 작업입니다. 그것이 끝나면 다시 한숨 돌리고 그다음 고쳐 쓰기에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수술이라기보다 수정에 가까운 작업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소설의 전개에서 어떤 부분의 나사를 단단히 조여야 할지, 어떤 부분의 나사를 조금 헐렁하게 풀어둘지를 결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장편소설은 말 그대로 긴 이야기이기 때문에 구석구석까지 나사를 팽팽히 조여버리면 독자는 숨이 막힙니다. 군데군데 문장을 헐렁하게 풀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쪽의 호흡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체와 세부의 균형을 적절히 유지하는 것.
p.154 그리고 대개 이때쯤에 한 차례 긴 휴식을 취합니다. 그냥 가만히 놔두면서 바람을 쐬게 하다, 혹은 내부가 단단히 굳도록 한다는 것이지요.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양생을 확실하게 해주지 않으면 덜 말라서 무른 것, 고르게 배어들지 않은 것이 나오고 맙니다. 그렇게 일단 작품을 진득하게 재운 다음에 다시 세세한 부분의 철저한 고쳐 쓰기에 들어갑니다.
(하버드 글쓰기 강의와 유사한 내용)
p.157 트집 잡힌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어찌 됐건 고친다. 지적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는 상대의 조언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고치기도 합니다.
방향성이야 어찌 됐든,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그 부분을 고쳐 쓴 다음에 원고를 재차 읽어보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설령 이건 완벽하게 잘됐어. 고칠 필요 없어라고 생각했다고 해도 입 다물고 책상 앞에 앉아 아무튼 고칩니다. 왜냐하면 어떤 문장이 완벽하게 잘되었다는 일은 실제로는 있을 수 없으니까.
p.160 본인이 아무리 잘 썼다 완벽하다고 생각해도 거기에는 좀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퇴고 단계에서는 자존심이나 자부심 따위는 최대한 내던져버리고.
작품을 쓰는 동안에는 주위에서 들어오는 비평 조언은 가능한 한 허심탄회하게, 겸허하게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p.164 한 편의 단편소설을 써내고 그것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쉼표 몇 개를 삭제하고, 그러고는 다시 한번 읽어보고 똑같은 자리에 다시 쉼표를 찍어 넣을 때, 나는 그 단편소설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레이먼드 카버
그 기분, 나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것과 똑같은 일을 나도 수없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가 한계다. 이 이상 더 고치면 도리어 맛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라는 미묘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p.168 시간이 있었으면 좀 더 잘 썼을 텐데. 나는 소설 쓰는 친구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아연해진다. 만일 그가 써낸 이야기가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소설 따위를 쓰는가. 결국 우리가 무덤까지 가져갈 것은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 힘껏 일했다는 노동의 증거, 그것뿐이다. -레이먼드 카버
p.170 현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그 작품들에 아낌없이 시간을 들였고, 카버의 말을 빌리자면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한 것을 써내려고 노력했다는 정도입니다. 나의 어떤 작품도 시간이 있었으면 좀 더 잘 썼을 텐데라는 것은 없습니다. 만일 잘 못 쓴 것이 있다면 그 작품을 쓴 시점에는 내가 아직 작가로서의 역량이 부족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유감스럽기는 해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부족한 역량은 나중에 노력해서 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잃은 기회를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김영하(소설가): 한 사람이 한 시기에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오래 고친다고 해도 나아지지 않아요. 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래서 때가 되면 원고를 보내요. 내 능력의 70, 80퍼센트를 써야 한다, 그런 철학을 갖고 있어요.
Q. 균형을 잘 잡아야 하겠지만. 내 능력의 몇 퍼센트까지 쓰고 발행을 할 것인지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고 싶다는 고민이 든다.
▶제7회 한 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 한 업
p.176 어떤 장소가 됐든 인간이 소설을 쓰려고 하는 곳은 모두 다 밀실이고 이동식 서재입니다. 내가 말하려는 건 요컨대 그런 것입니다.
p.180 One day at a time(하루씩 꾸준하게)이라는 게 있는데, 그야말로 바로 그것입니다.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게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하루 꾸준히 끌어당겨 자꾸자꾸 뒤로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당신은 그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만 합니다. 하루는 어디까지나 하루씩입니다. 한꺼번에 몰아 이틀 사흘씩 해치울 수는 없습니다.
p.184 육체적인 운동과 지적인 작업의 일상적인 조합은 작가가 행하는 종류의 창조적인 노동에는 매우 이상적인 영향을 끼치는 셈.
p.186 날마다 달리다 보면 물론 몸은 건강해집니다. 지방은 줄고 균형 잡힌 근육이 붙고 몸무게도 조절됩니다. 그러나 꼭 그것만은 아니다,라고 나는 늘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깊은 곳에는 좀 더 중요한 뭔가가 있다,라고.
p.195 그것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언어화하기 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과묵한 집중력이며 좌절하는 일 없는 지속력이며 어떤 포인트까지는 견고하게 제도화된 의식입니다.
▶제8회 학교에 대해서
p.228 소설가란 머릿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자꾸자꾸 만들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제9회 어떤 인물을 등장시킬까?
p.233 나는 지금까지 꽤 많은 소설을 써왔는데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이 캐릭터는 실제 이 사람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경우는 두세 번밖에 없습니다.
p.234 많은 경우, 내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이런 캐릭터를 내놓자고 미리 정하는 일은, 아주 조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일단 없습니다. 글을 써나가는 사이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실상의 축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세워지고 거기에 다양한 디테일이 차례차례 제 마음대로 붙어나갑니다. 자석이 쇳조각을 붙여가는 것처럼. 나는 그 캐릭터를 만들 때 뇌 내 캐비닛에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정보의 단편을 꺼내다가 그것을 조합한다,라는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p.236 인간을 묘사하려면 사람을 많이 알아야 한다.
상대를 이해하거나 분석하는 선까지 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람의 겉모습이나 언행의 특징 등을 언뜻 눈에 담아두기만 하면 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솔직히 영 안 맞는 사람도, 가능한 한 가리지 말고 관찰하는 게 중요합니다.
p.240 일본 소설로 말하자면,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도 실로 다채롭고 매력적입니다. 아주 잠깐 얼굴을 내미는 캐릭터라도 생생하게 살아 있고 독특한 존재감이 있습니다. 그런 인물들이 발하는 말 한마디, 표정, 동작이 묘하게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곤 합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항상 감탄하는 점은 이 자리에 이 인물이 필요해서 일단 내놓는다는 땜질 식 등장인물은 거의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머리로 생각해서 만든 소설이 아니에요. 분명한 체감이 있는 소설입니다. 말하자면 문장 하나하나마다 밑천을 털어 넣고 있습니다. 그런 소설은 읽으면서 하나하나 믿음이 갑니다. 안심하고 읽을 수 있습니다.
p.250 소설이 제대로 궤도에 오르면 등장인물들이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스토리가 제 마음대로 흘러가고, 그 결과 소설가는 단지 눈앞에서 진행되는 것을 그대로 문장으로 받아쓰기만 하는 지극히 행복한 상황이 출현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그 캐릭터가 소설가의 손을 잡고 그/그녀가 미처 예상조차 하지 못한 뜻밖의 장소로 이끌어주기도 합니다.
p.253 어떤 의미에서 소설가는 소설을 창작하는 것과 동시에 소설에 의해 어떤 부분에서는 창작당하고 있다는 것.
p.255 소설을 쓸 때는 우선 아이디어가 불쑥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에서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펼쳐집니다. 처음에도 말씀드렸듯이 그곳에 어떤 인물이 등장할지는 어디까지 스토리 스스로가 결정할 일입니다. 내가 생각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인 나는 충실한 필기자로서 그 지시에 따를 뿐입니다.
▶제10회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
p.269 그렇다면 내가 즐기기 위해 쓰는 수밖에 없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쓰든 결국 어디선가는 나쁜 말을 듣는다.
뭐든 상관없어. 어차피 나쁜 말을 들을 거라면 아무튼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대로 쓰자.
▶제11회 해외에 나간다. 새로운 프런티어
p.300 어떤 세계에서나 똑같지만, 사람 망치는 칭찬 세례만큼 무서운 것도 없으니까요.
p.301 애초에 소설이란 어디까지나 신체의 내측에서 자연스럽게 솟아오르는 것이지 그렇게 전략적으로 홱홱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장조사 같은 것을 해서 그 결과를 보고 의도적으로 내용을 분류해 가며 써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런 일천한 지점에서 태어난 작품은 수많은 독자의 지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일시적으로 지지를 얻는다 해도 그런 작품이나 작가는 오래갈 수 없고 금세 잊힙니다.
p.302 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긴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단번에 빵 터진 게 아니에요. 하나하나 작품을 꾸준히 쌓아 올리며 가까스로 토대를 마련하는 식이었습니다.
p.304 세계적으로 각 나라의 사회 기반에 뭔가 큰 동요가 일어난 뒤에 내 책이 널리 읽히는 경향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내 책이 급속히 팔리기 시작한 것은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라는 거대한 지반 변혁이 일어난 뒤였습니다. 흔들림 없이 공고할 것으로 보였던 공산당 독재 시스템이 맥없이 무너지고, 거기에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부드러운 카오스가 넘실넘실 밀려듭니다. 그렇게 가치관이 급격히 교체되는 상황에서 내가 제공한 스토리가 갑작스럽게 새롭고 자연스러운 리얼리티를 갖게 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p.311 새로운 프런티어에 도전하는 의욕을 항상 간직한다는 것은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12회 이야기가 있는 곳. 가와이 하야오 선생님과의 추억
p.320 내가 생각하기에 소설가의 역할은 단 한 가지, 조금이라도 뛰어난 텍스트를 대중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텍스트라는 것은 하나의 총체, 영어로 말하면 whole입니다. 말하자면 블랙박스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덩어리의 텍스트로서 기능합니다. 텍스트의 역할은 각각의 독자에게 저작되는 데 있습니다. 독자는 그것을 원하는 대로 마음껏 풀어서 저작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만일 독자의 손에 건너가기 전에 저자에 의해 풀리고 저작된다면 텍스트로서의 의미나 유효성이 대폭적으로 손상됩니다.
소설가에게는 자신이 자신을 분석하기 시작하는 것만큼 부적절한 일도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