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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경 Mar 17. 2024

오셨다 그분, 요태기 05

어제는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오늘은 어제 친구랑 가졌던 과식 여파로 몸이 무거워서,

모레는 회사 회식이 잡혀서.


갖가지 핑계로 요가 수련을 하루 거르게 되면

밀물처럼 계속해서 수련을 넘기고 싶은 마음이 찾아온다.

이를 극복하고 수련에 꾸역꾸역 나가야 하는 게 맞지만

한 번 빠지고 싶어 하는 마음은 그다음 날도 빠지고 싶어 하게 만들게 된다.


이 밀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엄청난 놈이 등장한다.


요태기










아니나 다를까 나는 지금 요태기에 허덕이고 있다.


뭐 이게 원데이, 투데이 일이 아니긴 하다만

문제는 요태기가 내게 찾아오는 시기가 너무 잦아진다.

한 번 빠지게 되면 계속 빠지게 되니 주의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틀린 말이 아니다.


이 지긋지긋한 요태기가 오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자면

첫 번째, 인간관계가 수련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방해물이다.


이게 뭔 헛소린가 싶지만,

적어도 나 같은 나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사람들과의 약속이 많아질수록 수련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줄어든다.

사람들과 노는 게 더 재밌으니까!

예술가들이 고독해질수록 자신만의 예술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가듯이

요가 수련도 결국은 고독해져야만 내면세계로 더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


인간관계와 수련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다면

회사를 다니지 않고 오전 수련, 오후 약속을 가면 되니까

회사를 그만두면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고…


두 번째, 수련의 난이도 특성상 한 번 빠지면 다시 몸을 되돌리기까지 너무 힘들다.

뭐 어떤 운동이 안 그럴까 하겠다만,

특히나 아쉬탕가는 정말 하루라도 빠지면 몸이 급격하게 타이트해진다.

꾸역꾸역 노력으로 늘려놓고 세워놓은 기반이 하루 만에 다시 돌아가는 게 가능해?

라고 물어본다면 자신 있게 가능하다고 소리칠 수 있다.

특히나 후굴 바보에 뻣뻣한 몸을 타고난 나의 몸은 하루만 쉬면 제자리걸음 마냥 돌아가기에

어쩔 수 없이 수련을 빠지게 되면 그다음 날 고통받을 내 모습에 지레 겁을 먹어

더욱 안 가게 되곤 한다.


그 이면에는 근육통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사실은 다시 되돌아간 나의 몸에 대한 짜증과 받아들일 수 없어하는 감정에 대한 두려움이다.

내가 얼마큼을 수련해 왔던 내 수련이 발전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

지난번에 말했던 내용과 비슷하다.

집착하는 마음.





지난주 수련을 되돌아보면

월요일과 화요일 딱 이틀만 수련을 하고 수~일까지 수련을 모두 내리 쉬었다.

유달리 이번 주 평일 약속도 많았고 과식했던 날도 많았다.

오늘은 수련을 가야지하는 마음을 오전에 먹어도

점심 이후 오후부터는 스멀스멀 괜스레 몸이 무거워지는 기분이 든다.

그럼 난 또 기분에 따라 게을러져 쉬어야지 하고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게 된다.


그렇게 이번 주는 몸도 마음도 무거운 주간을 보냈다.


주말 오전에 늘 가던 하타 수련도 가지 않았다.

아니 이왕 수련 안 할 거면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하게 놀면 되지,

난 또 그러지 못해서 죄책감 가득한 한 주를 보냈다.


이렇게 마지막까지 죄책감에 허덕이다,

정말 안 되겠다 싶어 오늘 오전에는 수련을 했다.

수련을 시작하자 느껴진 뻣뻣해진 몸에 또 집착의 마음이 올라왔다.

분명 게을렀던 건 나였지만 그럼에도 억울했고 버거워하는 내 모습이 미웠다.


하타에서도 이렇게 버거워하면 내일 있을 아쉬탕가 수련에서는 얼마나 힘들까…

또 지레 겁을 먹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오늘 오전 하타수련 중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다.


남들이 쉽게 하고 있고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정말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힘들지 않은 자세는 없으며 모두 각자마다 힘들고 고통받고 있는 것은 똑같다.

지금 내가 힘든 만큼 내 옆사람도 분명히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으라.


무슨 성경 구절 같지만 (성경 읽어본 적 없음) 순간 위로가 되었던 말이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구나.

모두가 다 같이 힘들지만 그럼에도 내 몸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구나.


요태기를 겪으며 내가 얻게 되는 것은 한 가지 있기는 하다.

그건 바로 내 몸에 대해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지속되는 수련 속 익숙해진 근육통이 요태기를 겪고 난 후에는 너무나도 새롭게 느껴진다.

이 아사나에서 원래 이 근육이 아파야 정상이었나? 하는 놀라움도 느끼고

나의 수련 초보 시절 힘겨워했었던 모습도 회귀할 수 있다.

아사나가 내 몸에 주는 변화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고 자극에 대해서도 더 섬세히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요태기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놈이다.

이럴 때는 정말 요가를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도 가입하고 싶은 마음이다.

왜 요가 커뮤니티는 발달되어 있지 않을까.

물론 강사들의 커뮤니티는 많이 있겠지만,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끼리 수련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하는 커뮤니티는

아직까지 수면 위로 드러나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럼 그들이 겪는 요태기에서도 듣고, 우리들만의 고민거리들을 나눌 수 있을 텐데…


오늘의 나는 내일부터는 꼭 요태기에서 벗어나 수련을 갈 거야, 그리고 선생님께 열심히 수련할게요라고 못 박을 거야.

라고 마음을 먹었더라도 분명

미래의 나는 또다시 요태기가 올 것이다. 그 텀이 얼마나 짧아질지 모르겠지만.

죄책감을 또 가진 채로 쉬고 싶어 하겠지.

함께 하자 요태기.

기다리고 있을게.

또 찾아와 줘 근데 조금만 덜 자주 와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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