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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ille Feb 19. 2024

Break A Leg!... 저주일까 축복일까?

영어로 보는 삶의 풍경 #04

수년 전, 학생들을 데리고 에든버러 축제에 참여했을 때 일이다.


한 학생이 내게 와 의아하단 듯이 물었다.


"교수님, 제가 어떤 외국 배우를 만났는데요, 공연 대박 나라고 'Break your leg!'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Break... my... leg??'라며 표정이 이상해지더라고요. 제가 뭘 잘못한 거죠?"


한 끗 차이지만 'a leg'가 아니라 'your leg'라고 했으면 '네 다리나 부러져라'는 뜬금포 저주로 들려 당황할 수 있었겠다고 답하며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난다...



"Good luck"을 의미하는 "Break a leg"는 첫 공연을 앞둔 배우에게 건네는 인사말이지만, 입시, 시험,  시합, 프로젝트 발표 등 그와 유사한 중대사를 앞둔 경우에도 종종 사용된다.  일견 살벌한 이 표현이 어떻게 행운을 비는 인사말로 통하게 된 것일까? 그 기원은 연극에서 비롯되었지만 확실한 어원과 출처는 다소 불분명하다.


일설에 의하면 이 말은 처음에는 저주였다고 한다. 무대에서 각광받는 주연 배우들을 어둠 속에서 바라보는 대역 배우들이 자기에게 기회가 오기를 바라며 매일같이 주문 외듯 "부러져라, 부러져라" 했다는 것이다. 너무 살벌한 얘기 같지만 우리 주변에도 일어나는 일이다. 어느 대학의 교수가 갑자기 명을 달리 했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같이 있던 누군가가 내뱉었다. "자리 하나 비었네." 공감과 애도를 건너뛴 채 체온이 식지도 않은 그 빈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이 욕구를 정직하다고 해야 할까 서글프다고 해야 할까...


또 하나의 설은 서구 연극계에 널리 퍼져있던 미신이다. 행운을 빌면 공연이 망하고, 다리가 부러지라고 악담을 하면 그 공연은 성공한다는 것이다. 뮤지컬 영화 <프로듀서즈 Producers>에는 신참 제작자 레온 블룸이 공연의 행운을 빈다고 하자 감독, 비서, 작가 모두가 펄쩍 뛰며 부르는 "You Never Say Good Luck On Opening Night"이라는 곡이 나온다.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블룸 씨,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소?

첫 공연에 'Good luck'이라 말하면 재수 없다고?

말해버리면 이미 끝난 거야

최악의 리뷰를 받아볼 거라고. "


"코메디 프랑세즈에서는 아무도 행운을 빌지 않아요."


"그럼 뭐라고 하죠?"


"'똥!' 라스칼라좌에서는 '늑대의 아가리로!' (더한 표현은 생략)"


"그럼 난 뭐라고 해야 하죠?"


"Break a leg!"


좋은 일에 마가 끼기 쉽다는 호사다마(好事多魔)와 일맥상통하는 이 미신이 효과가 있었다면 아마도 위의 대역 배우들은 늙어 은퇴할 때까지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염원을 담은 저주가 실은 액땜을 하는 부적이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지지하고픈 세 번째 설은 연극 본연의 영역에서 그 유래를 풀어간다


19세기 극장들은 보드빌이나 레뷰(revue)들을 주로 했는데, 이 쇼들은 음악, 춤, 짧은 드라마들의 단막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작자는 언제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확보해두어야 했고, 관객 반응과 상황에 따라 그 레퍼토리는 언제든 바뀔 수 있었다. 따라서 출연이 확정되지 않은 채 무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연기자들은 그날 쇼에 출연을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었다.


레그라인 뒤, 어두운 포켓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배우


Leg 즉 leg line은 배우들이 대기하는 무대 포켓의 다리막 끝선을 말한다. '다리막의 경계선을 넘어선다(breaking the leg line)'는 의미는 마침내 출연을 하고 페이를 받는다는 의미다. 그 선을 넘지 못하면 결국 무대 뒤에서 대기만 하다가 빈 손으로 퇴근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Break a leg!의 어원이 이것이라면, 그 본연의 뜻은 단지 가벼운 "대박 나!" "잘해!" "행운을 빌어"가 아니다. 그리고 그 축복의 대상은 찬란한 조명과 박수갈채를 받는 무대 위의 주연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준비하고,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기다리는 수많은 대기자들을 향한 응원인 것이다. 이것은 서로에 대해 "포기하지 말자!" "도망가지 말자!" "끝까지 싸우자!"라는 힘찬 응원의 외침이 아니었을까... Leg line은 이들이 자신의 이름과, 꿈과, 명예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매일 용기 있게 돌파해야 하는 전선(戰線)이 아니었을까... 어두운 무대 뒤에서 오늘도 뛰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그들을 향한 모두의 열띤 격려가 쌓이고 또 쌓여 마침내 이 관용적 표현이 정착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새삼 이 한 마디에 담긴 무게감을 빌어,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인생이라는 무대의 영웅들을 향해 온 마음을 다해 외쳐본다..


BREAK A LEG!


BREAK THAT DAMNED LEG, MY HER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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