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등학생, 중학생 아이들을 보면 조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학원에서 선생님을 하다 보면 아이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데, 그날 나는 오전 수업이 있어서 일찍 일어나 학교를 갔다가 출근한 날이어서 조금 피곤한 상태로 일했다.
“아 피곤하다.”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몇 시에 일어나셨는데요?”
“9시.”
“...”
순간 아이들의 경멸 어린 시선을 보고 나니, 내가 무슨 말실수를 한 것이 아닌지 조금 생각해 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무슨 망언을 한 것인지 깨달았다.
“쌤 저희는 6시에 일어나는데...”
“전 9시에 일어날 수 있으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어요.”
왜 몰랐을까? 나도 그들의 나이일 때는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를 갔다. 밤마다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랬고, 기어이 온 아침은 나의 머리채를 잡아끌어 내 몸을 학교로 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과거를 되짚던 중, 문득 아이들의 하루 스케줄을 생각해 보았다.
6시에 일어나 학교를 가고, 학교를 마친 후에는 저녁을 먹고 바로 학원에 와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조금 슬펐다.
솔직히 그 나이 때를 가장 빛날 때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뭐를 해도 재미있을 때고 인간관계에 대해 알아가야 할 시기이다. 그 시간을 공부에 전부 사용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한마디 말을 했다.
“얘들아, 너희는 지금 놀아야 해.”
선생님으로서 하면 안 되는 말일지 모른다. 아마 원장 선생님이나 아이들의 부모님이 이 글을 보면 화내시지 않을까? 그래도 놀아야 한다는 것만은 진심이었다. 나는 학창 시절 남부럽지 않게 친구들과 추억을 쌓고, 시험 기간엔 모여서 공부하고, 또 하다가 딴짓하고, 하며 되돌아보면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대학교 가서 놀 거예요 쌤.”
이 말을 듣고 솔직히 조금 충격을 받았다. 무엇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성인이 되어서 노는 거랑 그 전에 노는 것이 아예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도 고등학생 때 친구들을 만나면 아직도 그때 이야기를 한다. 8년이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다른 점이라면 앞에 놓인 음료가 아이스티에서 술, 커피로 변했다는 것 정도이다.
만약 그런 추억들이 없다면, 유년 시절의 기억 중 남길 만한 것이 없다면 19년 동안 흘려보낸 세월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시험 성적? 입시 결과? 이런 것들은 세월이 지나면 잊힐 점수 따위에 불과하다. 심지어 본인의 의지가 아닐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시간을 전부 할애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물론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긴 하다. 학업을 위해서 그 모든 시간을 갈아 넣어도 목표한 대학교에 가지 못하고, 대학교가 아니더라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그렇기에 매일 공부를 하고, 성적에 목메는 것이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사람은 유년 시절의 기억이 그 사람의 속성, 성격, 어쩌면 외형까지도 모두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다.
꿀벌은 성체가 되자마자 벌집을 짓는 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기린은 태어나고 몇 시간 후면 뛰어다닐 수도 있다. 그렇게 진화했고, 본능에 그렇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들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람만은 성숙해지기까지의 시간이 매우 많이 필요하다. 거의 백지상태로 태어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 정확히 말하면 가치관, 성격, 속성을 정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말로 하기 힘들 정도로 여러 가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착하다거나, 친절하다거나 하는 한 단어로 표현될 수는 없다.
사람이 그렇게 긴 유년 시절을 보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이유도 그토록 긴 시간 동안 성숙해지기 위해 많은 경험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느끼는 감정, 어떠한 판단, 선택과 같이 사는 데 필수적이고, 우리가 죽을 때까지 반복할 것들은 결국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닐까? 범죄자가 좋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낸 것은 매우 전형적인 배경이지 않은가?
사람은 기본적으로 망각을 한다.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렸을 적 기억을 대다수 잊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없어진 것 같은 기억은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가 이미 당신이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는 없어져서도, 없어질 수도 없는 한 부분이다.
그렇기에 유년 시절 추억을 쌓고, 여러 가지를 경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더 나아가 입시를 위해 공부에 전념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었다. 물론 공부도 중요하지만, 내가 나를 봐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많은 것들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진 ‘나’라는 존재는 점수 따위로는 재단할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2024. 09. 28
PS.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제가 아무리 막살았어도 수능 100일 전에는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전국의 수험생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