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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국 Sep 29. 2024

떠나는 발걸음에 담긴 우주들

여행에 관한 고찰

“야, 일본 가자”

     

최근 내가 친구들한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친구들은 내가 하는 이 말을 들으면 그만 좀 말하라고 타박하며 경기를 일으킨다.

     

요즘 여행을 가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지인들 중에도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고, 그곳에서 겪은 경험을 돌아와서 보따리 풀듯 말해주는 이가 적지 않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들이 다녀온 여행지가 마치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왜 하필 일본이냐 묻는다면, 그 이유는 사실 별거 아니다. 나는 해외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고, 가장 만만한 곳이 일본이기 때문이다. 가깝기도 하고, 과장 조금 섞어서 요즘 오사카나 도쿄는 식당에 들어가면 “어서 오세요~” 하고 손님 응대를 한다고 한다.

     

주변에 일본을 가본 지인은 셀 수 없이 많다. 심지어 지금 일본에서 유학 중인 친구도 있다. 그만큼 여행의 측면에서 일본은 거의 제주도와 비슷한 수준으로 난이도가 내려왔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럼 가지 그랬냐?’

     

인정한다. 솔직히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이라도 갈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여태까지 그렇게 여행에 큰 의미를 두고 살지 않았고, 가봐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을 뿐 막상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하지만 현생이 바빠지고, 연구실 출근을 하고, 학교도 다니며 그래도 나름 촉박하게 살다 보니 여행에 대한 욕구가 엄청나게 커졌다. 마치 기성품이 단종되면 가치가 올라가는 것처럼, 언제든 갈 수 있던 여행이 갈 수 없게 되니까 평소보다 훨씬 더 여행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22살, 입대하기 3주 전에 혼자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가기 전에 아버지한테 이렇게 말씀드렸다.

     

“아빠, 나 제주도 갈래.”

“웬일로 허락을 받냐? 알아서 해라.”

“근데 돈 없음.”

“?”

     

불타는 효자라고 말한다면 아마 그 말이 맞을 것이다. 가지고 있던 돈이란 돈은 노는 데 다 쓰고, 여행은 아버지한테 카드를 받아 갔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혼자 간 제주도는 좋긴 좋았지만, 힘들기도 했던 것 같다. 계획을 세울 때 3박 4일로 제주도 한 바퀴를 돌 계획을 세웠는데, 그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여행 하루 만에 깨달았다.

     

정말이지 제주도가 그렇게 넓은 줄 몰랐다. 심지어 당시엔 면허가 없을 때라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하루에 2시간 넘게 버스 안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생각들을 기록해 두었다면 거기서도 몇 가지 글이 나오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렇게 간 제주도에서 한 일은 딱히 없었다. 단지 목표한 곳으로 가서 사진도 조금 찍고, 둘러보고 나니 남는 게 시간이었고 그렇게 공허한 시간 속에서 느낀 것은 외로움이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고 했던가? 그 말이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다음에 여행을 갈 땐 절대 혼자 가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게 나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요즘 친구들한테 입이 닳도록 일본에 가자고 하는 것 같다.



     

조금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와서, 우리는 여행을 왜 좋아할까? 여행을 가는 것은 보내는 시간에 비해 사용하는 돈이 다른 것에 비해 막대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행을 사랑하고, 휴가 시즌만 되면 여행지, 관광지를 찾는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는 여행을 갔을 때의 만족감이 사용하는 재화에 비해 훨씬 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행을 가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면 그곳의 문화, 혹은 주민, 아니면 다른 곳에서 온 관광객과 서로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며 여러 가지 경험을 한다. 이는 평소의 삶에서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정의하기 힘든 어떤 것이다. 그들의 문화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나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렇게 본인의 우주를 확장하고, 결국엔 ‘우리’라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다.

     

즉, 여행 본연의 목적은 여행지의 랜드 마크, 자연경관 등을 보는 것도 있지만, 내가 살던 곳과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잠시나마 그 속에 파묻혀 마치 원래 그곳에 살고 있던 것처럼 지내보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결국 여행을 간다는 것은 단지 쉬기 위한, 너무나도 바쁜 현생에서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나의 세상을 확장하기 위한 방법이다.

     

결론을 어떻게 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여행은 좋은 것이다? 무조건 가야 한다? 이런 결론은 너무나도 진부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모를 때는 그저 모르는 것으로 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본심이 아닌 것을 꾸며내어 그럴듯한 말로 적는 것은 그저 보이기 위한 글일 뿐이고, 조금 더 나아가면 위선, 더 나쁘게 말하면 기만일 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여행은 우리 삶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어도, 다채로운 경험이라는 것이다.

      

나는 상상한다. 가까운 미래에 일본에 있을 나를, 가고 싶었던 싱가포르의 풍경을, 스위스에 있는 드높은 알프스 밑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나를, 미국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밑에서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를 말이다.

     

그런 경험을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다.


2024. 0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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