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성수동
2024년 10월 3일 개천절에 얼마 전 가야겠다고 결심한 ‘브런치스토리 팝업 전시’를 보러 친구와 서울 성수동에 방문했다.
집을 나설 때 나를 반긴 것은 조금은 차가운 온도, 그리고 우산을 챙겨야 한다고 나에게 말하는 것 같은 약간은 흐린 하늘이었다.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지하철역에 도착해 성수동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것은 인산인해를 이루는 1호선 지하철 안이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속으로 탄식했다.
‘아....’
마치 모두가 작당모의해 내가 타지 못하게 벽을 세운 듯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공휴일에 서울행을 결정한 과거의 나를 멍청하다 비웃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일이 있어서 서울을 방문할 때 항상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을 때면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다시는 서울 오나 봐라.’
‘너무 힘들다. 진짜 늙었나?’
당신도 아마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런 것을 보고 ‘기 빨린다’라고 한다.
보통 사람이 많은 곳을 가거나, 말이 정말 많은 사람과 같이 있으면 기가 빨리는 것 같다. 개인적인 경험으론 그렇다.
우리는 모두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가족과 같이 살고 있는 집에서든,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서든, 회사에서 일을 할 때이든, 사람 개개인은 본인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가지고 있고, 이를 넘어오면 불쾌감, 내지는 불안감을 느낀다.
나에게는 그 불쾌감이 가장 증폭되었던 때가 있다.
2021년 6월, 논산에 있는 육군훈련소에 입소했을 때 대충 10평 남짓한 침상에 거의 20명이 모여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에게 부여된 공간이라곤 폭 60센티미터, 길이 2미터의 공간이 전부였다.
그곳에서는 사생활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뭘 하든 옆에서 그대로 볼 수 있고 잘 때 옆으로 누우면 동기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코를 조금만 크게 고는 사람이 있으면 밤잠 설치기 일쑤였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조금 지나니 익숙해져서 밤마다 기절하듯 잠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내가 학교가 멀어도 기숙사를 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튼, 개천절에 성수동에 방문해 길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니 목적지를 향해 정상적으로 걸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 줄로 다녀야 했고 심할 때는 꽃게처럼 옆으로 다녀야 했다.
또한, 길이 좁은데도 꾸역꾸역 좁은 도로를 모두 차지하고 걷는 사람들도 있고 내가 피하지 않으면 부딪힐 게 분명한 상황에서 어깨를 피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화나게 만든 존재는 그 해일과도 같은 인파 속을 뚫고 지나다니는 오토바이와 차량이었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화를 낼 쪽은 운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인도에 있어야 할 사람이 차도로 내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거리에서 인도로만 다니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서울의 일명 ‘핫 플레이스’라고 불리는 곳들은 대개 인도가 매우 좁고, 차도마저도 협소해 차와 사람이 공존해 다닌다.
나 또한 서울에서 운전할 때 홍대, 건대, 성수 등 사람이 너무나도 많은, 거의 인도와 차도가 동일시되어버린 곳에서 차도로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고 화내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쨌든, 운전자의 입장에서도, 걸어 다니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서울 도심의 병목 현상은 성수동을 돌아다니는 나에게 적지 않은 짜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는 기진맥진해 제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누워 있으면서 한 생각이 있다.
‘육체적인 피로도로 보면 별 것 아닌, 그저 걸어 다니기만 했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느껴지는 것일까?’
앞에서 언급했듯 정말 늙어서? 아니면 최근 운동을 하지 않아서 생긴 체력 부족?
사실 그런 이유가 아닌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내가 피곤함을 느낀 이유는 앞서 말한 ‘기 빨림’ 때문이다.
성수동의 많은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히고, 차량이 오는지 확인하고 신경 쓰면서 돌아다닌다는 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개개인에게 필요한 개인 공간의 침해로부터 비롯된 막대한 심력 소모, 혹은 피로를 동반한다.
그리고 그렇게 온 심력 소모는 ‘기 빨림’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넘치던 의지도 한순간에 꺾이게 하고, 어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치 피로도가 높은 게임 캐릭터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심각한 것은, 이런 문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저 집에서 쉬는 것, 그렇게 본인의 소모된 심력을 다시 채우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게임 속에서는 아이템을 써 피로도를 낮추기라도 하지, 현실에서는 그저 쉬는 방법뿐이다.
그리고 채워진 심력으로 우리는 다시 지인을 만나거나, 회사로 출근을 한다. 이런 루프를 죽을 때까지 반복하게 된다. 이런 방면으로 보면 인간은 참 불쌍한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세상에 너무나도 많은 ‘기 빨림’, 피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들이 만연해 있는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기 빨림’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글이 아니다. 최근 경험한 ‘기 빨림’에 대해 나의 경험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에 대해서 조금 생각한 결과를 공유하고 싶었다.
오늘도 많고 많은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각자의 자리에서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낸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커져갈 스트레스, 기 빨림이지만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정도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적어지고, 무뎌지지 않을까? 앞서 말했듯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말이다.
그저 오늘 하루를 열심히, 치열하게 살자.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인생에서 몇 가지의 의미를 찾는 것 정도는 손쉽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24. 10.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