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9일 화요일 아침, 7시 반쯤 아빠에게 전화가 왔어요. 어제저녁 가족들과 연명치료 거부 결정을 이른 아침 회진 시간, 주치의 교수님에게 전달했고, 이제 바로 임종 면회를 해야 한다는 연락이었어요. 아빠는 시간이 너무 이른데 오후에 진행하면 안돼냐 했고, 병원에서는 엄마가 오늘을 넘기실 수 없다고 했어요.
전화를 끊자마자 무슨 정신으로 준비를 했는지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준비했고, 딸아이와 택시를 잡아타고 서울 A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너무 서둘렀는지 딸아이는 도착하자 마자 아침에 먹은 것을 다 토했고, 병원 창 밖으로는 부슬부슬 눈비가 섞여 내리고 있었어요.
서울 A 병원은 임종 면회의 규정이 있었는데요. 배우자와 직계가족만 임종 면회가 가능했어요. 남동생과 저는 가능했지만, 올케와 남편은 불가능했고, 딸아이는 어린이라 불가능했어요.
그리고 상주 보호자인 아빠를 제외하고는 1시간에 1명씩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어요. 속상했지만, 규정이라니 따를 수밖에요.
아빠의 전화를 받고 엄마의 형제들이 병원으로 달려왔어요. 엄마는 4남매의 맏이였고, 여동생 둘과 남동생 하나가 있었어요. 저에게는 애틋한 이모들과 외삼촌이지요. 먼 길을 달려온 이모들과 외삼촌이 저와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어요. 믿을 수가 없다고요. 여기가 병원 로비라는 것도, 모두들 다 잊은 듯했어요.
먼저 도착한 남동생이 딸아이를 데리고 있는 동안, 제가 임종 면회에 들어갔어요. 경비가 삼엄한 병동 출입구를 지나,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엄마가 있는 병실에 도착했어요.
엄마가 있는 곳은 임종방이었어요. 아빠는 임종 면회를 진행한다고 하니 병실을 옮겨주었다고 하셨지만, 저는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어요. 마음을 편안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후회 없이 하라는 액자가 걸린, 임종 방이라는 것을요. 엄마는 어제 낮, 로비에서 인사할 때와는 또 다른 사람처럼, 온몸에 크나큰 기계 4개를 더 많은 줄에 연결한 채 누워있었어요.
"왔니? 엄마 티셔츠 가져왔어?"
엄마는 엄마의 임종 면회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평소 같았으면, 이렇게 병실을 옮기고, 가족들이 줄줄이 면회를 온다면, 엄마의 성격상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을 텐데... 엄마가 정신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병실에서 입기 좋은 모달 목티를 저에게 가져다 달라고 입원하기 전에 부탁했었는데, 그 얘기를 먼저 물어보시더라고요. 당연히... 못 챙겨왔죠.
엄마에게는 "미안해, 엄마 내가 깜빡했어. 다음에 가져다줄게."라고 대답했어요. 엄마 손을 가만히 잡고, 엄마와 셀카도 찍고... 많이 아프지는 않은지, 그동안 치료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이야기했어요. 1시간이나 이야기했는데, 사실 무슨 이야기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엄마와 형제들과 남동생과 저까지 임종 면회를 이어서 했어요. 우리는 형제가 많아서 그러니 한 번에 2명씩 들어가게 해달라고, 환자가 얼마나 힘들겠냐 사정을 말해보기도 했지만, 규정상 안된다는 대답만 돌아왔어요.
엄마의 바로 아래 동생, 둘째 이모가 임종 면회를 하며, 집에 계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해주었어요. 엄마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퇴원하고 집에 가면, 드리려고 챙겨둔 것들을 가져다드리겠다고 했고, 다들 더 말을 잇지 못했어요.
그렇게 엄마는 모르는 엄마의 임종 면회가 하루 종일 계속되었어요.
"마지막으로 한 분 임종 면회 가능합니다."
엄마의 형제들과 남동생, 저까지 한 번씩 임종 면회를 다녀온 상황이었어요. 마지막으로 한 분 임종 면회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생과 제가 눈이 마주쳤어요. 머뭇머뭇 거리던 사이...
"누나가 다녀와, 난 아까 이야기 많이 했어!"
남동생의 이야기에 그래 그럼! 하고 마다하지 않고 바로 엄마에게 달려갔어요. 엄마는 아침에 만났던 그 모습 그대로 침대에 누워있었어요.
"엄마, 마지막으로 한 명 더 만날 수 있다고 해서, 내가 대표로 왔어! "
그 순간에 남동생이 어떻게 흔쾌히 양보했는지는 나중에도 물어보지 못했어요. 사실 엄마는 저보다는 남동생을 더 사랑했거든요.
엄마는 평생 아니라고 했지만, 결혼을 하고 남편이 저의 이야기를 듣고 긍정해 주더라고요. 장모님의 태도가 미묘하게 다르다고요. 엄마가 남동생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제3자에게 인정받으니 오히려 속이 시원했어요. 평생 엄마가 네가 예민한 거라고 얘기했던 것을 남편이 맞다고 해준 것이 오히려 고맙더라고요.
그렇게 많은 생각이 지나가며 엄마 손을 잡고 조잘조잘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어요. 규정 상 올라오지 못했지만, 이모부도 남동생 내외도 엄마가 가장 보고 싶어 했을 딸아이도 남편도 다 병원에 있다고요.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다들 이게 웬 고생이냐 하시더라고요.
그러다가 갑자기...
"데미소다..."
응? 엄마가 지금 데미소다를 말한 건가? 같이 계시던 아빠가 다시 물어보니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데미소다 사과 맛이 드시고 싶다는 이야기였어요. 아빠는 나가서 얼른 사 오겠다며, 저에게 엄마와 잠깐만 있으라며 달려나가셨어요.
다시 엄마와 둘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어요. 정말... 어떤 이야기들을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네요. 얼른 사 오겠다며 나가신 아빠는 예상과 다르게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으셨어요.
아빠에게 전화가 왔어요. 이상하게도 병원 지하 슈퍼에 데미소다 사과 맛이 없다고, 가까운 편의점에 다녀오겠다고, 엄마에게 잘 말해달라는 전화였어요.
저는 엄마에게 그냥 다른 음료를 드시는 게 어떠냐 했지만,
아빠는 그러지 말라고, 가까운 곳에 있으니 아빠가 금방 사 오겠다고 하셨죠.
나중에 아빠에게 이야기했지만, 그때 엄마의 바이털 모니터가 요동치고 있었어요. 혹시나 아빠가 없는 사이 엄마가 떠나시면 어떻게 하나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이 순간을 나 혼자 지켜보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마음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오더라고요.
다행히 엄마의 바이털 모니터는 다시 안정을 찾았고, 아빠는 데미소다 사과 맛을 사서 병실로 돌아오셨어요. 엄마는 음료를 드시면서 정말 시원하고, 맛있다고 좋아하셨어요.
어느덧 임종 면회 시간이 다 되었고, 엄마와 아빠를 두고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아빠와 저는 엄마가 옆에 계셔 뭐라 말할 수 없었지만, 눈짓으로 인사했고, 엄마는 엄마 안 죽으니 걱정말고 이제 내려가서 식구들 저녁 챙겨서 먹으라는 당부를 하셨어요.
병실 문이 닫히도록 서있던 저에게 어서 가서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손짓과 엄마의 다른 손을 잡고 자리에 앉아 계시던 아빠의 모습이 마음속에 오래된 사진 한 장처럼 남아 있어요.
아마 그 모습을 저는 평생... 잊을 수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