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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이치료사 윤쌤 Oct 28. 2024

딸이 기억하는 엄마, 내가 기억하는 엄마

   폐암 4기 엄마가 돌아가시고 믿을 수 없었던 한두 달의 시간이 지나가고 새로운 감정의 국면이 시작되었죠. 


   일상생활로 돌아와 생활할수록 엄마와 함께 했던 지난날들이 속속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모든 것이 엄마로 연결되던 시간 속에 살고 있었어요. 


   버스를 타고 길에 지나가던 할머니만 봐도 "왜 우리 엄마는 그렇게 일찍 갔을까?! 엄마는 할머니가 되어도 예뻤을 텐데..." 생각이 났어요.


   그렇게 슬프고 그립고 보고 싶을 줄만 알았는데...


   어느 날  딸아이와 서로 대화를 하다 기억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다른 것을 알고 서로 의아해했어요.


   딸아이가 기억하는 엄마는 딸아이를 늘 사랑해 주었고 딸아이의 모든 것을 응원해 주었더라고요. 딸아이의 모든 모습이 다 예쁘다고 최고다라고 칭찬해 주었더라고요.  



   "할머니는 내가 제일 좋다고 했어!

    내가 하면 무엇이든 괜찮다고 했어!"

   - 딸아이가 기억하는 엄마 



   엄마의 이런 모습이 의아했던 이유는... 저는 자랄 때 엄마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언젠가 어른이 되어 엄마에게 왜 나에게 예쁘다고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그런 걸 꼭 말로 해야 아는 거냐고 버럭 화를 내며 되물어 할 말이 없어졌던 기억이 있거든요.


   저와 엄마는 정말 친구 같은 사이였어요. 그래서 친구처럼 직언도 팩폭도 서슴지 않았고, 다 잘 되라고 하는 말이라며 상처가 되는 말들도 많이 했어요.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제가 놀이치료사, 청소년상담사가 되어 어느 정도 내적인 힘이 생길 때까지 엄마와 잘 지내기란 정말 쉽지 않았어요.


   엄마는 딸인 제가 자신과 너무도 달라서 키울 때 많이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내 딸인데 왜 나와 이렇게 다른 걸까?!"



   너무도 이해하기 어려웠고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데요.


   엄마는 자신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사람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엄마와 다른 저는 아주 주관적이고 특이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붙여졌어요. 그것이 엄마의 주관적인 잣대라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저는 내적으로 아주 시끄러운 시간들을 보냈죠.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엄마가 아픈 동안 하지 못하고 마음 한 켠으로 미뤄두었던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 같았어요.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왜 그랬지? 엄마가 그때 왜 그랬지?" 



   질문들이 쌓였고, 가끔은 참을 수 없이 화가 솟구쳤어요.


   딸아이가 기억하는 엄마를 보니 그걸 모르거나 못했던 건 아닐텐데... 왜 나에게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엄마가 미치도록 보고 싶으면서도 원망스러웠어요.


   그러다 엄마가 예전에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다시 아이를 키우면

    정말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그 때는 엄마도 너무 어렸고...

    그 모든 것들이

    다 중요한 줄만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럴 일이

    아닌 일들이 많았어.

    너도 너무 애 볶지 말어." - 엄마 



   엄마는 스물 세살에 아빠를 만나 스물 네살에 결혼을 했고, 스물 다섯살에 저를 낳았어요. 한창 꿈 많고 어리던 아가씨가 엄마가 된 거죠. 어쩌면 엄마가 되어 포기한 것들이 지금의 저보다 많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엄마가 되기 어려웠던 건 아닐까... 나이가 들어 손녀를 보니 우리 딸도 이렇게 작고 어렸었나...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도 자주 했었거든요.


   어쩌면... 엄마가 딸아이에게 해주었던 말들은 어린 시절 나에게 해주지 못했던 말들이자 엄마도 나에게 진심으로 해주고 싶었던 말들이기도 하겠구나...


   나중에 아주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 때는 엄마 없이 딸 키우고 사느라 정말 수고 많았다고... 엄마가 맛있는 밥 해놓고 기다리고 있다고 안아주시겠죠.


   그렇게 생각하니 어린 시절 야속했던 엄마도 딸아이가 기억하는 보드라운 엄마도 조금씩 이해가 되었어요.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씩 누그러지는 마음을 지켜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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