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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이치료사 윤쌤 Oct 23. 2024

염치없는 자식의 모순적인 바램

   24년 1월, 엄마가 떠나고, 저는 딸아이와 더 자주 친정에 갔어요. 혼자 지내시는 아빠는 걱정말라고 잘 지낼 수 있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혼자서 정말 잘 지내실 수 있을까 못 미더웠거든요. 


   친정에 갈 때마다 내가 미처 몰랐던 아빠의 모습을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엄마는 아빠는 회사일로 바쁘고, 바깥일로 바쁜 사람이라 살림에 대해서는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며 아프신 중에도 걱정이 많으셨어요. 


   그런데 막상 혼자 지내시는 아빠는 정말 깔끔하게 집을 관리하셨고, 계절에 따라 이불도 바꾸시고 옷장도 정리하셨어요. 무덥고 습한 여름이 다가오면서는 오래전부터 장만하고 싶으셨다며 소형 건조기를 구매하시는 의외의 살림꾼 면모를 보이시더군요. 


   가장 걱정했던 아빠의 식사도 차츰 루틴을 찾아가시면서 아침, 점심, 저녁 단백질이 많이 포함된 식단을 짜서 준비하셨어요. 아빠는 엄마가 아픈 동안 집안일을 많이 배우게 되었던 것 같다며 웃으셨어요. 


   그렇지만, 아빠도 가족들 모두 할 수 없었던 일은 엄마가 아끼던 화초를 가꾸는 일이었어요. 엄마는 제가 어릴 때부터 집안에 화초를 두고 가꾸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자그마한 선인장들과 꽃화분, 큰 화초들까지 집에는 화분이 많았죠. 


   사시사철 푸르른 빛을 유지하려면 해줘야 할 일이 많았어요. 집 안의 습도도 온도도 안정되게 유지해야 했고,여름에는 베란다에 내어두어 햇빛을 충분히 보게 해주고, 가을이 되어 찬바람이 불면 겨우내 따뜻한 집 안으로 들여다놔야 했거든요. 


   엄마의 장례를 치르느라 정신없었던 열흘만에 돌아왔을 때, 집안의 화분들은 겨울철 시래기처럼 말라 비틀어져 있었어요. 주인이 아프니 너희들도 아프구나 싶은 마음에 콧등이 시큰해졌고, 아빠와 키울 수 있는 화분과 없는 화분들을 구분해서 정리했어요. 


   딸아이와 다시 친정을 찾았을 때 화분이 모두 정리된 엄마집의 텅 빈 베란다는 엄마가 없는 집 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졌어요. 엄마의 물건들 없이 깨끗하게 정리된 집이 이상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다 아빠의 서재방 문을 열었는데 엄마의 사진이 모두 치워졌더군요. 순간 머리속이 쎄해져서 아빠에게 물어봤어요. "엄마 사진이 다 없네?" 하면서요. 


   그 순간 잠깐이었지만 아빠에게 약간 화가 났던 것 같아요. 엄마 물건도 사진도 다 치우고 잘 지내시는 모습이요. "어떻게 벌써 괜찮을 수 있지?!" 하는 마음이 잠시 스쳐갔어요. 


   아빠는 쓸쓸한 목소리로 "엄마가 너무 보고싶어서" 라고 하셨어요. 건강하고 아름다웠던 시절 사진 속 엄마의 얼굴을 보니 자꾸 눈물이 나고, 꼭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아서 힘들어서 잠시 치워둔 거라 하시더라고요. 보고 싶을 때면 꺼내서 본다시면서요. 


   아빠랑 둘이 부둥켜 안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울면서 여실히 깨달았죠. 자식은 끝까지 염치가 없구나. 엄마를 잃은 아빠가 누구보다 잘 지냈으면 좋겠다 했지만, 마음 한 구석으로는 엄마를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좋겠다 싶었구나. 아빠는 자식들이 걱정할 까봐 애써 씩씩한 모습만 보이시는 거였는데 말이죠. 


   엄마가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던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간병을 도맡아 하던 아빠의 멈춰있던 시간도 그 때부터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벌써 바꿨어야 했던 화면이 누래진 휴대폰을 보니 실감이 났죠. 


   그 날 이후로 정말 아빠가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에 진심이 담아졌어요. 잘 지낸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더 깊이 고민해보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아빠가 잘 지내시기를 바래요. 엄마와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간직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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