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4기 엄마의 장례 이후, 한두 달의 시간이 금세 흘러갔어요.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았고, 딸아이는 3월 새 학기 개학을 했고, 가족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일과를 찾아가는 듯했죠. 아직도 슬퍼할 겨를은 없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24년 4월 초가 되자 저에게도 열감기와 몸살이 찾아왔어요. 뒤늦게 시작된 봄에 일교차가 심해진 날씨라 감기와 각종 바이러스가 유행이라는 뉴스를 본 직후였어요.
토요일 저녁부터 몸이 으슬으슬하다 몸살 기운을 느꼈는데 그로부터 4~5일 정도 해열제와 항생제, 감기약을 먹으며 지냈어요. 38.0 도 정도의 미열이라 병원에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몸살 기운으로 오한이 들고, 새벽에도 해열제를 먹고 다시 자야 하는 날들이 계속되었어요.
급기야 그다음 주 토요일 아침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토요일 수업도 모두 취소하고 집에서 쉬었어요. 최근에 감기 몸살이 이렇게 심했던 적은 없었는데 말이죠.
그러던 중 남동생이 감기 몸살로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남동생은 배탈이 나서 힘들다면서요. 열이 나는 것도 힘들다고 이야기하다가 문득... 우리가 엄마와 각자 이별하느라 아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한두 달이 지났던 24년 봄,
저와 남동생은 감기 몸살로 아팠고, 엄마의 남동생, 외삼촌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안구의 이상으로 인해 수술을 했고, 엄마의 아버지, 외할아버지는 요로 결석 증상으로 인해 수술을 했어요.
외삼촌도 외할아버지도 간단치 않은 수술이었고, 전공의 파업 중이었기 때문에 그저 수술을 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고 수술 후 잘 회복하고 계셔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어쩌면 제일 아팠을 아빠는 가족들 누구에게도 아프다 힘들다 내색하신 적이 없었어요.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장례가 끝나고 집에 혼자 멍하니 앉아있으니 기분이 점점 가라앉아 이러면 안되겠구나 하며 더 규칙적인 생활을 열심히 하셨다고 하더군요. 아빠는 엄마를 사랑했던 만큼 온 힘을 다해 잘 지내고 계신 거겠죠.
계절은 다시 지나 이제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 오고 있어요. 아침저녁으로는 찬바람이 낮에는 봄처럼 따뜻한, 이상한 날씨가 계속되어 요즘도 감기와 바이러스가 유행이라고 하죠.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도 이렇게 많은 적응이 필요하고 힘든데, 엄마가 없는 계절에 적응하느라 우리가 모두 아프구나 생각하니 정말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어요.
엄마 장례를 치르느라 정신없던 일주일,
엄마 없이 맞이한 첫 봄에 열감기로 앓아누웠던 열흘도... 엄마가 없어서 그랬구나 생각하니 안 그랬으면 괜히 서운할 것 같은 기분마저 들더라고요.
나도 다 컸다고 큰소리치면서도 마음 깊이 엄마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철부지 딸의 모습을 뒤로하고, 이제 진정한 어른이 되어 가족들을 챙겨야 하는 인생의 계절이 바뀌는 중인가 봅니다.
언제든 보고 싶을 때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엄마는 곁에 없지만, 마음속에 엄마가 항상 함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잘 적응하며 살아가 보려고 해요. 그게 엄마가 제일 바라는 일이실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