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6일 화요일, 엄마 장례를 마치고 이틀이 지난날이었어요. 장례를 치르기 전부터 엄마의 위중한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에 근 보름 정도의 시간이 터널처럼 흘러가고 있었어요. 날짜와 시간, 요일에 대한 감각도 딸아이 학원에서 연락이 올 때나 돌아왔죠. 화요일 점심에는 외가, 친가 가족들과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어요.
장례 기간 내내 저와 남동생에게 많은 것들을 의지하시던 아빠가 하루 전 날, 월요일 저녁 의논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가족들을 모으셨거든요.
"내일 점심쯤에 외가, 친가 가족들 모두 모여
식사를 하면 좋겠다.
엄마 장례를 치르느라 다들 너무도 고생하셨어.
발인을 하고 3일째 되는 날 삼우제를 지내는데,
우리는 삼우제는 아니지만,
다 같이 모여서 얼굴 보고 식사를 하면 좋겠다."
- 아빠
가족들 모두 아빠의 의견에 동의했어요. 집에서 멀지 않은 괜찮은 식당에 다음날 화요일 점심을 예약했고, 외가, 친가 가족들에 연락을 했어요. 모두들 흔쾌히 올 수 있다 해주셨죠.
저와 가족들이 식당에 일찌감치 도착해 있었고, 외가, 친가 가족들이 속속 도착했어요. 자리를 넉넉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어, 크게 고민하지 않았었는데... 막상 가족들이 도착하면서 자리를 어떻게 앉아야 하지 잠시 고민했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고 보니, 아빠는 친가 식구들과 앉아 있고, 외가 식구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앉게 되었어요. 저는 남편과 딸아이, 남동생네와 함께 앉게 되었죠.
저에게는 그 날의 장면이 너무도 생경하게 다가왔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를 챙겨드리며 식사하는 가족들 사이, 그곳에 이제 엄마가 없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외가에 자주 가고 이모들과도 각별했음에도 엄마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외가 식구들과 한 발짝 멀어진 기분이었어요. 서글프고 속상했지만 나조차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지더군요.
구십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래 앉아 계시는 것을 힘들어하셔서, 외가 식구들이 식사를 마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어요. 친가 식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식당을 나서는 길이었어요. 로비에 예쁘고 큰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더라고요.
"여기 너무 예쁘다!
우리 다 같이 사진 찍고 가자!" - 막내 이모
흰머리가 많다고 엄마가 걱정하던, 발랄하고 쾌활한 막내 이모가 이야기했어요. 다들 에이 뭘 사진을 찍어 하면서도 막내 이모의 제안에 싫지 않은 듯 트리 앞에 섰어요.
식당 매니저님이 넉넉하게 여러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셨고, 다들 즐겁게 인사하며 헤어졌어요. 그날 저녁 막내 이모에게 모두들 잘 나왔다고, 찍은 사진을 보냈어요.
"정말 잘 나왔구나!
이런 날 무슨 사진인가 싶었지?
사실은 너랑 남동생, 딸아이를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이모가 찍자고 했어!" - 막내 이모
설명할 수 없었던 그 거리감과 생경함을 막내 이모도 느꼈던 것 같아요. 친가 식구들 사이 엄마 없이 있던 아빠의 모습이 너무도 낯설더라며...
외가와 나를 연결해 주던 "엄마라는 연결고리가 이제 사라져서였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된 건 시간이 더 흘러서였어요. 그때는 그저 엄마가 없다고 이렇게 허전할 일인가 싶어서 기분이 이상하기만 했어요. 아마도 엄마의 빈자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