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놀이치료사 윤쌤 Oct 07. 2024

엄마의 유품 정리

   모든 장례 일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잠이 들었어요. 유가족들에게는 장례 이후부터가 진정한 이별의 시간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집에 돌아오니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몰려왔어요. 


   아빠는 엄마의 흔적을 한꺼번에 치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셨어요. "엄마랑 같이 지내는 것 같아 좋다" 하시면서요. 하지만 아빠가 혼자 지낼 곳이라 생각하니 여기저기 놓여 있는 엄마 물건들이 눈물 버튼이 될 것 같아 걱정이 되었죠. 



   장례를 치른 다음날 아침, 

   아빠가 엄마의 옷을 들고 울고 계시는 것을 보고는 이대로 두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남동생 내외와 남편, 딸아이까지 합세해서 대대적으로 온 집안에 있는 엄마의 물건들을 정리했어요. 엄마의 옷과 가방, 신발들... 하나하나 정리할 때마다 엄마가 이것을 신고 함께 갔던 곳들, 엄마가 입고 함께 사진 찍은 장면들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했지만, 여러 가족이 함께 이야기하며 정리하니 그럭저럭 많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어요. 



   아빠는 "나중에 내가 혼자 하면 된다" 하셨지만, 

   절대 그래서는 안되었다 지금도 생각해요. 



   침대의 이불도 새로 갈아드리고, 방의 구조도 아빠가 쓰시기 좋게 가구배치를 많이 바꿔드렸어요. 당장 이사를 갈 수는 없어도,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전환해 드리고 싶었거든요. 


   아빠는 엄마의 유품을 정리할 때 저와 남동생을 불러, 간직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무엇이든 간직하라고 얘기하셨어요. 아빠가 돌아가신 친할머니 물건이 하나도 없어서 살면서 내내 너무도 슬펐다고 하시면서요. 아빠는 엄마가 마지막으로 썼던 안경과 모자를 간직하겠다고 하셨죠. 


   아빠 나이 20대 중반, 할머니가 만성 신부전증으로 먼저 하늘로 떠나셨어요. 아빠는 그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눈물도 나지 않았다고 해요. 


   결혼도 하기 전 20대 중반 정말 젊은 나이에 엄마를 잃었다니... 다시 생각해 보니 더 마음이 아프네요. 4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아빠는 지금도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할머니 물건 중에 아빠가 간직하고 싶었던 것들도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고인의 물건은 모두 태워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서, 장례 마치자마자 고모들과 할아버지가 모두 태워버렸다고 해요. 


   엄마와 특별히 각별했던 손녀, 딸아이는 엄마가 자신의 생일파티 때 입었던 옷과 엄마가 제일 좋아했던 목걸이를 간직하고 싶다고 했어요. 가족들 모두 흔쾌히 그러라고 했고, 딸아이는 엄마의 옷과 목걸이 상자에 마지막으로 엄마가 주신 용돈을 넣어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어요. 


   그러다 서랍 안에 있던 엄마의 지갑을 보게 되었어요. 최근에 사용하던 것은 아니라 혹시나 안에 넣어둔 것들이 있나 살펴보다가 작은 사진을 발견했죠. 


   20년 전 무더운 여름날, 군대에 있던 남동생에게 면회를 갔던 날, 남동생과 제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어요. 사진 속의 20대 초반 남동생과 저는 한없이 어리더군요. 


   멀리서 군 복무를 하던 남동생을 만나 아빠, 엄마와 카페에서 커피와 도넛을 먹던 시간이 떠올랐어요. 그 시절 젊고 아름다웠던 엄마의 얼굴을 보이는 듯 했고, 씩씩하게 즐겁게 정리하던 저도 속절없이 무너져 엉엉 울어버렸네요. 


   이 순간이 이렇게 소중할 줄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말이죠. 울고 있던 저를 발견한 남동생도 사진을 보더니 말없이 저의 어깨를 툭툭 쳤어요. 위기를 넘기며 정리하고 있을 아빠 생각에 얼른 눈물을 닦았어요.


   엄마의 유품 정리는 가족들이 다 함께 있을 때 하기를 정말 잘 했어요.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상황이라 참 다행이었네요. 

이전 18화 상주로 장례를 치르며 알게 된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