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4기 엄마가 돌아가시고 맞이한 첫가을, 남편과 딸아이와 친정으로 가던 길이었어요. 엄마의 추모공원은 친정집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였죠. 친정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남편이 이야기를 꺼냈어요.
"생각보다 일찍 도착할 것 같은데,
장모님 뵈러 갈까요?" - 남편
딸아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좋다고 대답했죠. 저는 어쩐 일인지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더군요. 남편도 딸아이도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았고, 저는 몇 초간의 망설임 끝에 그러자고 했어요.
햇빛도 좋고 하늘도 예쁘던 가을날, 남편과 딸아이는 기분 좋게 추모공원에 내려 엄마에게 향했어요. 정말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뒤를 따라가던 저는 엄마의 고운 유골함을 마주하고서야 왜 그렇게 오기 싫었는지를 알 수 있었어요.
결혼하고 엄마와 한 집에 살지도 않았고, 엄마의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던 마지막 한두 달 동안은 엄마와 통화도 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의 마음속에 엄마는 많이 아픈 채로 머물러 계셨던 거죠.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이곳에 오지 않으면 잊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이곳에 와서 엄마의 유골함을 마주하면... 마음 속에는 여전히 살아있는 엄마가 없는 것을 마주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렇지... 엄마는 이제 이 세상에 없지...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직면시키는 기분이더라고요. 엄마가 곁에 있는 것처럼 살고 싶은 저의 마음에 경고를 울리는 것 같았어요.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라는 것처럼요.
영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와서는 눈물을 흘리는 저를 남편과 딸아이가 잘 토닥여주었어요. 한동안 그립고 보고 싶기도 하면서도 원망스럽고 미운 엄마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들어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남편과 딸아이와 다음에 또 오겠다며, 엄마가 좋아하는 예쁜 꽃 많이 보고 계시라고 인사하며 돌아왔어요. 햇볕이 잘 드는 자리라 좋다고 이야기하면서요.
날씨가 쌀쌀해질수록 엄마가 떠난 겨울이 다시 돌아오고 있구나 싶어 시간의 빠름을 새삼 느낍니다. 이제 두어 달 있으면 엄마가 떠난 지 1주기가 되겠네요. 그때쯤이면 엄마에게 덜 응석 부릴 수 있을까요? 그곳에서 엄마는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계신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