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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이치료사 윤쌤 Nov 06. 2024

다 좋은 것도 다 나쁜 것도 없었다.

   폐암 4기 엄마 장례 후, 놀이치료사 윤쌤은 정말 인간관계의 큰 변화를 경험했어요. 그것은 돌아가신 분이 가족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고도 하더군요. 


   부고 문자를 어디까지 보내야 하나에 대해 고민이 많았지만, 돌아보니 망설여지더라도 일단 소식을 알려야 하는 것이 맞았던 것 같아요. 소식을 받고 오지 않는다면 관계가 거기까지라는 의미니까요. 


   장례를 치르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와주었던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고 만나기도 하며 몇 달의 시간이 흘렀어요. 엄마는 자신이 암 진단을 받고 항암을 하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아 하셔서, 지인들에게는 정말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지인들을 만나서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엄마가 어떻게 치료하셨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나누게 되었어요. 



삶은 돌연한 사건과 

우연한 만남의 연속으로, 

우리는 훗날 돌아볼 때에야 

비로소 그 모든 일들이 

특별했음을 느낀다. 


-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 



   엄마가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에는 그 자체에 온 가족이 집중하고 엄마를 케어하는 데 올인했던 것 같아요. 엄마가 독한 치료를 잘 이겨내주기를 바라면서요. 그래서 다른 상황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나 봐요.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되었어요. 그 모든 일들이 특별했고, 운이 아주 좋았다는 것을요. 


   생존기간 평균 6개월, 

   폐암 4기였던 엄마와 22개월을 함께 살았다는 것, 

   한 가지 항암제로 6개월 이상 효과를 본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 

   끝까지 엄마에게 여명을 말해주지 않고 가족들과 환자를 예우해 주시던 주치의는 국내 폐암 치료의 권위자 셨다는 것, 

   국내에 소수만 참여할 수 있었던 글로벌 제약 회사 임상치료에 엄마가 참여했다는 것, 

   서울 A 병원에서 완화의료센터 임종실을 배정받아 3일이나 아빠와 엄마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임종했다는 것... 


   이후의 장례식장도 화장장도 추모공원도 가족들이 편안한 시간대에 햇빛이 잘 드는 좋은 자리에 배정받았던 것들 모두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었어요. 


   엄마 장례 이후에 알게 되었어요.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님이 아프지 않으셨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는 것을요. 지인들 중에도 어릴 때 부모님이 아프셨던 경우가 많았고, 성인이 되어 일찍 부모님 중 한 분을 여읜 경우도 많았고, 아프지도 않으셨던 부모님이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신 경우도 적지 않았어요. 


   저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부모님과 함께한 그 많은 시간들이 얼마나 특별했고 행복했던 시간인지 알게 되었어요. 


   임종 면회를 마친 뒤 이틀째, 집에서 밥도 안 먹고 엄마가 그만 울었으면 좋겠다는 딸 앞에서 울고만 있었던 저에게 달려와 맛있는 디저트와 밥을 사주고 돌아간 사촌 오빠들, 입관 전에 우황청심환을 따서 먹여주고 장례 내내 마흔 넘은 저를 아기처럼 보살펴주던 사촌 언니들, 장례를 치르는 내내 누구보다 수고해준 외가, 친가 가족들... 경황이 없어 연락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저에게 값없이 많은 사랑을 전해준 많은 분들까지... 


   서운하고 노여웠던 사람들보다 고맙고 감사한 이들이 더 많았어요. 앞으로 제가 함께 행복해야 할 이들이 저절로 정리된 기분이었죠. 



마흔을 앞두고 인생을 한번 가지치기 할 수 있었고, 그것은 이후의 삶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네가 지금 마흔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면 너무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돌이켜 보면, 나는 서른 일곱 살에 "중년의 위기"를 겪으며 힘들었지만 그 덕분에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중요치 않은 일들은 과감하게 정리해 나갈 수 있었다. 


- 벌써 마흔이 된 딸에게 :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한성희 - 



   제가 마흔이 되던 해, 엄마는 암 진단을 받았고, 크나큰 어른 같았던 엄마가 쇠약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러웠어요. 내 미래를 미리 겪는 기분이라 그랬을까요? 


   엄마의 장례를 치르며 부모 자식 관계에서 자식이 보호자가 되는 순간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 경험했다 생각해요. 그 과정을 통해 저와 맞지 않는 이들과의 관계에 대한 미련도 사라졌어요. 좋은 이들과 지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걸요. 


   항암 치료에 집중하느라, 모든 하고 싶은 일들을 나중으로 미루었던 엄마를 떠나보내며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어요.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말고, 

   오늘 할 수 있는 것들을, 

   오늘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긍정적으로 모든 일에 감사하며

   하지만 미래를 위해 

   오늘도 꾸준히 노력하며 살아가야겠다. 



   놀이치료사 윤쌤은 이만하면 엄마의 마지막 선물을 잘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40년 살아갈 이정표를 받은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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