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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이치료사 윤쌤 Nov 04. 2024

건강검진과 엄마

   24년 가을, 놀이치료사 윤쌤은 건강검진을 받았어요. 생애 주기 추천 대장 내시경과 위내시경도 함께 신청해두었죠. 


   내시경은 하루에 검사할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어서 몇 달 전에 신청했는데도 날짜가 가을까지 밀렸어요. 아파서 치료를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검진하러 가는 건데도 날짜가 다가오니 긴장되더라고요. 


   일주일 전 내시경 약을 받았어요. 위내시경은 여러 번 해봐서 괜찮았는데요. 대장 내시경은 먹어야 할 약이 많더라고요. 며칠 전부터 식단도 조절해야 했고요. 검사 전 날 밤에 1차로 약을 먹고 새벽에 일어나서도 2차로 약을 먹어야 했어요. 


   거기에 장을 비우느라 화장실을 계속 들락날락했더니 정말 진이 다 빠지더군요. 먼저 해 본 남편은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저는 약을 먹고부터 오한(대장 내시경 약 부작용)이 들어 줄곧 담요를 덮고 누워만 있었어요. 


   약을 먹고 8~10번 정도는 화장실을 간다고 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음에도 막상 자주 화장실을 오고 가니 정말 힘들었어요.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었죠. 


   어찌어찌 시간이 흐르고 건강검진도 모두 마쳤어요. 수면내시경으로 진행해서 멍한 상태로 의자에 앉아있을 때였어요. 



   "다시 해볼게요. 

    제가 못하면 

    다른 분 불러서 해볼게요." 

    - 건강검진센터 직원



   무슨 얘기인가 하고 지켜봤더니, 건강검진 수검자 채혈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수검자는 자신이 혈관을 찾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설명하시더라고요. 직원이 몇 번 시도했지만, 바늘이 들어가지 않았고 조금 뒤에 다른 직원이 와서 다시 시도했어요.



   "원래가 혈관 찾기가 어려운데...

    요즘 항암치료 다니느라 

    혈관을 많이 써서 더 그래요..."

    - 건강검진 수검자 



   다른 직원이 와서 다시 시도해도 혈관을 찾지 못했고, 또 다른 직원이 와서 해보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중 저는 안내를 받아 나왔어요. 


   그렇게 건강검진을 마치고 나오는데 엄마 생각이 나더군요. 엄마도 혈관 찾기가 어렵다고 했었거든요. 엄마는 20여 년 전에 건강검진에서 채혈을 하다가 직원의 실수로 쇼크가 온 적이 있었다고 했어요. 


   그 뒤로 바늘을 찌를 때마다 엄마가 많이 긴장했어요. 엄마는 혈관이 얇고 꼬불꼬불하게 되어 있어 혈관을 찾기가 어려운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응급실 갈 일이 생기고, 거리가 먼 곳에 있었어도 엄마가 꼭 서울 A 병원을 가야 한다고 고집했던 이유도 거기서는 한 번도 엄마의 혈관을 찾을 때 고생한 적이 없어서 였어요. 


   그럼에도 한두 곳 밖에는 바늘을 꽂을 혈관이 없다고 엄마는 걱정을 했죠. 나중에 이곳도 못 쓰게 되면 항암치료는 어떻게 하냐면서요. 엄마의 체질을 많이 닮은 딸, 저에게도 채혈할 때 고생한 적 없는지 늘 걱정하셨어요. 


   엄마를 곁에서 지켜보니 항암치료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더라고요. 어떤 형태로든 부작용은 존재했고, 그중에 엄마는 설사를 가장 힘들어하셨어요. 


   임상 항암치료를 하며 엄마는 오후 4,5시가 넘어가면 그날 먹은 것들은 모두 비워내기 시작했고, 새벽 2,3시가 되어야 뱃속이 잠잠해진다고 했어요. 


   깔끔한 성격의 엄마는 화장실을 자주 오고 가야 하는 시간대에는 외출을 하는 것도 집에 누군가가 오는 것도 꺼려 했어요. 이때부터 엄마가 더 정서적으로 고립된 것 같아요. 


   항암치료를 책으로 배운 딸인 저는 그만하면 괜찮은 부작용이라고 이야기하며, 코피 나고 열나는 것(이전 약 부작용)보다 낫지 않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했는데요. 


   막상 제가 대장 내시경 한다고 하룻밤을 새벽까지 화장실을 드나들고서야 엄마의 괴롭고 외로웠던 시간들이 깊이 이해가 되었어요. 새벽녘에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기도 귀찮아 소파에 누워 담요를 덮고 잠들었죠. 


   하룻밤을 이렇게 보내도 진이 빠지고 정신이 없는데 엄마는 몇 달을 어떻게 버텼을까...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갈 수 없고, 보고 싶은 사람도 오라고 할 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돌이킬 수 없는 후회스러운 순간들이 마구마구 떠올랐어요. 집에 돌아가서는 버스 안에서 눈물이 자꾸 스르륵 흐르고 목이 메여와 혼자 헛기침만 연신 해댔네요. 


   자식은 이렇게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존재인가 봐요. 그때 엄마한테 조금 더 다정하게 말해줄걸... 엄마가 잘 견뎌줘서 고맙다고 그래도 조금만 더 힘내보자고 따뜻하게 말해줄걸... 후회만 가득한 하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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