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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체리맘 Feb 29. 2024

내가 산후 우울증이라고요?

산후우울증 극복 팁을 알려드립니다.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첫아이의 임신기간은 무난했던 것 같다. 임신을 하게 되면 여자의 몸과 마음은 그동안 '나'로만 존재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차원의 몸과 마음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난하다고 표현을 했지만, 무난함이 표현하는 단어는 내가 임신으로 인해서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느껴지는 사람냄새로 속이 울렁거리고, 그토록 좋아하던 스테이크가 구워지는 모습만 봐도 속이 뒤집어져서 화장실로 달려가 구역질을 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았다.

점점 불러오는 배로 인해서 나의 위가 눌리고, 방광이 눌려서 수시로 화장실을 가야만 하는 불편함.

위산의 역류로 인해 속이 쓰림은 항상 있었고, 옆으로 누워서 겨우 잠을 잘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일상은 생전 내가 겪지 못하고 누군가 알려주지도 않았기에 예상하지도 못했다.

손과 발 다리가 코끼리처럼 부어오르는 것도 익숙해지며, 정말 예전에 날씬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남산만큼 거대하게 배가 부른, 피부가 푸석해지고 머릿결도 거칠어진 여자만이 남았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모든 순간이 경이롭긴 하다. 출근해서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내 뱃속에서 "나 여기 있어요" 하는 듯이 꼬르륵 소리를 내며 첫 태동을 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뱃속에 있는 아기가 쉬야를 해서 부르르 몸을 떨고 있는 느낌도 들었다.

폐로 호흡하는 연습도 하는 아기는, 아기의 딸꾹질로 느꼈다.

정말이지 이 모든 경이로운 순간은 내가 여성이라서, 아이를 가진 엄마라서 느낄 수 있는 황홀하고 고귀한 느낌이었다. 태명을 불러주면 알아듣는다는 듯이 움직일 때 행복했다.


37주 5일 만에 태어난 나의 첫아기. 첫아기의 태명은 포도였다.

왜 포도로 지었느냐면, 남편과 내가 여수로 여행을 가서 포도주를 먹고... 그날 밤에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실제로 나는 임신테스트기를 했는데 두줄을 보지 못했는데, 그냥 느낌이 임신을 한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서 피검사를 했는데, 피검사 수치가 19로 떠서 며칠 뒤에 수치가 더 오르는지 확인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피검 수치는 10 이상이면 임신으로 보지만, 19는 너무너무 극 초기라서 수정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초음파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가 없는 상태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강력하게 알았다. 아이가 나를 찾아왔음을.

이걸 듣고 나의 남편은 너는 정말 초초 예민 보스라고 별명을 지어줬다. 나는 예민보스다. ㅋㅋ

그리고 이 때는 몰랐다. 내가 그렇게 호르몬의 노예인지를.......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임신을 하게 되면 여성의 몸은 임신호르몬을 분비하게 된다. 출산을 하게 되면 또 출산 호르몬 분비가 이루어지고, 출산이 끝나면 양육의 모드로 전환이 되면서 주로 분비되는 호르몬이 계속해서 바뀌게 된다. 엄청난 양의 호르몬이 늘었다 줄었다 하면서 여자들은 대부분 산후우울증을 앓게 되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아예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고, 심하게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산후우울증은 뉴스에서 보기만 했지 내가 심하게 겪을 줄은 하나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나는 심하게 오는 편의 사람 중 하나였다.


내가 걸린 산후 우울증은 아기를 낳아서 우울해지는 감정이 주를 이루기보다는, 두려움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조리원에서 내 품에 안긴 작은 사람을 안고 보고 수유를 하는 동안에, 내가 뭔가 잘못해서 아기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나를 집어삼켰다. 아기와 둘이 남겨질 때면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빨리 뛰면서 심장 뛰는 소리가 내 귓속에 들릴 정도였다. 산모는 잘 먹고 잘 자야 한다고 했지만 침대에 누우면 잠은 하나도 오지 않고, 내가 침대 밑으로 파묻히는 꺼져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 또 이렇게 자책이 시작이 되는 거다. 나는 산모인데, 잘 쉬고 빨리 회복해서 아기를 잘 봐야 하는데 나는 잠이 안 와. 잠도 못 자. 몸은 엄청 아프고, 회복도 더딘데 아기를 잘 볼 수 있을까? 나는 엄마 자격이 없는 것 같아. 나는 좋은 엄마가 되긴 글렀어. 나 때문에 우리 아이가 모유수유도 못하는데 이건 내 탓이야. 내가 아기를 잘 볼 수 없을 것 같아. 하면서 계속 도돌이표 같은 생각의 늪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불면증이 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울면서 아기를 낳은 병원으로 찾아가니 나를 담당했던 간호사 선생님과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무엇이 괜찮은지는 물어보진 못했지만 평소에 나처럼 밝은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호르몬으로 인해서 산후우울증이 크게 오는 경향이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위로해 주셨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직접 근처의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께 전화도 걸어서 내 상태를 설명해 주시고, 병원으로 인계까지 해주셨다. 그리고 혹시라도 선생님이랑 전화하고 싶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하시면서 귀중한 선생님의 핸드폰 번호도 알려주셨다. (지금 이 자리를 빌려 의사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양가 부모님께서는 내가 산후우울증에 걸렸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애기 하나 보는 걸 가지고 뭐 그리 유난이고 걱정이 많아서 우울증이 걸렸냐고 하는 말도 들었지만, 이런 말은 실제로 우울증 걸린 당사자에겐 별로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이것을 극복하는 데에는, "누구나 다 산후우울증에 걸린다. 다만 사람마다 그 강도가 약하게 오느냐, 강하게 오느냐의 차이일 뿐이다."라는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나는 다만 좀 심하게 온 편이고, 아기를 더 많이 사랑해서 더 많이 걱정하기 때문에 걱정하는 마음이 불안한 마음으로까지 커져버렸기에 걸린 거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그렇게 나를 다독여주는 위로의 말이 참 따뜻했다.

그리고 육아란 원래 힘든 것이고, 처음이니까, 실수가 있을 수도 있고 그래도 괜찮다고.

아기는 강하다. 엄마는 더 강하다. 걱정하지 마라. 다 잘 지나갈 거다.라는 말들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한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상태를 옆에서 지켜보며 걱정해 주며 같이 아기를 돌봐준 든든한 남편이 있었기에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우리 아기도, 엄마 힘들까 봐 생후 50일도 되기 전에 통잠을 자고 새벽 수유도 안 하는 효자중의 효자였다.

오히려 내가 분유를 손에 들고, 왜 우리 아이는 새벽에 분유를 안 먹고 잠을 자나? 하며 기다리는 이상한 모습이었다. 산후도우미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조선팔도에 이렇게 순한 애 한 명도 없다. 정말 순한 아기를 낳았다. 복 받은 거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은 정말 14년 경력자 이셨기 때문에 해주실 수 있는 극찬이지 않았나 싶다. 첫아기가 순했기에, 우리의 둘째 아기는 상대적으로 까탈스러웠다. 물론 이건 20개월 뒤에 또다시 출산을 하고 나니 알 수 있었다. 둘째 아기는 14개월이 넘어서까지 새벽수유를 끊지 못했다. 분유를 줄 때까지. 안 주면 끝까지 우는 대단한 성격의 소유자를 낳았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았다면 산후우울증에 걸리는건  너무 당연한 거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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