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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분가분 Jul 07. 2024

대한민국 학교는 죽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노근 선생님께

한동안 연락이 뜸했는데 그간 건강히 잘 지냈셨는지요. 작년에 서울에서 밥 한 끼 같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삼 년 전 일이었네요. 요즘은 시간이 왜 이리 빨리 흘러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사는 시골의 찬란했던 황금 들판은 어느새 텅 비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은 깊은 무기력에 빠져 있었으나 풍요로운 가을을 맞아 다시 살아나는 듯했었지요. 하지만 가진 것 다 떨구어내는 시절이 찾아오니 잊은 듯했던 우울감이 다시금 폭풍처럼 밀려듭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깊은 밤, 교대 동기였던 노근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선생님은 ‘거침없이 교육’이라는 저서로 한국 교육에 대한 날 선 비판을 통해 저에게 신명을 일깨워 주었지요. 저는 지금 7월의 어느 날, 교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둔 한 신규교사의 죽음을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학교는 죽었습니다.’


그 누구도 대한민국 학교가 죽었다고 이야기하지 않지만, 저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 자살률이 전 세계 1위라고 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자살하는데 유독 교사의 자살만 문제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대를 갓 졸업하고 교단에 선 새내기 교사가, 자신의 꿈을 피워내지도 못하고, 그것도 교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여러 가지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학교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 이 사건은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을 넘어 대한민국 학교의 죽음을 뜻한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고스란히 혼자서 감내해야 했던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라고 이야기합니다.


왜 오늘날 학교는 모든 책임을 교사 개인에게만 지우려고 할까요?


교장, 교감 선생님이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를 만나 중재할 수는 없었을까요? 교원평가 도입 이후 밀려드는 학부모 민원들을 관리자들이 중간에 개입하여 중재해 주는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면 어땠을까요? 저의 경우에도 학교폭력 관련 민원으로 힘들었을 때 수석교사 선생님이 학부모 상담을 지원해 주셔서 복잡했던 상황을 쉽게 풀어갔던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누가 뭐라 해도 연륜과 권위에 대한 존중이 암묵적으로 존재하니까요.


나아가 민원 제기 방식이 지금처럼 간단하게 전화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민원 제기자의 권리와 동시에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좀 더 행정적 절차 단계를 거치는 방식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지금은 무슨 온라인 쇼핑몰의 배송 서비스에 대해 항의하는 것보다 더 간단하게, 띡 전화 한 통에 온갖 불만을 쏟아낼 수 있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영화 '다음 소희'의 장면들과 젊은 교사들의 상황이 겹쳐 떠오르고, 코로나 때 과로사에 이르렀던 모 회사 택배기사님의 죽음도 결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더 커져만 갑니다.


그리고 교사에 대한 무자비한 고소 고발 기소의 과정에서 교육부와 교육청은 왜 교사를 지원해주지 않을까요? 오로지 교사 혼자서 외롭게 싸우도록 내버려 두는 모습이 마치 자기 가족을 책임지지 않는 부모처럼 보인다면 그건 저의 억지일까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서 발 빠른 보험회사들이 교사들에게 고소 고발과 관련해서 법률 비용을 지원하는 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각자도생의 싱크홀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습니다.    


신규교사에게는 1학년 담임을 맡기지 않는 교직 문화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학년 배정을 할 때 학년성과 교사의 숙련도를 고려한 최소한의 합의 문화가 학교 현장에 없지 않은데, 왜 더 세심한 배려와 지원이 미치지 못했을까 원통하기만 합니다. 적어도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는 연령대의 교사나 최소 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교사를 1학년에 배치한다는 합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작년과 올해 연달아 1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6학년 담임 못지않게 어려운 학년이 1학년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학교 사회화의 첫 시작점이라 학부모의 관심이 최고조일 수밖에 없고, 당연히 자녀의 학교 적응과 관련된 상담과 민원이 빈번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터져 나오는 불만과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치솟는 화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제 딸과 아내를 서이초 사건이 터지기 전, 2022년에 캐나다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어떻게 교사가 자기 자식을 외국으로 유학 보낼 수 있느냐고 둘레에서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저 역시도 2021년에 아동학대로 학생으로부터 고발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저는 이미 이때부터 대한민국 학교의 암울한 미래를 예감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번 서이초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더 깊은 우울감과 무력감에 빠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내년에 1년간 휴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혁신학교 5년을 보내면서 뼈를 갈아 넣을 정도로 학교에 헌신했던 제게 일어났던 일이라 충격이 상당했습니다. 아니, 그 당시는 솔직히 버틸만했어요. 학생이 신고했던 당일에 바로 그 아이의 학부모로부터 사과 전화를 받기도 했고,  학생의 경찰 신고 접수 이후 매뉴얼에 따라 진행된 경찰 조사와 지자체 아동복지과 조사도 큰 문제없이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억눌렀던 제 안의 모든 부정적 감정들이 서이초 사건을 접한 후에 터져 나오는 걸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은 그 당시 제 상태가 괜찮았던 것이 아니었던 거죠. 뭐랄까, 배신당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듭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동료교사들의 철저한 침묵이었습니다. '다음 소희'의 소희가 그랬던 것처럼 의지할 누구도 찾을 수 없었던 그 상황에 치가 떨립니다. '다음 소희'에서 경찰로 나왔던 배두나처럼 누군가 다가와서 "뭐야, 이게 말이 돼? 정말 괜찮은 거야?" 한 마디라도 건네면서 지지해 주는 동료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후폭풍에 시달리지 않았을 거예요.

아직까지 저의 부모님께도 말씀드리지 못했던 치욕의 순간을 오로지 아내의 위로를 통해 버틸 수 있었어요. 다행이었던 것은 시기가 '오줌왕의 탄생'이라는 제 첫 동시집을 출간할 때와 정확히 맞물려 있었던 거예요. 새로운 도전의 시간을 통해 끊임없이 긍정적 에너지를 스스로에게 불어넣으려고 했기에 버틸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동시집의 서문에도 적었듯이, 저는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잘못한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제가 아동학대 신고를 당했던 그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제가 만일 그 학생의 수학지도를 위해 위압적인 언행이 아니라 끊임없이 부드러운 태도를 견지할 수만 있었다면,

참고 참고 또 한 번만 더 참았더라면 어땠을까,

어땠을까,

솔직히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부터라도 제가 만났던 아이들에게 깊은 사과의 마음을 전달하는 반성문을 쓰려고 합니다. 이제라도 제 마음속 이야기를 솔직히 전달하고 사죄해야만 제가 올곧게 일어나 당당히 세상을 살아갈 건강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노근 선생님께 제안을 하나 드려봅니다.

선생님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번 서이초 사건으로 온 세상에 드러난 공교육의 난맥상을 살펴보고, 대한민국 학교의 부활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여러 교사 모임과 학교 수업 그리고 각종 잡무로 바쁘신 줄 압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여유를 가지시고 저와 서신을 통해 희망의 씨앗을 찾아가는 여정에 함께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에게는 선생님의 건강한 비판정신과 사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절실하기 때문이며, 이 여정은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제 교직에 커다란 힘이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차가워진 걸 보니 벌써 겨울이 가까워진 듯합니다. 모쪼록 건강 관리 잘하시길 바라며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선생님의 반가운 답장을 기다리며 살아가겠습니다.


2023년 10월 23일 월요일.

교사 권이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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