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이 형, 편지가 너무 늦었지요? 폭풍처럼 몰아치는 학교 업무에 치여 형에게 편지 보낼 시간도 내기 힘들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뻔뻔한 핑계 같지요? 맞아요, 그 말은 핑계라고 볼 수 있지요. 일단 미안해요 형.
그런데 절반 정도는 또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학교는, 너무 바쁩니다. 너무 바빠서 수업 준비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학교 밖 사람들이 보기에 뭐가 그리 바쁘냐고 하겠지요? 학교 상황을 모르니까요. 수업이 끝나면 남는 그 2시간 안에 몰려드는 행정 잡무를 끝내기조차 버거워 교실 정리와 아이들 평가 자료, 과제물 확인은 고사하고, 내일 수업 준비할 시간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다는 것을요. 언젠가 이 문제에 대해서도 형이랑 같이 얘기할 시간이 있겠지요?
형의 편지는 너무 반가웠습니다. 처음 대학을 들어와 방황했던 저에게 한 줄기 진한 빛을 주었던 사람이니까요. 저보다 9살이나 나이 많은 형에게서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그 안정감이라는 것은, 그저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나이 먹고도 철이 없는 사람, 고민 없이 살며 그저 시류에 휩쓸린 꼰대 같은 사람들도 부지기수니깐요. 형에게서 느꼈던 그 안정감은, ‘세상을 고민하며 살아온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녹색평론’을 성경처럼 읽어 오던 형의 생태주의적 감수성, 독단에 빠진 현 기독교인들과 달리 처음 본연의 ‘예수’를 닮고자 애쓰며 낮은 것들에 닿아 있는 형의 그 눈은 저에게 하나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 시선의 연장선으로 형의 눈은 대안교육으로 향해 저를 어느 한 대안학교 품앗이로 데려가기도 했지요. 그리고 생태적 삶을 꿈꾸었던 형은, 경기도 어느 한 도시에 버젓이 임용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충남 홍성으로 전출을 써 정말 그곳으로 내려가 ‘시골’에 집을 짓고 ‘시골’ 학교 교사가 되었지요. 이후 그곳 혁신학교에서 형은 형 표현대로 ‘뼈를 갈아’ 넣었던 것으로 알아요. 그런 형에게 ‘아동 학대’라니요. 형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그 먹먹함을, 그 외로움과 쓸쓸함을 감히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을까요.
형 말대로 대한민국 교육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언제고 살아있던 적이 있던가 싶습니다.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도 역시나 대한민국 교육은 죽어 있었으니까요. 과거의 교육은 과거의 교육대로 너무나 큰 문제가 있었지요. 권위주의적이고 국가주의 문화로 가득 찼던 시대상을 반영해 교실 또한 그러했으니까요. 그러나 그때는 오히려 뜻을 가진 교사들에게는 희망이 있었던 시대 같습니다. 민주화에 대한 희망이 교실까지 찾아와 큰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민주화는 되었건만, 그래서 교실에 국가주의 문화는 많이 사라졌건만(그 잔재들이 없다고 할 순 없겠지요. 예를 들어 ‘국기에 대한 경례’나 ‘차렷, 공수’ 같은 말들과 행동이 여전히 널리 쓰이니까요), 희망은 보이지 않으니깐요. 우리가 교육을 하려고 해도 그 어떠한 곳으로부터도 보호를 받지 못하니깐요. 낭떠러지에 서 있는 채 가까스로 교육을 끌어오고 있는 우리는 손가락 하나로만 톡 건드려도 저 깊은 절벽 밑으로 떨어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테니까요.
23년 7월 18일. 그때의 일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얼마든지 예쁘게 활짝 필 수 있는 한 송이 꽃이 짓이겨진 그때를요. 수업이 끝나고 하이클래스 공지에 박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글을 올리셨습니다. 그때까지 박 선생님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남아 있었을까요. 아니면 쓰면서 내 죽음을 예감했을까요.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겠지요. 박 선생님은 그전부터 살아도 살은 게 아닐 테니깐요.
분노가 치밉니다. 연필 사건의 학부모, 제대로 중재하지 못한 학교, ‘이주호’를 위시한 교육청과 교육부 관료들, 9월 4일에 보인 관리자들의 비겁한 태도들, 무엇보다 그저 ‘혐의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한 대한민국 경찰.
형은, 형이 직접 아동학대로 신고까지 당했기에 서이초 사건 이후 그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형이 그만둔대도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저는 형이 조금 더 힘을 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년간 자율연수 휴직을 냈다고 들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1년간 좀 쉬세요.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오셨습니다. 형의 상처를 보듬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만둘지 여부는 그다음에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기엔 형이 지금껏 쌓아온 경험과 능력이, 형이 품고 있는 힘이 너무 아깝습니다. 남은 아이들과 후배교사들을 위해 조금만 더 힘을 내주시길 바라지만, 이 역시 더 요구할 수 없는 일이지요. 형의 어떠한 선택도 존중하고 지지하며 응원합니다.
대신 제가 조금 더 힘을 내보겠습니다. 사실 저도 몇 년 전 한 아이와 부모 때문에 너무 괴롭고 힘들어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나름 부족했지만 아이들을 위해 애썼고 힘닿는 데까지 노력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한 사건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내가 과연 자격이 있을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지요. 다행히 이후 힘을 내어 지금은 또 그럭저럭 행복하게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사실 운입니다. 몇 년 전 만났던 그런 아이와 학부모를 또다시 만난다면 솔직히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감당할 자신이. 그렇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렵니다. 그동안 더 단단해지고, 이 땅의 교육이 다시 살아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노력해 볼까 합니다. 그 가는 길에 형과 편지를 나누는 일이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편지 주셔서 고맙습니다. 형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형의 다음 편지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