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보내주신 답장을 받고 저는 다시 태어나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적어도 노근 선생님께만은 제가 가치 있는 존재였다는 말씀에 얼마나 위안을 받았는지 몰라요. 이렇게 저는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살아갈 이유를 얻게 됩니다. 고마워요.
제가 2023년 10월 23일에 편지를 보내고 2024년 1월 7일에 선생님 답장을 받았으니 두 달이 훌쩍 지나 버렸습니다. 제 예상대로 선생님은 학년 말에 처리해야 할 온갖 행정 업무에 시달렸다고 하셨지요. 과도한 행정업무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이지 저는 2007년 첫 신규 발령을 받고 보냈던 한 학기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학교는 제가 상상했고, 교대에서 교육받았던 모습과 완벽하게 달랐으니까요.
첫 발령학교에서 두 달 정도는 일과 중(아이들이 하교하기 전)에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습니다. 물론 나이 서른에 다시 수능을 보고 교대에 들어가 새롭게 인생 2막을 시작했기에 잘해야만 한다는 긴장에 사로잡혔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수시로 모니터에 올라오는 각종 업무 관련 팝업 메시지에 응대하고,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사이에 수업을 진행하는 일이 처음엔 너무나도 버거웠습니다. 요즘은 이런 업무 전달 메시지를 수업 중에 함부로 보내지 못하는 분위기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교육청이나 일부 관리자들은 일과 중에 제출해야 할 공문에 관해 업무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만일 “점심시간에 밥 먹고 화장실에 가면 되지 않느냐?”라고 웃으며 물으신다면, 하루에도 서너 차례 발생하는 아이들 사이의 사소한 다툼이 언제 터질지 몰라 함부로 교실을 비울 수도 없었다면 학교 밖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설상가상으로 저는 9월 1일 자 중간 발령인데, 이전 담임교사가 대단히 엄격하게 학급운영을 해오셨습니다. 그러니 말랑말랑한 신규교사가(나이가 서른 중반이었다 해도) 새 담임교사로 들어왔으니 아이들의 상태가 오죽했겠습니까? 정말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학생들의 수업 방해 행동들이 터져 나왔죠. 하지만 첫 발령을 받았던 그때의 저는 그 옛날 교사들처럼 폭압적인 모습을 닮고 싶지 않아서 거의 모든 걸 다 들어주고 이해해주려고만 했었던, 지금 생각해도 참 순수했던 교사였지요. 그 당시 교과전담 교사였던 원로 선생님께서 혀를 끌끌 차시며 저에게 묘한 웃음을 흘리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급식 시간에 다툼이 발생한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갈등을 조정해 주느라 점심도 먹지 못했던 적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해도 초등교사가 아니면, 심지어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행정직 직원들조차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도 제가 이렇게 학교생활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으니까요. 교대를 졸업하고 발령받기 직전까지도 정말 몰랐으니까요.
이 지점에서 두 가지를 노근 선생님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교원양성기관의 교육 내용이 실질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젠 고리타분해진 교사의 과도한 행정 업무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이번 편지에서는 우선 초등 교원양성기관인 교육대학교의 실질적 체제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제 생각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2021년 연말에 교육부에서는 교원양성체제 발전방향에 관해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 혁신적 개혁과제들이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들려오는 내용이 없어 여전히 교육부는 늘 그랬듯 요란한 빈 수레일 뿐이라는 생각에 빠져듭니다.
그런데 그때 발표했던 내용 가운데 가장 반가웠던 내용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는 현행 4주의 교육실습 기간을 한 학기로 연장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4년제 학사과정을 5년제 석사과정으로 전환하여 연구 능력을 겸비한 교사를 양성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화장실 갈 시간조차도 찾기 버거웠던 초임교사 시절에 제 머릿속을 늘 맴돌았던 생각이 바로 '교생 기간의 연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교대에서는 교수법이나 교수학습방법론에 치중하여 교사 양성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생 실습 기간에 교대생들이 경험하는 것 역시도 수업을 계획하고, 진행한 후 수업 내용을 현직 교사들과 평가회를 통해 나누는 게 전부입니다. 드물게 현직 교사들 가운데 자신의 학급 경영 노하우나 현장 학교의 문제점에 대해서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현직 교사들은 교대생들의 교생 실습 기간이 빨리 끝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교생 실습 기간 동안 풀어졌던 아이들의 태도를 바로잡는다고 학급 분위기를 과도하게 긴장 상태로 되돌리는 현직 교사들도 많이 있지요.
때문에 현행 4주간의 교생 실습 기간은 학교의 진면목을 경험하기에는 너무나도 짧습니다. 지금의 4주 기간만으로는 학교가 교육 활동 이외의 것들로 교사들의 역량을 얼마나 과도하게 소진시키는지 알기 힘듭니다. 나아가 4주간의 교생 실습을 통해서 실제 학교 현장은 수업보다는 생활지도가 교사들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는 걸 알 수 없습니다. 서이초 사건의 표면적 원인도 학급 내 다툼이었던 이른바 ‘연필 사건’이었지요. 학교는 그야말로 거대한 정신병동과 같다고 표현하면 사람들이 저를 극단주의자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아이들 다툼을 조정하는 교사의 역할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해결하기 불가능한 부조리의 결정판이라고 말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교대에서는 학부모가 학교교육공동체의 협력적 관계라고 이야기할 뿐 감당하기 힘든 민원의 주체자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당연히 교생 실습 기간 동안에도 학부모 민원에 대응하는 현직 교사들의 애환을 전해 듣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앞으로 더 불길한 것은 서이초 사건 이후로 잠시 학부모 민원이 줄어드는가 싶었지만 실제로 큰 변화가 없다는 현장 교사들의 한결같은 증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한 학기가 아니라 3년 정도의 교대 교육을 거친 후 1년을 학교 현장에 투입되어 기간제 교사처럼 교실을 경험한 후 다시 교대로 복귀하여 2년 정도 더 연구과정을 거쳐서 정교사로 임용되는 방식을 생각했었습니다.
이렇게 젊은 교사들이 현장 경험을 가지고 다시 교대로 돌아가 연구한다면 학교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연구 과제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며, 이것은 자연스럽게 교육계의 근본적인 발전으로 연계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년간의 현장 경험을 거치면서 교사로서의 삶이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고 판단할지도 모를 교대생들에게는 새로운 진로를 개척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을 선사할 수도 있을 거라 여겼습니다. 교육 행정가로서의 연구 과정을 신설하고, 석사 과정을 마친 교대생들에게 교육 행정직으로 진로를 열어주는 방식이 가능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교육 현장을 전혀 알지 못하는 관료들이 교육정책을 만드는 오늘의 교육부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단초가 될 거라는 행복한 꿈도 꾸어봅니다.
또한 교육대학교에 재직 중인 교수들의 연구 주제 중심으로 현재 교육대학교 교육 내용이 구성되는 관례를 깨고 현장 중심으로, 현장 교사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영역에 관한 내용으로 교육대학교의 교육 내용이 재구성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학교현장과 교원양성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의 발전을 이끄는 선순환의 관계를 형성한다면 대한민국 학교에도 새로운 희망의 혈액이 공급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절망적인 현실 가운데에서도 한국 초등교육의 희망을 찾기 위해 겨울방학 동안 프랑스로 교육 탐방을 떠났다고 들었습니다. 프레네 교육으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교원양성체제와 현직 교원의 재교육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에 관해서도 자세히 듣고 다음 답장에 담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달콤한 방학입니다. 학교 밖 사람들은 “교사들은 방학이 있어 좋겠어? 일도 안 하는데 월급 주잖아!” 하면서 비꼬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우리 교사들에게 만일 방학이 없다면, 어디서 버틸 힘을 찾을 수 있을까요.
부디 선진국의 발전된 교육만 보시지 말고, 아름답고 찬란한 유럽 문화와 풍광도 가슴에 가득 담아 오시길 바랍니다. 하여 그 힘으로 또 다시 아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노래를 불러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