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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분가분 Aug 30. 2024

학교여 발산적 생태계를 구축하라

다양성은 '우리들의 학교'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카드


노근 선생님께


제가 지내고 있는 캐나다 오타와에도 완연한 여름이 찾아왔어요. 얼마 전에는 여기서도 한국에서 간혹 문제가 되곤 하는 게릴라성 폭우가 내리는 걸 보았답니다. 하교하는 아이를 마중 나가서 집으로 걸어오는 길이었어요. 조금씩 빗줄기가 내리치기 시작하더니 5분 사이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데, 순식간에 강물처럼 빗물이 도로에 차올랐죠. 그런데 신기한 장면을 목격했어요.


처음에 내리던 가는 빗줄기 사이로 한 흑인 청년이 흥겹게 춤을 추면서 걸어가는 거였습니다. 뭐랄까, 자신만의 세계에 온전히 몰입할 때 느낄 수 있는 행복이 가득한  모습에 저는 홀딱 반해버렸습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죠.


저렇게 타인의 시선에 제한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까? 아니, 우린 이미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왜 끊임없이 남의 욕망을 내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각자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도 전혀 문제가 없는데,


도대체 왜? 왜? 왜?




캐나다에서 저는 요즘 이렇게 다양성이라는 가치에 대해 흠뻑 매료되고 있어요. 더불어 우리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저마다의 개성이 살아나는 교실을 구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미래 교실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생명 다양성이라는 생태적 가치는 기후 위기에 빠진 지구의 종말론적 가늠자로서 의미할 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와 교실의 지속 가능성을 진단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요. 여기에서의 '생명'을 아이들이 저마다 지닌 고유한 생명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말이죠.




노근 선생님, 보내주신 답장을 읽어 내려가면서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사실은 제가 지난 편지에 적었던 교대생들의 이야기는 10년 전에도 선생님께 말씀드렸던 내용이었고, 그때도 선생님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지요. 그리고 제가 느꼈던 안타까움에 대해 깊이 공감하지 못해 미안하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이렇게 선생님과 저의 답답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고맙고 또 고마울 따름입니다. 만약 선생님 말씀대로 교대 시절에 선생님이 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다면, 저는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서 아마 교대를 끝까지 졸업하지 못하고 대안학교 교사로 빠져나갔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지금 역시도 저는 이렇게 선생님과 함께 나누는 서신을 통해서 학교를 떠나고 싶은 제 마음을 강하게 붙들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저의 생각에 대해 제기하는 반론은 제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들리지 않고, 새로운 관점으로의 사고 전환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되고 있어요. 차이와 다름을 통해 불안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다양성이라는 공존의 가치를 또다시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답장을 통해 비판과 옹호는 그야말로 깻잎 한 장 차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것은 우리가 지금 써 내려가고 있는 교사의 모습은 학교 바깥의 시선이 아니고, 현직 교사로서 같은 동료를 바라보는 시선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최첨단 개인주의적 윤리의식'을 가진 교대생들이라고 지난 편지에 썼지만, 교직에서 만난 초등 교사들만큼 깊은 배려심과 동료의식을 가진 직업인들을 보지 못했어요. 말씀하셨듯이 저는 교대 이전에 이미 다른 대학을 졸업했고 직장 생활도 했으며 저의 모든 친구들은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직업인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요. 가끔 시사 프로그램에서 방송되는 직장 내 괴롭힘 같은 사건들은 교직 현장에서 찾아보기가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대에서의 이해하기 힘들었던 기억은 솔직히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의 부탁이기에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더 떠올려보도록 할게요. 이것은 정말 어디에서도, 학교 밖 그 누구에게도 창피해서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했던 내용입니다.




이 사건도 역시 새내기 때 일입니다.


저도 시기를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선생님의 무딘 기억력을 무작정 섭섭해할 수만은 없겠네요.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니까요), 교대에 입학하고 아마도 1학기에 1~2학년 남학생들끼리 축구 시합을 한 번 했습니다. 그리고 해가 저물자 2학년 선배들은 전부 빠지고 1학년 남학생들만 운동장에 모아놓고 군대 제식 훈련하듯이 오와 열을 맞춰 세우는 거였어요.


누가 그랬을까요? 바로 군대를 다녀온 같은 과 복학생 선배(물론 저보다 한참 어린 동생이었지요)가 그랬습니다. 그 뒤에 일어났던 일들은 노근 선생님도 아마 희미하게나마 기억하리라 생각해요. 구체적으로 그 장면들을 묘사하고 싶지는 않아요. 솔직히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받은 가장 충격적인 사건 5개를 뽑으라고 했을 때 그 안에 들어갈 정도로 경악스러운 일이었거든요.



뭐, 그렇다고 대단한 일들은 아니었어요. 신병교육대 훈련소 조교로 군복무를 했던 저에게는 그냥 가벼운 유격훈련 코스프레 정도로 보였으니까요.



노근 선생님은 잘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부터 그 일이 일어날 걸 알고 있었어요. 당시 학과 대표였던 3학년 선배가 저처럼 사회생활을 하다 늦게 교대에 입학 한 장수생이어서 저에게는 그 얼토당토않은 모임(?)에 빠지라고 선처를 베풀듯이 먼저 이야기했거든요.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선생님, 제 성격 아시죠? 불같이 소리 지르면서 어떻게 어린아이들을 가르칠 선생님이 되겠다고 모인 대학교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 따져 물었죠? 학과 대표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교대의 전통이고 교수들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으니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하지만 저도 물러설 수 없었죠. 당시 같은 과에 재학 중인 군복학생들을 모두 불러 2시간 가까이 논쟁을 했습니다.


결국 저는 이번까지는 참고 넘어가겠다, 하지만 만일 내년에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말도 안 되는 교대의 폭력적 문화를 폭로할 것이다, 그리고 나도 내 어린 동생들인 동기들과 같이 그 모임에 참여하겠다, 그러니 반드시 이 전통을 끊겠다는 확답을 달라, 그렇게 해서 결국 우리들 다음 후배들부터는 그 전통이 사라졌었는데, 글쎄요, 우리가 졸업한 뒤에 또다시 부활했을까요?


어찌 됐든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선배들이 1학년 신입생들에게 헛웃음만 나오는 기합(솔직히 이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을 주는 장면은 사실 많은 함의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걸 교직 현장에 나와서야 깨달았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 옛날 폭력적인 교사들의 훈육방식이 직접적으로 아이들에게 모진 상처를 남겼다면, 교대에서부터 은밀하게 내려져오는 경직된 문화는 학교 현장의 교직문화를 비민주적으로 만드는 뿌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 서신교환의 첫 주제가 '교원양성기관', 교대의 혁신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17년 교직 경험 안에서 상하 위계에 의한 수직적 상명하복의 사례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먼저 가볍게 농담처럼 시작해 볼게요. 옛날에 모지역 모학교에서는 교장실에 결재받으러 간 교사가 교장실을 나갈 때는 조선시대 신하들처럼 뒷걸음질 치며 나가야 했다더라, 군대에 '충성 축구'가 있다면 초등학교에는 '충성 배구'가 있다더라,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분명히 초등학교 현장에서 있었던 일들이지요.




이런 비민주적 관계는 관리자와 교사들 사이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같은 평교사 안에서도 학교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해야 할 때 경력이 높은, 이른바 원로교사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는 어린 신규 교사의 진실된 열정보다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런데 이게 정말 신묘하고도 아리송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회의 절차를 거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견 굉장히 민주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니까 원로 교사나 부장 교사가 제시한 의견에 대해 다른 관점을 이야기하면 회의가 이상하게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다 끊기게 됩니다.


그리곤 다음 회의에서 경력 교사들의 의견이 자연스럽게 주류 의견으로 둔갑해 그들의 뜻대로 사안이 결정되는 경우가 정말 많았습니다.




아주 작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모처럼 학교 도서관을 리모델링하여 도서관 활용 수업을 많이 하기 위해 여러 의견들을 나누는 회의였지요. 한 신규교사가 도서관에 화이트보드가 하나 있으면 독서 전, 후 활동을 지도하는데 큰 도움이 되겠다고 의견을 냈어요. 당시 도서관 담당이었던 저는 신규 선생님께서 나름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하려는 모습이 느껴져서 당연히 화이트보드를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회의 시간에 부장교사가 화이트보드를 사지 말라는 겁니다. 저는 황당해서 옆 자리에 앉은 신규 선생님을 쳐다봤더니, "네, 그냥 안 하기로 했어요." 하면서 웃는 얼굴로 말하는 거였어요. 저는 느낌이 딱 왔어요. 아마도 경력이 많으신 어떤 선생님께서 자신의 지난 경험을 토대로 이렇게 주장하셨으리라 합리적 추론을 저는 해봅니다.(어디까지나 추론이니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도서관에 놓인 화이트보드는 처음에만 쓰다가 얼마 안 가서 결국 애물단지가 될 게 뻔하니, 리모델링해서 멋들어진 도서관의 미관을 해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만일 저에게 저런 말을 했으면 진짜 교육을 위해 필요한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으며 또 한바탕 논쟁을 벌였을 텐데, 그걸 알았는지 신규 선생님을 먼저 설득해 버렸으니 저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지요.




지난 편지에서 언급했던 읍내 큰 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신규교사들의 교직원 행사 참여율이 저조하니 남자 부장선생님들에게 신규들 군기 좀 잡으라고 말하는 원로교사를 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로 선생님이 바로 그 교대의 경악스러웠던 모임(?)을 말씀하시는 걸 듣고 저는 까무러칠 뻔했지요.


아하, 그 폭력적 교대 문화는 전국 교대의 공통된 전통이었구나! 왜냐하면 제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우리가 다니던 교대가 있는 지역이 아니고, 그 원로 선생님은 우리가 졸업한 교대 출신이 아니니까요.




또한 학교 현장과 지역 교육지원청 및 시도 교육청과의 관계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입만 아프겠지요.


저희 세대에게 장학사하면 이런 기억이 뚜렷이 남아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교육활동이 멈춰지고 전교생이 동시에 왁스를 바른 손걸레로 복도와 교실 마룻바닥을 빛이 나도록 닦습니다.


바로 교육청 장학사가 학교에 방문하는 날이지요.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세상에 이런 코미디가 또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다소 부드러운 방식과 명칭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장학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청의 학교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지요.


말로는 학교의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기관임을 드러내기 위해 '교육지원청'이라고 명칭도 바꿨지만 말입니다.


학교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공직 사회는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관리와 통제와 감시의 피라미드 구조를 교묘하게 강화하는 방식을 전혀 포기하지 않고 있어요.




아마 이러한 기억들 때문에 지난 편지에서 떠올렸던 드라마 DP 시즌1의 대사가 제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뀔 수 있잖아, 우리가 바꾸면 되잖아!"

저희 부대에 있는 수통 있잖습니까. 거기 뭐라고 적혀있는지 아십니까?

1953, 육이오 때 쓰던 수통도 안 바뀌는데 무슨…….”     


제가 군복무를 했던 1990년대 중반에도 훈련병 내무반에서는 정말 육이오 때 쓰던 수통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뉴 밀레니엄이라고 요란을 떨었던 21세기, 바로 그 새 천년으로 넘어간 지도 벌써 20년이 훨씬 지났고, 이전 세상과 질적으로 완벽하게 다른 인공지능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오늘입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그 사소한 수통 하나를 바꾸지 못하는 대한민국 군대의 모습 위로 '우리들의 학교'가 겹쳐 보이는 건 저의 지나친 과대망상일까요?




예전의 학교는 검증된 과거의 지식을 익혀 오늘의 세계를 존속시키는 수렴적 생태계의 핵심이었다면,

오늘의 학교는 변화될 미래의 가치를 찾아 오늘을 치열하게 혁신하는 발산적 생태계의 뿌리여야만 합니다. 




그래서 저는 부장 선생님들께 항상 이렇게 부탁합니다.


"제발 나 같이 경력 많은 교사들 의견을 먼저 듣지 말고,

새로움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신규 선생님들의 의견을 많이 들어주세요!"


그래야만 학교가 바뀔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 같은 경력 교사들은 그 작은 수통 하나를 바꾸려고 해도 별의별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다가 결국 바꾸지 말고 그대로 쓰자고 주장할 게 분명하니까요. 그 작은 변화에도 걱정과 불안함을 느끼는 우리들이니까요.


저는 다시 한번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춤추는 빗속의 청년'을 떠올립니다.


결국 사소한 변화와 혁신도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살아 숨 쉴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비록 설익어 보일지라도, 결과가 뻔하게 예상된다는 생각이 든다 할지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그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용기를 지지해야만 학교와 교실 안에 다양한 가치와 저마다의 생명력이 꽃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난 편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합리에 대해 학교의 허리를 담당하시는 30~40대 선생님들께서 함께 바꾸자고 목소리를 꾸준히 내셔야만 합니다.


개인의 내적인 문제가 아닌 개별 학교 시스템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다양한 교사들의 목소리가 일상적으로 터져 나와야만 합니다. 지금 선생님과 제가 이렇게 나누고 있는 서신교환처럼 말이죠.


비록 논쟁적인 주제여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말입니다.


이것은 거대한 교육 시스템의 혁신을 위해 활동하는 교원단체를 통한 집단적인 움직임을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각각의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는 소소한 불합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개별 교사들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결국 우리 개인들이 일상적 삶의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꿔야만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지구의 운명과 학교의 운명은 많이 닮아 있습니다)  별게 아닌 듯이 보이지만  결국 천리를 가려고 해도 그 사소한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면 안 되니까요. '우리들의 학교' 안에도 '육이오' 수통처럼 일상적으로 느끼는 불합리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잘못된 걸 알고도 그저 묵인하는 방조자의 모습으로는, 골치 아픈 문제에 휘말리지 말고 무난하게 근무만 하자는 보신주의로는 '우리들의 학교'가 지속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서이초 사건이 아주 분명하고도 절실하게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어요.




때문에 이제 막 40대에 접어 노근 선생님께서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진짜 '교사 비판'의 내용이 무엇인지 정말 정말 궁금합니다.

 

선생님의 답장을 기다리는 오늘과 내일은 잠든 저를 깨우는 새벽의 새소리와도 같습니다. 선생님의 존재가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모쪼록 건강 잘 챙기면서 남아 있는 1학기를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의미 있게 채워나가길 기도합니다.


2024. 6. 15. 토요일.

교사 권 이 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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