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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미 Nov 08. 2024

아파트



**아파트, 오랜만이다. 아파트라고 다 고층이 아니다. 밖거리 집에서 자란 나는 아파트라고 하면 넥타이를 매고 셔츠를 입은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살 거 같았다. 아니면 중형 세단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가족이나 털이 곱슬하고 눈물을 금방이라도 쏟아낼 것 같은 강아지를 키우는 노부부가 아파트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박 먹다 국물을 흘려도 개미가 일지 않는 곳, 빨래가 옥상 밧줄이 아니라 화초가 있는 베란다에 은은하게 널려 있어야 아파트라고 생각했다. 마루가 아닌 거실에는 푹신한 소파 한 개쯤은 있어야 하고,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어야 하는 그곳.  


커보니 알겠다.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이고급이다. 단독주택은 윗집 사람과 땅을 공유하지 않아도 된다. 2층도 내 것, 3층도 내 것이다. 다만 건물을 올리지 않을 뿐이다. 아이들이 쿵쿵 뛰어대도 문을 쾅 닫아도 눈치 보지 않는다. 새벽에 이웃집 사람의 소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화장실에서 다른 집의 저녁 메뉴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현관에 유모차, 자전거, 택배가 쌓여 있어도 민폐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아, 그러려면 단독주택에는 마당이 필수겠다.)


오랜만에 간 **아파트는 동료쌤의 퇴사로 이관받은 4학년 친구의 집이었다. **아파트는 10여 년 전 언니네 가족이 살았던 집이다. 그리고 결혼 전 내가 1년간 거주했던 집이기도 하다. **아파트는 방 2개라 어린 자녀 둘을 키우며 오갈 데 없는 여동생을 받아 줄 만한 공간이 안된다. 그러나 나는 염치 불고하고 방 하나를 차지했었다. 내가 살림 놓고 살아보니, 우리 언니는 위인이었다. 나는 동생이 힘들다고 해도 지금 우리 집 방 한 칸을 내어주지 못할 것 같다.


 나와 언니는 낮에 막걸리를 자주 마셨다. 먼저 떠나버린 가족을 추억하고 원망하며 황망한 시간을 보냈다. 막걸리를 먹고 있는 식당에서 세월호 소식을 처음 들었다. 나는 그 후로도 긴 시간 동안 우리들의 배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아파트는 지나가며 늘 봐왔지만 단지와 집 안으로 들어가 본 건 10여 년 만이다. 아이의 집은 방향이 180도 다를 뿐 구조는 예전 언니의 집과 같았다. 언니의 집이었으면 내가 사용했을 그 작은 방이 아이의 공부방이었다. 수업을 하는데 자꾸 천장을 훑어보고 방문 밖으로 보이는 거실에 눈이 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틀림없다. 죽을듯한 고통도 10년이면 흐릿해진다. 숨만 쉬어도 시간이 흐르면 다 살아지나 보다.

힘든 시간이 언제인지 모르게

10년 후의 나는,

아파트와 비슷한 집을 지키며

잘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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