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의 반란.
별별 세상이다. 사람들은 기발한 생각을 기막히게도 잘한다. 세상에. 축의금 전용 키오스크가 생겼단다. 키오스크에서 신랑 또는 신부를 선택하고 축의금을 기계 안에 넣으면 식권와 주차권이 발급된다. 성인 0명, 어린이 0명 인원을 체크하고, 본인의 소속과 신랑 또는 신부와의 관계를 입력하는 시스템이다.
이 기계는 신랑, 신부에게는 꿀템이다. 돈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을뿐더러, 돈을 받은 기계는 똑똑하게도 축의금 명단과 총금액을 엑셀 파일로 만들어낸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신혼 첫날밤에 지친 몸을 이끌고 봉투를 오픈하며 축의금을 정리하지 않았던가. 그런 시간이 이제는 없어지는 것이다. 결혼식이 끝남과 동시에 휴대폰으로 명단과 금액이 좌라락 정리되어 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신통방통 편리한 세상인가.
신랑, 신부에게는 장점이 많겠지만 하객의 입장은 어떨까?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키오스크 앞에서 욕을 할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내 뒤에 서 있는 사람은 내가 얼마를 내는지 뻔히 다 보일게 아닌가.
봉투에 마음을 담아 축하 한마디 건네는 과정도 생략될 것이다. 돈 봉투 오고 가는 정 대신 삭막함으로 채워질지도 모른다.
결혼식장에 가면 신랑, 신부는 바쁘고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으니 보통은 부신부나 부신랑을 찾기 마련이다.(제주도는 그렇다)
축의금을 받는 직원이나 지인이 프런트에 앉아 있어도 나는 그들에게 축의금을 내는 것이 조금 찜찜하다.(죄송합니다) 장부에 이름과 금액을 적기 때문이다. 번거로워도신랑 또는 신부의 가족을 찾아 직접 축의금을 전달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한 것이다. 그런데 축의금 키오스크라니.
친구의 아이가 이제 3학년이니 10년도 지난 일이겠다. 친구는 축의금 봉투를 정리하다 돈이 없는 봉투를 발견했다. 하지만 봉투에 이름이 적힌 이에게 봉투가 비어 있다고 말을 못 하겠더란다. 혹여라도 분명히 넣었다며 잘 찾아보라고 돈의 행방을 찾다가 괜히 얼굴 붉힐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키오스크를 사용하면 이런 일들은 확실히 사라지긴 하겠다.
분명히 장점이 많은 키오스크지만 결혼식장에서 이미 쓰이기 시작했다는 말은 조만간 상용화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장례식장에도 키오스크가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닐런지.
이재모 피자가게와 연삼로 파리바게뜨를 자주 가는데 그곳에는 서빙 로봇이 있다. 아이들은 서빙 로봇을 보면 신기해하고 즐거워한다. 2살인 둘째는 서빙 로봇이 지나갈 때마다 손을 흔든다. 방긋 웃으며 로봇에게 인사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며 기분이 이상했다. 아이들은 로봇과도 감정을 공유하게 될까? 음식점에서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이런 인사는 이제 그땐 그랬지 식의 자투리 뉴스나 역사 만화 말풍선에나 나오는 대화가 될지도 모른다.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은 두렵고 궁금하다. 앞선 세대를 살아간 어른들도 우리를 보고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
기계가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니 살기에는 편리해졌지만, 오고 가는 정은 점차 사라져 삭막한 세상이 오는구나 생각이 든다.
기계를 사용하면서도
우리의 ‘정’은 잃지 않길 바란다.
정이 없다면
세상은 너무 딱딱하고 쓸쓸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