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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미 Sep 15. 2024

반반 방학

반반은 치킨에만 있는게 아니다.



자라면 잘 자는데, 깊게 잠들지 못한다. 2~3시쯤 잠에 들면 적어도 한 두 번은 깨어난다. 시원이가 뒤척이면 나도 함께 뒤척이고, 시원이가 자세를 바꾸면 나도 자세를 바꾼다. 아마 낮에 마시는 커피가 영향을 주는 듯하다. 늦게 자니 오전에는 활동량을 줄여야 한다. 쪽잠도 필수다.


 “미미야, 나 간다.”


남편의 부지런한 소리가 들린다. 눈을 뜨지 못하는 나는 힘을 짜내며 “으..응...” 모깃소리 대답으로 배웅을 한다. 남편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 뒤에 말들은 재미가 없을지라도 미미야 라고 부를 때 나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유준이 엄마, 시원이 엄마, 여보, 당신 이런 말보다 내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눈을 떴지만 시원이가 자고 있으니 아직은 달콤한 아침이다. 잠에서 깼지만 이불 밖을 나오지 않는다. 유준이는 일어나서 컴퓨터 교실에 갈 준비를 한다. 낑낑대며 딱 맞는 옷에 다리를 욱여넣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히 한 사이즈 크게 주문했는데, 너무 타이트한 옷이 왔다. 평소 입는 츄리닝 스타일이 아니고, 좀 갖춰 입는 듯한 카라 남방과 반바지 세트다. 패션쇼하는 기분이 든다며 옷에 들어가는 유준이다.


 오늘은 드디어 시원이네 등원 날이다. 길~고 긴 일주일의 방학이 끝이 났다. 4~5살까지 보육시설에 안 맡기고 집에서 케어하는 엄마들도 있을 터인데, 이 일주일 방학에 나는 몸이 헐어버린 기분이다. 지금 내 몸 상태는 마치 바짝 말린 한치와도 같다.



 컴퓨터 방과후라고 해도 9시에 가면 9시 40분에 귀가한다. 유준이가 귀가하자 시원이를 챙겨 차에 태운다. 오랜만의 등원에 어색해할 만도 한데, 착한 시원이는 미어캣 같은 고갯짓을 하면서도 선생님 품에 안긴다.


 집에 오니 천국이다. 비록 어제 건조기에서 나온 빨래는 쌓여있고, 음식물 쓰레기도 아직 씽크대에 있지만 이제 나의 방학이 시작되는 기분이다. 유준이만 키울 때는 몰랐던 새로운 감정들을 느끼고 있다. 둘 중에 한 명만 없어도 참, 편하다.


 유준이도 왠지 신나는 표정이다. 엄마를 부르면 바로 응답을 해주니, 괜히 내 옆에 와서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


“엄마, 시원이 없으니까 편하지?”


정곡을 찌르는 유준이의 말에 마음이 뜨끔하다. 내 표정을 읽었나 보다.


지난 번 공부방에 스터디 선생님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었다. 그때 음식들을 포장해서 대접을 했는데, 남은 피자가 식었는데도 유준이가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언제 한번 그 가게의 피자가 뜨거울 때 유준이에게 맛을 보여줘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유준아, 엄마랑 점심에 피자 먹으러 갈까?”


 유준이는 시원이가 없으니 엄마랑 피자도 먹으러 간다며 좋아서 방방 뛴다. 아들과 단둘이 이런 레스토랑은 처음이다. 보통 친구들 만날 때나 가는 모던한 식당이다. 토마토 치즈 파스타와 마르게리따 피자를 주문한다.


 한낮에 여유롭게 유준이와 단둘이 외식을 하니 정말 데이트하는 기분이다. 나는 피자보다 파스타가 입맛 저격이었고, 유준이는 피자가 꿀맛이란다.


 “방학하니까 점심 메뉴도 내가 정할 수 있으니까 좋아. 급식 메뉴는 우리가 정할 수 없잖아.”


피자가 남아 아빠 몫으로 포장을 해둔다. 이제 오늘부터는 진정한 유준이의 방학이다. 낮 시간에는 동생도 없으니 방해할 자도 없다. 여름방학이 끝날 때 즈음 유준이도 조금 더 커 있겠지. 엄마는 반반 방학이지만, 이런 시간이 우리에게는 더없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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