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ll girl
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한가지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건 바로 질병으로 인해 남들에 비해 큰 신장을 가졌다는 것이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 "키가 정말 크시네요! 키가 몇이세요?"라고 묻는다. 이 말을 많이 들으면 하루에 다섯 번 이상 들었을 정도다. 어릴 때부터 나는 또래보다 키가 컸다. 학급에서 남녀 통틀어 키가 가장 커서 반에서 줄을 서면 항상 맨 뒤에 섰고 학예회를 할 때면 유난히 큰 키를 가진 나와 키가 작은 친구들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 나는 항상 가운데 또는 맨 끝에 자리했다.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향인데 어딜 가도 큰 키로 인해 눈에 띄었고, 학창 시절 시각장애로 인해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야 했던 나는 큰 키로 인해 뒷자리에 앉은 친구들의 시야를 가릴까 봐 늘 움츠린 자세로 수업을 들었었다. 중·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여행을 가는 날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나보다 키가 작은 남자애들 옆에 서면, 옆에 서지 말라며 눈치와 구박을 받았었다. 그럴 때면 눈치를 준 친구가 너무나 얄미워서 더욱 뻔뻔하게 붙어 서서 까치발을 들고 약 올리려 했던 것 같다.
최근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서 나영석 PD님과 랩퍼 이영지씨가 영지씨의 신곡 'Small girl' 뮤직비디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뮤비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귀여워 보이고 싶은 큰 키를 가진 여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옆에 나타난 작고 귀여운 여자를 볼수록 자존감이 낮아져 스스로가 점점 더 크게 느껴지는 듯한 느낌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나 또한, 연애를 하면서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어서 영지씨의 'small girl'을 들으며 큰 공감이 됐다. 가끔 주변에서 "oo씨는 키가 커서, 남자 만나려면 힘들겠어요."라는 말을 듣곤 한다. 이성을 볼 때 누군가는 신장이 중요할 수 있겠지만 나는 신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실제로 대부분 나보다 키가 작은 이성을 만났었는데 항상 누군가, 나에게는 “너보다 작은 남자를 만나네?”라고 하거나 남자친구에게는 “너보다 큰 여자를 만나네?”라는 말을 했었다. 키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그럴까? 싶었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알 수 없는 속상한 감정이 들었다. 그 당시 남자친구가 내 키에 대해 전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었음에도 나는 영지씨의 'Small girl' 뮤비에 나오는 영지씨의 모습처럼 스스로가 더욱 거대하게 느껴졌었나 보다.
어느 순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게 나 자신을 갉아먹는다고 느낀 이후로 키가 큰 나를 더욱 사랑해 주려고 노력했다. 키가 커서 좋은 점도 많다. 누군가 높은 곳에 올려진 물건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내가 쉽게 꺼내 줄 수 있으며, 키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이성을 만날 수도 있다. 또한 나와 비슷한 저시력 시각장애 친구들과 약속이 있는 날이면 친구들은 사람들 틈으로 우뚝 서 있는 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내 키를 줄일 수는 없으니, 타인을 의식하기보다 나의 큰 기에 대한 장점을 생각하는 게 속이 편한 것 같다. 이런 내게 한 가지 작은 꿈이 있다면 언젠가 서장훈, 김연경 선수 사이에 서서 180이 넘는 나도 한 번쯤은 Small girl이 되어 보고 싶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