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나물 Jul 08. 2024

희미하게라도 볼 수 있다는 것

나의 소원

  나는 지인들로부터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만약에 눈이 잘 보인다면 하고 싶은 게 있어?” 내가 눈이 잘 보인다면?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는 삶은 어떤 삶일까?… 멋진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종이책을 멀리서 본다거나 답답해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서 근교로 드라이브를 가는 것. 이 두 가지는 내 꿈이다. 그냥 꿈.


  한때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잘 보이는 일상’이 너무나 부러웠던 적이 있다. 내 삶은 내가 바라는 ‘잘 보이는 일상’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는 메뉴판 글씨가 보이지 않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글씨를 확대해 본 뒤 메뉴를 고르고 영화관에서 예상치 못했던 자막이 나올 때면 외국인이 지나갈 때까지 스크린을 멍하니 보고만 있다. 또 카페에서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착용한 뒤 책에 코를 박고 독서를 하고 있으면 여기가 분위기 좋은 카페인지 집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눈이 침침해서 잠시 책을 내려놓고 옆 테이블에 앉아 내 꿈과 같이 멋들어지게 독서를 즐기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괜히 부러워서 자세를 고치고 앉아 책이 보이는 척 흉내 내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땐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머쓱해 웃음이 난다.



  나는 올해 1월 왼쪽 눈 절반이 보이지 않게 되어 안과를 찾았었다. 검사를 받는데 평소와 다르게 검사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내 눈을 확인하고 계셨다. 모든 검사가 끝나고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심각한 목소리로 내게 망막박리가 생겼고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실명한다고 말씀하셨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작년 같은 눈에 수정체가 탈구 돼서 수술받은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생겼다. 하필 내가 희미하게 글씨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눈에 망막박리라니… 주변 시각장애 지인 중 망막박리로 인해 실명한 친구들이 많아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수술 예약을 위해 병원에 앉아 어머니를 기다리는데, 두려움에 눈물이 흘렀다. 20대 초반부터 눈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겨 수정체 및 백내장 수술을 몇 차례 받았지만 이렇게 무서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수술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앞으로 글씨를 보지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평생 그릴 수 없게 될까 봐 무서웠다.

     

  수술로 내 왼쪽 눈에는 망막을 붙이기 위한 가스가 채워졌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숙제는 일주일 동안 밥 먹고 화장실을 갈 때 빼고 모든 시간을 엎드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절대 실명하고 싶지 않아 꼬박 일주일을 열심히 엎드려 지냈다. 엎드려 지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피부는 뒤집히고 무릎이 다 쓸려 상처가 났다. 이때 인간에게 왜 등이 있고 엉덩이가 있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하게 누워있던 시간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일주일 후 망막은 예쁘게 잘 붙어 나는 다시 희미하게라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왼쪽 눈에 가스가 빠질 때까지 두 달이 걸려 그 시간 동안 보행마저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 지금은 다시 예전만큼 볼 수 있어 행복하다.

      

  눈에 가스가 채워져 있는 동안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내 루머가 하나 생겼다. “oo이 가스 때문에 당분간 외출이 어렵대”라는 말을 다른 친구가 내 복부에 가스가 찬 걸로 오해해서 복부에 가스 찬 사람이 되어 버렸다…내 이미지(눈물)

      



  수술 후 이제는 예전처럼 시력에 대해 많은 것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그냥 앞으로도 지금처럼 희미하게라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볼 수 있을 때 더 많은 것과 더 많은 세상을 만나보고 경험해 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