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나물 Jul 15. 2024

내가 갈 수 있는 길

무섭고 두렵지만 '일단 해보자!'는 마음

  장애를 갖고 살다 보면 장애로 인한 제약으로 어쩔 수 없이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지만 분명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장애에 대한 타인의 지나친 걱정 또는 장애인은 어떠한 일을 수행할 수 없을 거라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제지받아, 하지 못하게 되는 일들도 가끔 생기곤 한다. 타인에 의한 것뿐만 아니라 장애가 있는 당사자가 두려움으로 인해, 해보지도 않고 스스로 할 수 없을 거라고 단정 짓거나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경우 어떠한 일을 수행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장애를 갖고 살아오면서 느낀 건 위와 같은 상황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단지 장애인의 경우 가지고 있는 장애에 따라 조금 더 제약이 있을 뿐이고 비장애인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뿐이다.




  시각장애 특수학교에 다닐 때 친한 전맹 친구가 보행 문제로 어머니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어머니께서는 혼자 밖에 다니면 위험할 수도 있고 중도 실명인 친구가 흰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친구의 독립 보행을 반대하셨었다. 자녀의 중도 실명으로 누구보다 마음이 아프고 갑작스럽게 자녀의 장애를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에 있는 친구 어머니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나는 친구가 어머니와의 갈등에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보행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해서 친구를 응원했었다. 나중에는 어머니께서도 친구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독립 보행을 응원해 주셔서 친구는 스스로 갈 수 있는 길이 많아졌다고 했다. 가끔 지하철을 이용할 때 흰 지팡이를 사용해 독립 보행을 하는 시각장애인을 만나면 나는 그 친구가 떠오른다.

      

  지하철에서 종종 흰 지팡이와 바구니를 들고 돈을 구걸하는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 분들로 인해 나의 시각장애 친구 중 한 명은 황당한 일을 겪었었다. 지하철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안쓰러운 눈빛으로 친구의 무릎에 돈을 올려놓고 가신 거다.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있는 친구인데 그 순간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묘했다고 한다. 소문으로는 지하철에서 흰 지팡이를 들고 구걸하는 분들이 시각장애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데 사실이 어떻든 간에 그로 인해 더 이상 흰 지팡이와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안 좋게 바뀌지 않길 바랄 뿐이다. 시각장애인들에게 흰 지팡이는 동정의 상징이 아닌 자립과 성취의 상징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할 수 있지만, 전혀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 일을 처음 시작할 때면 내 장애가 벽이 될까 봐 늘 걱정이 앞서곤 한다. 하지만 장애의 유무를 떠나 누구에게나 처음은 무섭고 두렵다. 그래서 나는 ‘일단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내가 해보지 못한 새로운 일에 부딪혀 보며 경험치를 쌓아가고 있다. 해본 것과 해보지 않은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 내가 갈 수 있는 길도 더욱 많아지지 않을까?

이전 06화 희미하게라도 볼 수 있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