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희귀질환으로 인해 정기적인 검사가 필요해서 매년 심장내과를 다니고 있다. 내 나이가 20대 후반에 들어서며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는 최근 이전까지 말씀하지 않으셨던 ‘임신’에 대한 얘기를 꺼내셨다.
“결혼, 했어요?” / “아니요”
“난 oo씨가 아기를 안 낳았으면, 좋겠어요” / “하하..”
“혹시라도 결혼해서 아기를 가질 거라면 약도 끊어야 하고 꼭 계획해서 가져야 해요”/ “네”
의사 선생님께서 어떤 생각으로 나에게 아기를 낳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건 내가 가진 질병이 유전병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들어가 확인해 본 결과 내 질병은 70~80%의 유전 확률을 갖고 있다고 나온다. 고등학생 때 봤던 건 60%였던 것 같은데 아무튼 상당히 높은 유전 확률인 것은 분명하다. 내 나이가 결혼 적령기에 다가갈수록 나 또한 임신과 출산에 대해 조금씩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한 선생님께서는 나를 불러다 “나중에 시집가면 절대 애 낳지 마. 장애를 물려주는 건 죄야”라고 말씀하셨었다. 기분 나쁜 말투가 아닌 사뭇 진지하게 말씀하셨고 그 말의 의미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더 이상 아픈 아이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말씀을 하셨을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죄’라는 말이 내 기분을 좋지 않게 만들었다. 졸업식을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하며 웃으면서 넘겼지만, 한편으로는 그럼 우리 어머니가 죄인이라는 건가? 라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세상에 내 자식이 건강하게 태어나지 않길 바라는 부모는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그건 우리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유전으로 장애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의 장애로 어머니를 원망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서 남부럽지 않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시려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오신 어머니께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그 누구도 장애가 있는 나를 낳으신 우리 어머니를 죄인이라 말할 수 없다. 가끔 내가 질병으로 인해 아프거나 눈에 문제가 생겨서 수술을 받을 때 어머니께서는 딸내미를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했다며 자책하시지만 나는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싶다. 엄마는 전혀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실제 내 주변에는 장애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님들이 몇몇 있다. 그중에는 비장애인인 부모도 있으며 장애가 있는 부모도 있다. 내가 지켜본 그들은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와 함께 부모로서 성장해 나가고 있다. 그들은 누구보다 좋은 부모이다.
나는 아직 미혼이고 결혼한 내 미래에 아이가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다. 솔직히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내 질환이 아이에게 유전이 될까 두려운 마음도 있다. 하지만, 만약에 내게 기적처럼 소중한 아이가 찾아온다면 아이가 어떤 모습이건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고 존중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