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콩나물 Jun 17. 2024

나는 특수학교를 선택했다.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한 노력도 후회도 모두 나의 몫이다.

  나는 특수학교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일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과 가까운 일반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시각장애로 인해 보는 것이 조금 불편했지만 노력하면 따라갈 수 있었던 초등학교 수업과는 달리 중학교 수업은 만만치가 않았다. 선생님께서 칠판에 판서한 내용을 짝꿍이 불러주면 내가 노트에 다 적기도 전에 이미 다른 내용으로 넘어가 버리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렇게 한 번씩 놓친 수업 내용은 점차 눈덩이처럼 쌓여 나와 친구들의 성적 격차는 걷잡을 수 없이 벌어졌다. 우리 집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한 번도 학원에 보내달라고 말한 적이 없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어머니께 학원에 보내달라고 떼를 썼던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어머니께서는 “우리 딸이나 엄마처럼 눈이 불편한 친구들이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있대”라고 하시며 견학 삼아 나를 시각장애 특수학교에 데리고 가셨다. 알고 보니 내가 시력으로 인해 성적이 떨어져 속상해하는 게 마음에 걸려 이리저리 방법을 찾으러 다니셨던 거였다. 어머니와 함께 특수학교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학교를 천천히 둘러본 뒤 교무실에 앉아 초코우유를 마시며 입학과 관련된 상담을 받았다. 이곳에 입학하면 처참한 내 성적은 오를 수 있겠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머니께서 “엄마는 특수학교에 입학하라고 강요하지 않을게. 우리 딸이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면 얘기해 줘”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중학교 1학년 2학기부터 특수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특수학교에서 시각장애가 있는 학생들의 특성에 맞춰진 수업을 받으며 내 시험지에 멈출 줄 모르고 내리던 소나기는 그쳤다.



     

  시각장애 특수학교에 다니며 나와 같은 시각 친구들을 만나 재미있는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시각장애도 각 질환에 따라 저마다 특성이 달라서 해가 쨍쨍한 날에 친구들과 번화가에 놀러 가면 무홍채증이 있는 친구는 눈이 부셔서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험악한 표정으로 걸어가는데 야맹증으로 빛이 있어야 잘 보이는 친구는 너무 잘 보인다며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상황에 웃음이 터졌었다. 또 전맹, 저시력 친구들이 함께 모여 노래방에 가면 모니터 화면 앞에 저시력 친구들이 얼굴을 붙이고 서서 전맹 친구들이 혹여 가사를 놓칠까 후다닥 불러주기도 했다. 어느 날은 시각 친구들과 놀이동산에 있는 귀신의 집에 갔는데 앞이 너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서로 눈에 뵈는 게 없어서 무섭지도 않았다며 어이가 없어 귀신의 집 앞에서 한참을 키득거리고 있었다. 가끔 특수학교에 전학을 가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상상해 볼 때가 있는데 그런 내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나는 그곳에서 좋은 친구들과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고 그동안 내가 하지 못했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나에게 특수학교 전학을 강요하지 않고 내가 나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셔서 나를 위한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선택해야 할 많은 순간 앞에 놓여 어떤 선택을 할 때면 내가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되었다. 선택도 그에 대한 노력이나 후회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어른으로 키워주신 어머니께 무척 감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