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로 일상은 조금 불편하지만, 인생은 더욱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내 눈은 가족이나 친구의 얼굴, 주변 사물을 볼 때면 초점이 나가서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고장 난 카메라 같았다. 눈을 통해 어떤 대상을 보려면 눈과 대상의 거리가 1cm 정도로 가까워야만 했다.
어릴 때부터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처럼 익숙한 사람들의 경우 길에서 만나면 형태나 걸음걸이를 통해 알아보고 인사할 수 있었지만, 교류가 적은 사람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어른을 보고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며 내 시력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기도 했다. 너무나 억울했다. 나는 예전에 골목에서 마주친 변태가 아랫도리를 입지 않은 채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어도, 내 눈엔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사람으로 보여서 저 사람이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인지 파악하기 위해 멀뚱멀뚱 보고 있었을 만큼 시력이 좋지 않은데 말이다. (당시 옆에 있던 친구가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쳐다만 보고 있던 내 팔을 잡아끌고 전력으로 도망치며 말해줘서 난 그놈이 변태란 것을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수업 시간에는 교과서를 보기 위해 책상에 엎드린 자세로 종이에 코를 대고 나름대로 수업을 따라가려 애를 쓰고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가 자는 줄 알고 혼을 내셨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짝꿍의 해명(?)으로 사실을 알게 된 선생님께서는 내게 무척이나 미안해하셨다. 이와 반대로 어떤 날에는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열심히 공부한다며 칭찬을 받기도 했다. 당황스러웠다. 이게 무슨 상황이람? 그 와중에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었던 것을, 졸고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가 꿀밤을 한 대 맞았던 웃픈(웃기고 슬픈)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께서도 나만큼이나 무척 당황스러우셨을 것 같다.
시각장애로 인해 보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눈으로 보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그림이다. 내가 그림을 얼마나 좋아했냐면 초등학생 때 그림 그리는 것에 취미가 있어, 집 안에 있는 모든 종이란 종이에는 죄다 그림을 그려 놓아 어머니께서 난감해하실 정도였다. 종이와 연필을 얼굴 가까이에 대고 오랜 시간 동안 엎드려서 그림을 그렸으니, 연필심이 번져 얼굴은 늘 꼬질꼬질한 모습이었다. 그런 얼굴을 하고서 열심히 그린 그림을 펄럭거리며 일을 마치고 집에 오신 어머니께 달려가 보여드렸을 때 어머니는 잘 그렸다며 항상 내게 칭찬을 해주셨다. 성인이 되어 어머니와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누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벽지에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하셨다.
나는 특수학교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초등학교를 시각장애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서 다녔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초등학교 때 나의 담임 선생님들께서는 내가 시각장애로 인해 보는 것이 느려 수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학교에 남아, 내용을 끝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개별적으로 지도해주셨다. 5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나를 위해 큰 글자로 인쇄된 확대 교과서를 구해 주시기도 했다. 나와 짝꿍이 된 친구들은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께서 칠판에 판서한 내용을 보지 못할 때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내 귓가에 소곤소곤 설명해 주었으며 나와 친한 친구들은 나에게 장애인이라며 놀려대던 몇몇 아이에게 나를 대신해 사과하라며 큰 소리를 내주기도 했다. 이렇게 감사한 사람들로 인해 초등학교 6년 내내 나는 장애로 인해 차별을 받거나 소외감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글을 빌려 그 시절 도움을 주신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