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콩나물입니다.
저시력 시각장애인, 희귀 난치성 질환, 어린 시절부터 20살까지 이어진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가정폭력. 이것은 나의 성장 과정에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큰 3가지 요소다. 분명 내가 가진 질병과 아픔은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단 한 번도 내 행복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무슨 여자애가 이렇게 키가 커?” 학창 시절 이 말은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유년 시절부터 나는 또래에 비해 키가 큰 편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3년에 키가 30cm가 자라서 나를 오랜만에 보는 친적이나 부모님의 지인들은 무슨 애가 볼 때마다 콩나물 자라듯이 키가 큰다며 말씀하시곤 하셨다. 초등학교 6년 내내 반에서도 내 키는 큰 편이라 줄을 서면 항상 맨 뒤에 서곤 했다. 그와는 반대로 눈이 좋지 않으니 수업 시간에는 항상 맨 앞자리에 배치되어 내 몸은 키가 작은 학생들의 시야를 가려 미안함에 나의 어깨는 수업 시간 내내 자연스럽게 말려 있었다.
“우와 oo이 너 안경 엄청 두껍다!”, “안경 쓰면 눈이 완전 크게 보여!”, “나도 써볼래!” 쉬는 시간에 반 친구들은 내 돋보기 안경을 서로 착용해 보겠다고 앞다투어 얘기했으며 몇몇 친구들은 가까이에 있는 사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내 시력을 본인들이 측정해 주겠다는 듯이 자신들의 손가락 두 개를 펴고 마구 흔들며 몇 개로 보이는지 확인하곤 했다. 반에서 몇몇 짓궂은 아이들은 나를 ‘장애인’이라며 놀려댔다. 초등학생 때까지 ‘장애’라는 말이 유난히 아프게 들려 놀림을 당한 날에는 눈물을 한 바가지 쏟으며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왜 이렇게 키가 클까?’, ‘내 눈은 왜 이렇게 잘 보이지 않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키는 그냥 남들에 비해 큰가 보다 생각했고 눈은 어머니께서 눈이 좋지 않으셔서 단순히 유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키와 눈에 대한 비밀이 중학교 때 보건 선생님에 의해 밝혀졌다. “oo이는 마르판 증후군의 특징이 있는 것 같은데 한 번 검사를 받아 보는 게 어떻겠니?”라는 보건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팡..? 무슨 마법사 이름 같은 병이 나한테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검사 결과 내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마르판 증후군(말판, 마르팡, 마르판 등으로 불림)이 맞았다. 나와 특징이 비슷한 어머니 또한 마르판 증후군 진단을 받으셨다. 그럴 수밖에 이 병은 유전병이니..
마르판 증후군 진단을 받고 내 인생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원래부터 키가 크고 눈이 잘 보이지 않았으니까. 여기서 추가된 것이 있다면 마르판 증후군의 특징인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평생 약을 복용 해야 한다는 것과 대동맥이 무사히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매년 병원에서 CT 촬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건 선생님께서는 희귀병 진단을 받고 내가 충격을 받았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덤덤한 내 모습에 당황했다고 하셨다.
청소년기에 들어가면서 눈의 불편함이나 신체적 특징, 또 그로 인해 생기는 남들의 시선은 나에게 큰 아픔이 되지 않았다. 집에서 일어나는 아버지에 의한 사건 사고들로 눈물 흘렸던 날들에 비하면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분명 행복했다. 매일 아프고 슬픈 날들이 지속되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나를 성장시켜준 소중한 인연들과 경험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글을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