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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크로드 Feb 27. 2024

소나기의 훼방이 약간은 기대되는 날에 도쿄의 미술관

네즈 미술관에서 아침 산책 그리고 질서 있는 컷


약간의 촉촉한 비를 볼에, 그리고 깊숙히 들어오는 흙냄새를 맞고 싶은 그런 날, 운치를 한껏 더 느끼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차분하고 편안한 태도로 자연을 대하며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소나기의 훼방이 약간은 기대하게 되는 그런 날, 그런 날이었다.


숙소에서 역까지 가는 길이다. 하루만에 이름이 익숙해졌다. 아카바네바시역이다. 그 방향으로 향하는 길은 싱그러웠다.





네즈 미술관(根津美術館)


네즈미술관

6 Chome-5-1 Minamiaoyama, Minato City, Tokyo 107-0062 일본


미술관은 월요일에 휴업이고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아침 산책
그리고 여유있는 횡단보도

도쿄 미나토구 미나미아오야마에 있는 시립 미술관인 네즈 미술관의 입구까지, 아담하면서도 품위 있고 당당한 듯한 건물들을 지나갔다. 이 도쿄의 길은 수많은 건축물들을 모아놓은 거리의 뮤지엄 같은 느낌이었다. 신비로운 동심의 놀이터랄까? 살아있는 거리의 뮤지엄 제1관을 지나고, 네즈 미술관 2관으로 가는 것 같았다. 미술관 숲속의 산책을 위한 준비운동 시간이 꽤나 근사했다고 본다.


역에서부터 직진하면 금방 도착할 거리이지만, 앞뒤 양옆을 둘러보느라 10분 정도 걸었던 것 같다. 이제 미술관 바로 앞에 신호등이 보인다. 신호등에 불이 안 들어온다. 여유 있는 횡단보도이다.






그린 벨벳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아름다움은 마치 하나의 흐르는 멜로디처럼 우리를 사로잡았다. 조화로운 그린 벨벳의 색채, 깔끔한 공간 구성, 정교한 디테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전통적인 예술과 근대 일본 건축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1945년 세계 2차대전으로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공간인 만큼, 활기찬 분위기보다는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는 힐링 공간이지만 아픔을 기억해내기에는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이 무척이나 컸다.




둘째 날 아침 여유로운 신주쿠 교엔의 산책에 이어, 셋째 날 이른 아침 기분 좋은 산책이었다. 이 미술관은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조식으로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한 후, 정신을 맑게 하는 공기로 몸을 정화하고, 심호흡을 하며 서로에게  밝은 기운을 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미술관 입장




입구도 혼잡하지 않았다. 입장권을 구입했다. 온라인으로 예약 시, 100엔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우리는 입장권 정보를 검색하지 않고 바로 출동하였기 때문에, 일반 성인 금액 (2인) 2800엔을 지불하였다.







빛과 그림자의 이야기, 그리고 금속의 노래

1층 전시장은 마치 광활한 갤러리 같았다. 다양한 동양 고미술품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다. 특히 금속 공예품들은 작은 손짓과 놀라운 정교함으로 인간 창조력의 경이로움을 보여주었다.

입구 홀 정면에 중국 북제의 여래 입상과 간다라 시대의 미를 보살 입상이 있는데,  관심을 줄 새도 없이 정원으로 시선이 갔다. 전시관 내부에는 다양한 동양 고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사진촬영이 불가하였다.

추천 미술관이라서, 흘러가는 대로 선택한 이 장소. 관심 없는 분야라는 것을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이 공간에서, 오히려 예상치 못했던 감각을 깨우게 되었다.



통유리창은 바로  2009년에 개관한 재건 건조물의 가치를 한껏 올려주고 있다. 구마 겐고(隈 研吾)라는 건축가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전통적인 예술에서 근대 일본 건축과 정원까지 탁월한 조화를 이루어준 것 같다. 그는 이 뮤지엄의 재건을 위해, 철도 재벌이자 명문가였던


네즈 가이치로가 수집한 소장품 전체를 이해해야 했을 것이고,  

자신의 건축 정신 또한 심어야 했을 것이며,  

역사의 훼손이 아닌 현재와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해야 했을 것이므로,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이루어진 융합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잠시 질서있는 사진 몇 컷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물함의 모습을 담아보았다. 나에게 사물함조차도 예술작품으로 느껴진 적이 있었던지?








1층에 쉬어가는 벤치가 있다. 그곳에 앉아있자니, 서서히 많은 이들이 함께 모여 앉게 되었다. 쏟아지는 소나기를 통유리창을 통해 바라보기 위해서였을까? 대부분 다음 여정을 위해 빠르게 이동해야 할 관광객들일 텐데 시간적으로 꽤나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이 공간을 재빨리 떨쳐버릴 수 없는 이유가 참으로 많다. 이곳에서 우리는 잠시 물을 마시고 쉬면서, 각자 다른 생각을 해보았다.





키맨과 키 플레이스

뜬금 없지만, 우리의 삶에는 핵심 키맨이 필요한데, 이 뮤지엄을 건축한 자의 키맨은 누구였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꼭 명예와 권력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더 가치있게 만들어주고 풍요롭게 해주는 핵심 인물 말이다. 문득 <키맨> 뿐 아니라, <키 플레이스>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글을 작성하며, 구마 겐고의 삶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는 국립 요요기 경기장에서 수영을 하면서 감명을 받고, 건축 쪽으로 지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니의 <키 플레이스>는 도쿄, 덴버, 뉴욕, 밀라노의 뮤지엄이다. 감명을 받아서 건축을 지망하게 된다는 게 아니라, 나는 그곳의 예술품에서 감각을 얻어 음악으로 전환시킨다. 멜로디뿐 아니라 일상에서의 많은 소리들에 반응하며 여전히 무언가를 창조해 내고픈 그런 무언가 말이다.


도쿄 네즈 미술관의 전시관에 수많은 작품보다, 건축물과 정원이 더 나의 뜻에 적합했다고 여겨진다. 그렇잖아도 도쿄의 거리 한 코너에 지어진 매우 작은 건축물에 마음을 빼앗긴 터였는데, 네즈 미술관의 건축물과 자연의 조화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키플레이스에서 나는 렌토보다 느리게 걷는 방법을 배우며, 나의 머릿속 상상속 음악은 더 이상 서두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키플레이스를 찾아 감각을 깨우고 싶어졌다.


수년 전, 친구에게, 음악 뮤지엄을 짓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아직까지는 뮤지엄을 관람하는 것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 것 같지만, 이 기록이 미래 어느 날을 위해서,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네즈 미술관 야외정원
반갑다 비야.




미술관 정원에 숲속의 카페는 만석이어서 아쉽게도 들어가지 않고 정원을 돌아보았다. 사실 이 미술관 카페가 정말 유명한데 말이다. 여하튼 비가 내리는 정원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연못, 개울, 다실, 그리고 오솔길 이어지는 자연 그 자체 속에서 우리는 무심코 천천히 걸어보았다. 신주쿠 교엔 땅은 드넓다고 광대하다고 표현할 수 있고,  네즈 미술관의 정원 땅은 작은 풍요로움 같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마침 이때에 비가 내려줌이 기가 막힌 하늘의 솜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내린다며 얼른 비를 피해야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빗방울 소리와 함께 깨달음과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반갑다. 비야.







꽃잎 우산에
빗방울도 예술했네


네즈 가이치로가 거닐던 이 정원을 우리도 따라 걸었다. 자연스러운 경사를 따라 느린 걸음으로 걷다 보면 숨이 차지도 않으며, 우리의 목소리도 차분한 톤으로 나오고,  조리 있고 명료한 어휘력을 발휘해 보게 된다.

나의 꽃잎 우산에 두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의 다이내믹 레인지가 변하였다. 우리는 정원 산책의 마지막 타임이 되어서야 빠르게 알레그로로 걷기 시작했다.


사진에 보이는 빗방울이 눈꽃 송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여름 아침의 우렁찬 빗소리가 참으로 매력적으로 들렸다. 빗방울도 예술했네.



후쿠오카에서 짝꿍이 사준 우산 겸 양산이, 이 여름 날, 도쿄 미술관에서도 조심스레 펼쳐졌는데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정신적 고통의 흔적

우리는 다시 실내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일본의 국보부터 중국의 청동까지 수천 개의 다양한 작품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서예, 그림, 조각, 칠기, 금속 공예품들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금속 공예품들이었다. 사람의 손으로 작업했다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치밀해 보이는 작품들을 보며, 감탄보다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일평생 이 작품 하나만 만들고 세상을 떠났을 것 같은 선조들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역사의 숨결이, 바로 이런 것일까? 역사의 자랑이 아니라, 역사의 고통의 순간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과거에는 그저 손기술만으로 작품들을 탄생시켰을 텐데, 누군가는 지시하는 자리에 있고, 누군가는 재능 있는 누군가를 고용하였고, 재능 있는 자들은  아무 말 없이 수십 년을 그저 침묵하며 작품 활동에 몰입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이 정말 기쁘고 감사했던 순간일까? 맨 정신으로는 작업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였고, 한 공간 안에 가두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내기까지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내 눈을 믿을 수 없는 작품들, 작품 사이사이의 공간을 보며,  인간의 손 터치의 한계는 도대체 어디까지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작은 공간으로 하나의 모형 건물을 지어내기까지 땀과 피와 노력과 숨결과 날카로운 손길이 느껴져서, 존귀한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감사하지만, 풍부한 일본 예술 및 문화 예물을 창조하고, 지켜오기까지 많은 희생 또한 감수해야만 했었다고 여겨진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삶에 목표가 분명했고, 주어진 사명을 다하고 갔기에 그거면 충분했다고 말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누군가에겐 평생 예술이요,

누군가에겐 평생 직업이요,

누군가에겐 평생 목표요,

누군가에겐 평생 무거운 짐이요,

누군가에겐 평생 즐거움이로다.





모방

나보다는 역사와 일본에 익숙한 짝꿍의 분석에 의하면, 이 미술관이 일본 자국의 문화적 가치를 굉장히 높이 세운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타국의 문화적 가치를 모방한 흔적이 매우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일본에 있는 미술관이니까 당연한 거고, 한국에 있는 미술관이라 해도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말이다. 자국의 모방 보물들은 전시관 내부에 잘 모셔두고, 타국의 원조 보물은 복도 벽에 전시하는 등,  대놓고 솔직하게 전시해놓은 모습이 있었다.


인간 노력의 아름다움과 경악스러움, 또 그 아름다움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  인간 특유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전시장이었다.



그렇게 많은 작품을 보고 나왔고, 감탄했지만, 어느순간에 웬일인지 그 모든 것들이 단순한 우상으로 여겨지며, 결국엔 하늘이 가꾸고 있는 자연 풍경을 더 마음에 두게 되었던 것 같다. 전시품들은 그저 기억이 흐릿해진 채,  이 정돈된 길을 다시 걸어 나가본다. 많은 열매를 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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