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매와 부동
탐매(探梅) 와 부동(浮動)
조미향
밤새 비는 내렸고 매화는 핀다. 이때 나는 몸과 마음이 바쁘다. 마음에 담은 매화를 찾아나서야 하기에. 매실을 위한 매화가 아니라 어디선가 아무렇지도 않게 툭! 터진 매화송이, 그 청초하고 영롱한 연둣빛 봉오리를 찾아가야 한다.
지금은 어디나 매화가 흔하지만 그렇지 않던 시절, 삼십 년 전쯤에 가창의 어느 다 무너진 집 돌담에 기대어 핀 매화를 봤을 때, 우리 옛 문학과 그림에서 그렇게나 자주 읽히고 보이던 매화의 실체를 마주했다. 실체를 체험하는 것과 상상으로 접근하는 세계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우수(雨水)를 전후로 매화가 필 때, 그 성근 꽃송이의 배치구조와 봄을 향하여 그대로 쑥 내밀어 기일게 올라가는 가지가 참 좋았다. 저녁 산책길에 송이가 성글게 달린 기다란 가지 하나를 찾아 거실에 두고 자면 아침에 온 집이 매화 향기로 가득하다. 그 순간의 향취란......
국어선생이던 시절, 길어야 열흘 정도인 이 매화의 절정을 학생들에게 체험하게 하고 싶었다. 삼월 첫 주에 마지막일 매화를 한 가지 들고 들어가 학생들과의 첫 대면을 시작했다. 새로운 의자와 새로운 반 친구들에 싸여 긴장하고 있던 학생들은 나의 이 의아한 첫 등장방식에 당황했다. 그런 학생들에게 ‘여러분, 이것이 매화예요. 여러분은 새학기를 맞이하는 긴장에 싸여 있지만, 지금 우리를 둘러싼 자연에는 이 꽃들이 한껏 터져 나오며 그들의 절정을 맞이하고 있답니다. 여러분은 이제 올해 나와 문학수업을 하는 동안 매화라는 이름을 자주 듣게 될 거예요. 우리의 선비정신과 깊이 연관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시가 나올 때는 매화를 볼 수 없어서 오늘 미리 가져왔어요. 오늘 이 향기와 자태를 경험하고 나중에 작품에서 매화라는 말이 보일 때, 이 기억을 되살려 주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우리가 사람과 세상을 이해할 때 상상과 체험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하더군요. 선생님은 여러분이 오늘 매화를 온몸으로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하고 매화를 학생들에게 넘겨준다.
어떤 학생은 꼼꼼히 모양을 살피고 향기를 맡아보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아무렇게나 쓱 보고 다음으로 넘긴다. ‘선생님, 향기가 안 나네요?’ 하는 학생도 있다. 이때다! 하고 안민영의 시조 한 구절을 알려준다. 북송의 시인이던 임화정의 시조에서 인용한 ‘暗香浮動(암향부동)의 자세, 매화향기는 코에 가까이 대고 맡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좀 두고 매화가 향기를 풍겨 그 향기가 공간을 지나서 나에게로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 봄의 이 시간에 매화를 찾고(탐매探梅), 부동(浮動)하는 향기가 내게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며 사랑하는 것, 그것이 우리 선조들이 매화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해보면 매화를 사랑하는 방식은 모든 관계에서 가져야 할 사랑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무심하지 않게 다가가 홀로 있게 하지 않고, 서로 잊혀지지는 않을 거리에서 대상에게 시간을 주는 것, 아......어려운 일이다.
어리고 성근 매화/ 너를 밋지 안얏더니
눈 기약 능히 직켜/ 두세 송이 푸엿구나
촉 잡고 가까이 사랑할 제/ 암향부동(暗香)조차 부동(浮動)하더라. 안민영, 매화사(19세기)
작업실 옆에 야생매화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