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해외에서 생활하게 된 곳, 캐나다 밴쿠버. 낯선 환경과 서툰 영어 속에서 적응해 나가던 어느 날, 나는 밴쿠버 버스 시스템의 차이를 온몸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내릴 때 벨을 누르면, 버스 기사가 문을 열어주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밴쿠버 버스는 달랐다. 창문 위에 길게 늘어진 줄을 잡아당겨야 다음 정거장에서 내린다는 신호가 버스 기사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버스가 멈추면 승객이 버스 계단을 한 계단 내려서야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까지 전혀 몰랐다.
내릴 정거장이 가까워지자, 나는 자신 있게 줄을 당겼다. 그리고 문 앞에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버스가 멈췄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어라? 이상하네. 분명 줄을 당겼는데 왜 안 열리지?"
나는 그냥 문이 열릴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버스 기사가 뒷문 쪽을 힐끗 보더니 갑자기 외치기 시작했다.
"Step down! Step down!"
그런데 당황한 나는 그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뭐라고? Sit down...? 앉으라고?" 그렇다면, 내가 내리면 안 된다는 뜻인가?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 여기는 한국이 아니니까, 혹시 여기서 내리면 안 되는 정거장인가? 기사님이 앉으라고 하네?" 그렇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하게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버스 기사는 한숨을 쉬더니 다시 큰 목소리로 외쳤다.
"No! Step down! Step down!"
나는 어리둥절한 채 기사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주변 승객들마저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 기사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직접 뒷문으로 걸어왔다.
그는 내 앞에서 계단을 한 칸 내려갔고,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아...!"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앉으라는 게 아니라, 계단을 내려가야 문이 열린다는 뜻이었구나!"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창피함이 몰려왔지만, 버스 기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돌아갔다. 나는 그제야 허둥지둥 밖으로 나왔다.
문이 닫히고 버스가 떠나는 순간, 나는 뒤늦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다.
"Step down과 Sit down의 차이는 아주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