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불순물 14화

풍파 없는 항해, 얼마나 단조로운가

by 브레인캔디

태평양 한가운데서 돛을 내린 배 한 척이 있다. 하늘은 잿빛 유리로 덮였고, 바다는 잉크병을 엎어놓은 듯 검푸르다. 선장은 갑판에 서서 무풍지대를 저주한다. 돛은 공허를 삼키며 축 늘어졌고, 나침반의 바늘은 허공을 맴돈다. 이곳엔 방향이 없다. 다만 수평선이 끝없이 반복될 뿐이다. 폭풍이 없는 항해가 얼마나 단조로운지,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인류는 파도를 두려워하며 파도를 그렸다. 크레타 섬의 벽화에서, 폴리네시아인의 항해 노래에서, 중세 선원들의 일기장에서 폭풍은 신의 손가락으로 각인되었다. 파라오의 배는 나일 강의 격랑을 헤치며 권력을 증명했고, 마젤란의 갤리온은 거친 대서양을 관통하며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우리는 지도에 없는 곳을 향해 노를 저었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곧 진보의 발걸음이었다.


단층의 아픔 없이 형성된 수정은 깨지기 쉬우며, 화산재 없이 쌓인 화산토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은 정물화속에 썩어가는 과일을 그렸다. 부패의 얼룩이 생명의 역설을 외쳤다. 완벽한 평온은 부패의 시작이다. 스피노자가 말한 '자연의 얼굴'은 온갖 긴장과 균열 위에 펼쳐진다. 우리가 '안전'이라 부르는 것들은 실상 죽음의 이명(異名)이다.


1896년, 노르웨이 탐험가 난센이 프람 호를 얼음 속에 가둬버렸을 때의 일이다. 배는 유빙에 갇혀 표류했고, 선원들은 의도적으로 거대한 압력 속으로 들어갔다. "얼음이 배를 부수려 할 것이다. 그 힘을 이용하라." 난센의 일기장엔 이렇게 적혀 있다. 인간은 파괴의 에너지를 전진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마치 연금술사들이 납을 황금으로 바꾸듯이.


현대인은 폭풍을 기상청 앱의 푸시 알림으로 대체했다. 레이더가 구름의 심장을 해부하고, 인공위성이 태풍의 눈을 감시한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여전히 고대 선원들의 유전자를 간직하고 있다. 편의점 음료수 진열대가 바다처럼 반짝여도, 지하철 개찰구 사이로 밀려드는 인파가 조수 간만의 리듬을 닮아도, 우리는 알 수 있다. 너무 완벽하게 제어된 삶이 내뿜는 금속성 냄새를.


실험실에서 배양된 세포는 천 번의 분열 끝에 사멸한다. 스트레스가 없는 환경이 오히려 죽음의 서곡이 되는 아이러니. 사파이어 결정을 만들려면 의도적인 흠집을 내야 한다는 보석 공예의 비밀처럼, 영혼의 광택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피한 모든 역경은 공허로 남아 당신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바라본 구름, 마리아나 해구 밑바닥의 열수 분출구, 화성 표면을 휘감는 먼지 폭풍—우주는 거대한 난류다. 지구라는 배는 46억 년 동안 소행성 충돌이라는 거친 파도를 헤쳐왔다. 그 충격이 대륙을 만들고, 그 열기가 생명의 원시 수프를 끓였다. 우주 자체가 폭풍의 산물이다. 태초에 난류가 있었고, 난류가 만물을 잉태했다.


폭풍을 피하는 자는 영원히 닻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파도를 가르는 자는 비로소 자신의 등대가 된다. 당신의 인생 항해도에 X자로 표시된 난파 지점들이 바로 별자리가 될 것이다. 그 좌표들을 연결할 때, 비로소 사막 한가운데서도 북극성을 보는 법을 알게 되리라.


태평양 한가운데서 돛을 펼친 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십자성의 화살이 뱃머리를 찌르고, 소용돌이치는 물길이 새로운 항로를 연다. 선장은 이제 안다. 가장 위대한 항해는 지도에 남지 않는 파도를 넘는 것임을. 풍파 없는 항해야말로 인생 최대의 조난이라는 것을.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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