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 이래 인구통계학적으로 공통으로 분류되는 여섯 가지 집단이 있다.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년생~1963년생), 2차 베이비 부머세대(1964년생~1974년생), 386세대(1961년생~1969년생), X세대(1970년대생 전반), M세대(1981년생~1996년생), Z세대(1997년생~2010년생)가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베이비붐 세대, 386세대, MZ세대가 그들의 등장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확실한 존재감과 정체성을 보이고 있음에 비해 X세대는 1990년대 초반 잠시 반짝하는 조명을 받았을 뿐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다지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산업화 세대로서 현재의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는 확실한 훈장이 있다. 반 만년 동안 배고픈 나라라는 오욕의 역사를 끊어낸 것은 최고의 존경을 받아야 할 만한 일이다. 386 세대는 그들의 등장 이후 아직까지 정치권에서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그 공과는 차치하더라도 그들이 민주화를 이끌어 낸 것은 충분히 평가받을 만한 일이다. M과 Z의 연합군인 MZ세대는 현재진행형의 세대로서 모든 조직에서 든든한 허리를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미디어나 SNS에서 가장 강력한 오피니언 리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에 반해 X세대는 생물학적 나이에 따라 2차 베이비붐 세대로 묶이거나 아니면 현재 직장을 비롯한 조직사회에서 <관리자급>이자 <꼰대의 전형>으로만 묘사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등장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X세대의 특성에 대해선 현시점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론 바로 앞 세대인 386세대의 장기집권에 밀려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고 직장에서도 연공서열에 의해 직급과 직책은 높아졌으나 후배세대인 MZ들의 영향력에 밀려 오히려 <가해자>이거나 <무능력자>이거나 하는 이미지만 보이고 있다.
하지만 X세대와 동시대를 살아온 내 생각은 좀 다르다. 1980년대 대한민국의 폭발적인 경제성장, 대중문화와 소비문화의 급격한 전환, 정치적으론 6.29 선언 이후 6 공화국 시대 개막 등을 체험한 X세대는 배곯지 않았으며 탈정치적이고 선진화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 최초의 세대다. 그리고 이 같은 X 세대의 DNA는 인구학적으론 같은 덩어리로 묶을 수 있는 386세대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반면 오히려 생물학적 나이로는 거리가 먼 MZ세대의 특성들과는 동질성이 매우 높은 집단의 성격을 띠고 있다.
X세대가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1993년 <아모레 트윈엑스> 남성화장품 티브이광고를 통해서였다. 1970년생 <이병헌>과 1972년생 <김원준>이 모델인 그 광고는 기존에 익숙했던 <신일룡 형님>의 <쾌남 스킨로션> 광고와는 차원이 달랐다. 흑백톤에 두 모델의 얼굴이 포커싱 되며 X세대의 정의에 대해 말한다. <나를 알 수 있는 건 오직 나>, <나는 거부한다, 옳지 않은 모든 것들을> 이 두 편의 광고는 X세대를 정의하는 문장이었다. <내가 중심이라는 개인주의>와 <이제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세대>라는 것을 광고는 말하고 있다. MZ세대 직장인들의 특징이 <이걸요, 제가요, 왜요>의 <쓰리요>라고 하지만 권위적인 시대에 <나는 거부한다>라고 말한 X세대의 당참도 현재의 MZ에 결코 못지않은 <도발>이고 <싸가지 없음> 이었다.
왜 X세대였겠는가? 선배세대들이 보기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으니 모르겠다는 의미로 X를 붙인 것이다. 그만큼 특이했고 그만큼 달랐다. Z세대는 M세대의 또 다른 이름인 Y세대의 다음 세대이자 X세대의 2세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MZ세대는 기존 세대와 완전히 달랐던 X세대의 DNA를 바탕으로 사회와 기술의 진보에 따라 발전, 계승한 세대들인 것이다. 따라서 그만큼의 공통점이 X와 MZ 간에는 내재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X세대는 부모세대의 노력과 희생덕에 한민족 역사에서 배곯지 않은 첫 세대가 된 것은 물론, 앞선 연재에서 밝혔 듯 민주화, 대중문화 발전, 세계여행자율화, 컴퓨터 상용화, 토익 시험 등 지금 대한민국이 기본적으로 누리는 대부분의 것들을 한 사람의 인격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에 경험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보편적으로 바뀌는 특성들이 있다. 청소년기엔 사춘기를 겪고 청년기엔 도전적이고 진보적이다가 장년기엔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으로 바뀌는 것들 이 그것이다. 그런데 한 인간의 인격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인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에 무엇을 경험했냐는 것은 나이 듦에 따라 보편적으로 바뀌는 특성과는 또 다른 정체성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좌우한다. 그런 이유로 X세대는 생물학적 나이로는 고작 몇 살 앞에 위치한 386세대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오히려 현재 MZ세대와 유사성을 더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한 예로 X세대 초기 나이대인 1970년대 초반생들이 현재 대한민국 대중문화계를 장기집권 하고 있는데 의외로 몇 살 위인 386 세대에선 그런 인물들을 찾기 쉽지 않다. 1980년대 엄청난 문화적 변혁을 겪으며 청소년기를 보낸 X세대에 비해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크게 변화가 없었던 중고등학교 문화를 경험한 386세대와의 차이점이 30여 년 뒤 대중문화계에서 이처럼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단지 몇 년의 차이지만 그 문화적 차이점은 두 개의 큰 협곡을 가르는 것처럼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오히려 X세대의 문화적 경험이나 가치관은 현재 MZ세대에 더 가깝다. 나이 듦에 따라 보편적으로 바뀌는 성향을 걸러낼 수만 있다면 X세대와 MZ세대는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기 쉬운 세대일 수도 있다.
물론 X세대와 MZ세대와의 차이점도 있다. 개성 강한 그들이었지만 X세대는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조직에 크게 튀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80년대에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보냈기에 선생님들에게 많이 맞았고 그래서 권위적인 조직문화에 대해선 어느 정도 적응이 된 편이었다. 그렇기에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도 받아들이기에 크게 저항감이 없었다. 개인으로서 한 명 한 명은 앞 세대와 많이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지만 조직 내에서 구성원으로서는 조직의 방침이 설령 부당하다고 느끼더라도 개인보다는 전체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편이었다. <No>라고 말할 수는 있었지만 결국 <까라면 깠던 게> X세대였다.
결국 X세대와 MZ세대는 기존 세대의 문법과는 다른 사고와 행동을 한다는 데에는 공통점이 있으나 조직 내에서 상명하복 문화와 권위주의를 얼마나 수용했냐에 따라 세대적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으로 놓고 보자면 기본적으로 같은 성향을 띠고 있는 집단이기에 세대차이에서 발생하는 이런 갈등은 서로 이해하고 노력함에 따라 충분히 극복 가능한 일일 수 있다.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지만 X세대는 지난 30년 간 시나브로 그 들만의 독특한 컬러를 보여주며 사회 곳곳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경제계에선 간부급을 넘어 임원진들도 1970년대 생으로 세대교체를 이미 본격화하고 있다. 50대가 산업계에선 가장 영향력을 발휘할 나이 대이므로 이들의 진출 및 활약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진행 중이다. 난공불락 같았던 정치권마저도 73년생 국민의 힘 한동훈 대표체제의 출범과 함께 본격적인 X세대로의 전환도 기대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정치권의 오랜 숙제였던 386 용퇴론이 실현되면 그 바로 아래세대이자 탈정치화의 첫 세대인 X세대의 진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모양새다.
유희적 인간이라는 <호모루덴스>의 모습을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 보여준 X세대는 여러모로 복 받은 세대다. 단순히 조직 내에서 <꼰대 아저씨>의 모습으로만 남아있기에 그들이 받은 혜택이 너무 크다. 그리고 이제는 뭔가 기여해야 할 시기도 위치도 된 것 같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낄끼빠빠>가 중요한데 특히 나이 들수록 <빠빠>의 중요함을 느낀다. 미래세대인 MZ들에게 <낄끼>의 기회를 많이 주고 적절한 <타이밍>에서 슬슬 <빠빠>를 해줄 수 있는 것이 복 받은 X세대들이 선배로서 해 줄 수 있는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의 시작점은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부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