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동 카페골목의 추억
1993년에 개봉한 영화 투캅스에서 안성기와 박중훈이 범죄소탕을 위해 자주 방문하는 유흥업소가 즐비한 거리가 바로 방배동 카페골목이다. 30년 전 영화 속에서의 방배동 카페골목은 왕좌의 자리를 이미 압구정동에 물려준 후였지만 그래도 과거 전성기의 모습을 어느 정도는 간직하고 있다.
70년대 말 구반포에서 진입하는 이수교차로 초입에 <장미의 숲>이 문을 열며 방배동 카페골목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휘가로>, <아프로디테>, <아마데우스> 같은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의 카페는 물론 카페골목의 대표주자였던 주병진의 <제임스딘> 등, 80년대 말 압구정동이 본격 뜨기 시작하기 전인 1980년대의 10년은 방배동 카페골목의 리즈시절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 중 날라리들은 2학년 때부터 카페골목에서 놀기도 했다. 80년대의 카페는 레스토랑과 바의 기능을 합친 곳에 더 가까워 지금의 커피전문점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생들이 비록 낮시간이나 이른 저녁 시간이지만 카페골목을 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방배동 카페들은 새벽까지 영업하는 곳이 많고 밤엔 맥주나 위스키를 마시는 곳들이 대부분이라 88학번 X세대가 대학생일 때는 주로 낮에 소개팅을 하거나 카페 데이트를 하는 용도로만 방배동을 찾았었다. 압구정이나 강남역과 달리 대중교통의 접근성은 좋지 않았으나 한샘본사 뒷골목에서 삼호아파트, 궁전아파트에 이르는 골목길에 갓길 주차할 공간도 제법 있어 오히려 차가 있어야 갈 수 있는 동네라는 프리미엄 이미지도 있었다.
당시 카페골목 중간 즈음에 <효자독서실>이 있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이용자는 아니나 실구매자인 부모님 효심에 강력히 호소하는 캐치프레이즈를 독서실 외벽에 크게 써 붙여 놓았던 효자독서실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많은 불효자들을 양산하고 말았다. 구삼호아파트와 신삼호아파트 사이에 위치한 <방배독서실>에서 SKY 출신들을 많이 배출한 것과 비교하면 <효자독서실>은 도화살이 많이 낀 그 풍수를 탓할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신사동의 랜드마크 <핑크장>과 모텔계의 컬러 라이벌인 방배동 <하얀장>이 카페골목에서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얀장의 라이벌인 덕수장도 그 대각선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 두 숙박시설은 지금은 세련된 인테리어와 네이밍으로 변신하여 아직도 영업 중이다. 명동의 영양센터와 충무로 장수갈비집이 카페골목에 분점을 내어 지금도 <방배 영양센터>와 <장수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백파 홍성유의 <맛있는 집 999>에도 등장하는 위 식당들의 주인이름이 같은 것으로 봐선 가족기업으로 오랫동안 방배동 카페골목을 지키고 있는 듯하다.
1988년 갤러리아 백화점 맞은편에 맥도날드 1호점이 오픈하며 압구정동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동네 고등학생부터 대학신입생까지 주로 어린 고객들이 많아 몽다방으로 불렸던 <몽끄라쀼르>와 주병진의 제임스딘 같은 스타오너 전략을 썼던 모델 노충량의 <앙쥬>도 인기를 끌었다. 로데오 초입의 <상류사회>는 그 거만한 네이밍과 방배동틱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젊은 고객들이 많은 압구정동에서 남다른 포스를 선보였다. 핸드폰은 물론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급한 연락이면 카페에 전화를 걸어 카운터에 가서 전화를 받던 시스템이 일반적이었는데 89년부터인가 압구정동 카페엔 각 테이블마다 전화기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로데오 안에 <바이스로이>, <인터뷰> 등은 환한 인테리어에 대형매장이기도 했지만 테이블 전화기가 킬링포인트 이기도 했다.
80년대 말 신촌 독수리다방에선 300원에 다방커피는 물론 모닝빵 두 개도 세트로 주는 정겨움이 있었다. 그런 신촌의 분위기 속에 압구정풍을 표방한 <SELECT>는 단연 센세이션이었다. 장미여관 건너 건물에 있었는데 2,3층이 SELECT였고 1층이 <야외>였다. 위치는 신촌이지만 인테리어, 음악, 손님들의 패션 등이 압구정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SELECT의 동생보다는 아류작으로 평가받던 형제갈비 건너편의 <에스쁘리>도 비슷한 콘셉트로 인기를 끌었다. 6공이 시작된 민주화 이후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신촌역에서 연세대 정문까지 가는 길엔 불심검문을 하는 사복경찰, 전경들이 많았다. 하지만 ‘절대 데모를 하지 않을 것 같은 외모와 패션’ 덕분에 SELECT 골목으로 향하는 날라리들은 검문을 거의 받지 않았다.
압구정동의 등장으로 10년간의 전성기를 마감한 방배동 카페골목은 천천히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일환으로 12시 이후 유흥업소 심야영업을 금지했는데 이는 방배동 카페골목에 양날의 검이 되었다. 카페골목의 일부 카페에선 불법으로 심야영업을 했고 이는 12시 이후 술집을 찾아 헤매던 술꾼들에게 좋은 대안이 되었다. 특히 90년대 중반, 테이블 자리에서 일어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정체불명의 <락카페>가 서울 시내에 엄청난 인기를 끌며 카페골목에도 심야 락카페가 운영되기 시작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 듯, 하나 둘 생겨 난 불법업소들은 과거 고급스러웠던 방배동 카페골목의 이미지를 불법이나 난잡함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심지어 2000년대 초반엔 호스트바가 카페골목에 인기를 끈다는 소문까지 나며 카페골목의 명성엔 치명타가 되었다.
지금의 카페골목은 과거의 명성은 잃었지만 그래도 먹자골목의 역할은 하고 있다. 과거 신사동만큼 인기를 끌었던 아구찜 가게들도 지금은 많이 없어져서 두 세 곳 정도만 영업 중이다. 하얏트호텔 제이제이 마호니즈가 인기 있던 무렵 그 브랜드를 그냥 카피해서 썼던 <JJ 바>는 80년대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카페골목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60대 여사장님이 혼자 운영하고 계셨는데 코로나 3년을 힘겹게 버티다 작년에 폐업하고 말았다. 하얀장 옆 숨은 골목에 있던 고추장찌개로 유명한 <골목집>도 건물 재건축으로 올해 봄 문을 닫고 말았다. 카페골목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민속주점 <달빛 한 스푼>이 아직 건재하여 반갑기까지 하다.
구반포가 재개발 들어가며 구반포에서 넘어온 노포들이 지금은 방배동 카페골목의 대표주자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성시경 포차로 인기를 끌었던 <스마일포차>는 카페골목으로 이전 이후 골목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하고 있다. 닭도리탕이 스마일포차 최고인기 메뉴라고 하지만 오히려 광장시장 같은 곳이 아니면 서울에서 맛보기 쉽지 않은 <아나고회>가 개인적으론 더 강추메뉴다. 삼호가든 건너편 애매한 곳으로 이사한 구반포의 명물 <반포치킨>이 차라리 카페골목으로 왔더라면 스마일포차와 함께 원투펀치로서 방배동 카페골목의 인기를 재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