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래희망은 그게 아니야
“오엉이~ 장래희망은~ 해녀래요~ 해녀래요~”
1학년 때 장래희망 발표를 마친 후 친구들이 놀리던 기억이 난다.
내 장래희망은 해녀가 아니었다.
'수녀'였다.
1일 1버리기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엄마의 공간’에 손을 대봤다. 그녀는 버릴 줄을 모르는 사람이라서, 내가 대신 좀 버려주기로 했다.
내가 버린다고 꺼내놓으면 그녀가 무슨 이유를 대며 다시 올려놓고, 꺼내놓으면 또 무슨 이유를 대며 다시 올려놓고. 그짓을 무수히 반복하고 결국은 버리기로 결정된 수많은 컵들 중에
내가 유치원생 때 즐겨 쓰던 다기가 있었다.
나를 수녀님으로 키우고 싶어했던 그녀는 나를 소화데레사 유치원에 보냈었다. 나는 대를 이은 모태신앙 신자,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자녀 가브리엘라로 그 유치원의 에이스가 되었다.
유치원에서 차 예절을 배우고 돌아오면 꼭 집에 와서 여기에 물이라도 따라 복습(?)을 했다. 다관에서 숙우로, 숙우에서 찻잔으로 물을 따르는 그 과정 자체와 다기나 차를 대하는 조심스러운 그 몸짓 자체가 내게는 재밌는 놀이였던 것 같다.
차를 즐기고 큰 개를 야외에서 키우는, 노래하고 춤추고 책을 쓰는 수녀님. 그게 내 장래희망이었다.
그게 엄마의 장래희망이었으니까.
해녀 사건으로 엉엉 운 다음부터 난 수녀님을 꿈꾸지 않았다. 하지만 CSI, 멘탈리스트, 크리미널 마인드 등을 즐겨보던 엄마의 영향으로 범죄심리학자를 꿈꾸며 심리학과에 진학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두고두고 내가 수녀님이 되지 않은 게 아쉬운가 보다. 2-3년에 한 번 정도는 나를 수녀님으로 키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입밖으로 나온다.
엄마는 왜 수녀님이 되고 싶었을까?
엄마는 왜 나를 수녀님으로 만들려고 했을까?
그녀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나도 모르게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느끼는 걸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
내 장래희망은 그게 아니야 얘들아.
내 장래희망은 그게 아니야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