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2022년 7월에는 영화 <헤어질 결심>에 빠져있었다.
처음엔 분명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이고, 내 감상평은 ‘불호’라고 생각했었는데. 왜 영화를 다 보고 나오는 길에 심장이 찢어져서 핸들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는지 모를 일이다.
불륜이라는 소재에 대한 모럴센스를 좀 내려놓고 영화를 다시 봤다. 결말을 알고 보니 탕웨이의 표정 하나하나가 그렇게 슬플 수가 없더라.
최고급 일식집에서 포장해온 초밥세트가 명랑핫도그로 바뀌었을 때의 그 상실감이란. 내가 다 서운했다.
세 번째로 다시 봤을 땐 박해일이 눈에 들어왔다. 13개월의 여운과 그의 뒤늦은 깨달음이. 영원한 미결사건을 숙명으로 마주하게 된 그의 처절함이 내 마음을 ‘붕괴’시켰다.
그렇게 각본집을 샀다.
지자요수 인자요산 -공자
자신은 바다를 좋아한다던 서래(탕웨이)의 말과 그녀의 마지막에 대한 복선이었다는 걸 해준(박해일)은 알았을까?
그러나 산으로도 보이고 바다로도 보이는 저것은, 산에서의 정적이지만 격렬했던 마음과 바다에서의 동적이지만 처절했던 마음을 모두 생각나게 한다.
어떤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질 때가 있다. 어떤 식사를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그 심장 속에는 어떤 마음이 들어있는지 다 알고 싶고, 결국엔 가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가졌다고 생각하면 헤어짐은 빼앗김이 된다. 원치 않았던 결말은 미해결과제로 남는다. 내 상처를 덮으려다가 상대에게도 큰 상처를 주고는, 내가 그렇게 나빴던 건지를 묻고 싶어 한다.
누가 먼저 나빴는지, 결국 누가 더 상처받았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깊은 바다에 빠뜨려 아무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기억이, 때때로 파도 끝에 걸려 떠오를지라도.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은 망각 아니던가. 내가 붕괴해버린 모든 인연들에 담겨있던 행복과 환희, 서운함과 처절함은 결국엔 운명한다.
원하던 대로 운명하셨습니다.
그것이 또 지금의 인연들에 충실하며 내일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