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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엉 Apr 03. 2024

1일 1버리기 10일차

처음 만나는 자유

벨기에로 교환학생을 갔던 그때를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하고도 아름다웠던' 때로 기억한다.


프랑스인 교수님들을 앞에 두고 노트르담 드 파리 <대성당들의 시대>를 되도 않는 프랑스어로 개사해서 부르는 패기로 교환학생에 합격했다. 그때 그 교수님들이 막 눈물콧물 매달아가며 웃었는데 하도 기분이 나빠서 떨어질 줄 알았었다. 저정도(?)면 가서도 어떻게든 살겠다 싶으셨는지, 코미디언 시험도 아닌데 사람 앞에 두고 둘이 포복절도를 한 게 미안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붙었다.


벨기에 ULB(브뤼셀자유대학교)에서는 정규학기가 시작되기 전 교환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랑스어 수업을 진행했다. 거기서 만난 벨기에인 교수님으로부터 내 우울이 시작됐다.


아무리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우고 대학교에 들어와 교양으로 기초/중급 프랑스어를 배웠다고 한들, 내 실력은 그저 <대성당들의 시대> 가사를 '교환학생을 보내 줘 ~~ 어 ~~~ 나를 ~ 보내줘 ~~~'하는 프랑스어로 바꾼 걸 달달 외워 부르는 정도에 불과했다.


벨기에인 교수님은 절대로 영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늘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그건 내가 프랑스어를 정말 못했기 때문이었다. 동양인의 한계인건지 한국인의 한계인건지 내 한계인건지, 나는 j 와 g 발음을 다르게 하지 못했다. 그녀는 나보고 벨기에에 와서는 벨기에(Belgium) 발음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항상 타박했다. "네가 하는 말은 Belgium이 아니라 Beljium이야! Beljium 노우! Belgium!!"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쏘아붙일 때마다 나는 여러 번 다양하게 발음을 시도해봤지만 그때마다 "그건 j", "그건 z!!" 하는 식으로 혼만 났다. 지도 내 이름 발음 못하면서..


나는 받아쓰기도 잘 못했는데, 받아쓰기를 할 때 그녀가 늘 말미에 말하던 '뽀앙'이 무엇인지 몰라 항상 'poin', 'poan', 'po ung' 등으로 맥락에 맞지 않는 단어를 지어내서 썼기 때문이다. 그게 문장 마지막에 쓰는 '마침표(.)' , 즉 'Point[뽀앙]' 라는 것을 그녀는 끝까지 내게 말해주지 않았고, 나는 그 프랑스어 수업이 끝나고도 한참 지난 어느날 혼자 깨달았다. 나쁜년..






  


그렇게 나는 학교에서 말과 표정을 잃어갔다. 다른 나라 교환학생 친구들과 영어로 이야기하거나, 한국 교환학생 친구들과 한국어로만 이야기하며 웃었다. 학교는 점점 가기 싫어졌다. 집에서 모던패밀리 틀어놓고 와인이나 마시고 담배나 말아 피우다가 취해서 잠들고 학교 수업에 못 가는 날들이 많아졌다. 다른 나라 교환학생 친구들이 오엉 학교에서 잘 볼 수 없다며, 괜찮냐고 잘 지내냐고 자주 물어봤다.


학교를 잘 가지 않은 대신(...) 여행을 자주 다녔다. 벨기에와 인접한 독일, 영국, 그리고 아일랜드에 내 친한 친구들이 교환학생 혹은 유학생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자주 만나 함께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독일에 있던 친구와 함께 간 크로아티아 여행에서 이 수영복을 샀다.



31시간이 걸친 이동 끝에(이때 무슨.. 비행기 연착이었나 지연이었나 그런 이슈가 있었다) 크로아티아 자다르에 도착해 깜깜한 밤 버스터미널에서 날 기다리던 친구와 부둥켜안고 울다가. 방방 뛰며 반가워하다가. 바다오르간이 신기하다며 길바닥에 귀를 대고 누워있기도 했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서는 '범람주의- 이 길로 가지 마시오' 팻말을 해석하지 못하고 그대로 들어갔다가 거의 조난당할 뻔 하기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빠져나와 따뜻한 스테이크를 먹으며 '살아서 다행이야' 하기도 했다.  스플리트로 넘어가서는 하루종일 '오주스코' 맥주를 마시며 길을 쏘다니고 관광을 했다. 그러다 흐바르라는 작은 섬에까지 갔다.


 



흐바르에선 에어비엔비와 가까운 곳에 작은 해변이 있어서 수영복만 입고 맨발로 해변까지 오갔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아무도 내게 j와 g를 다시 발음하라며 다그치지 않고, 영어로만 말해도 친절한 미소를 지어주는 그곳의 바다에서. 나는 자유를 만끽했다.  





부정적인 평가에 휩싸였다는 생각이 들 때. 그래서 위축될 때. 불안함과 초조함에 압도될 때. 

환기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하던 때'는 '가장 우울하고도 아름다웠던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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